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하원하고 있다.ⓒ시사IN 박미소

‘정시가 공정하다’라는 명제는 폭넓게 지지받는다. 대학 정시모집 전형은 ‘수능으로 줄 세우기’다. 전국 단위 일제고사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점수에 따라 대학에 간다. 수시모집 전형은 고교 내신성적과 면접, 논술, 자기소개서 따위의 비중이 높다. 여론은 ‘사람의 주관이 개입하지 않는 전형’인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여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도 뜻이 같다. 2019년 문재인 정부는 2023학년도부터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 16개 대학에 정시 전형을 40% 이상으로 늘리라고 권고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정시모집 인원 비율 확대를 공약했다. 두 대통령은 각각 교육 관련 정부 회의와 공약집에서 수시 전형의 일종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깜깜이 전형”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정시의 공정성이 허상에 가깝다는 주장이 있다.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줄 세우기’가 아니다. 수능이라는 측정 방식 자체다. 과연 수능 점수는 학업성취도를 정확히 계측하는가? 수능 점수 5점 차이는 그만큼의 학력 차이를 뜻하는가? 1994학년도 수능 도입 이래 사회 성원 다수가 쉽게 답해온 질문이 최근 다시 제기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정시가 어떤 전형인지는 지표로 확인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울과 그 외 지역의 격차다. 〈그림 1〉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매해 내놓는 수능 채점 결과 분석을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재가공한 자료다. 2010학년도 이후 10여 년간 수능 과목별 1등급을 받는 서울 수험생의 비율은 그 외 지역 대비 꾸준히 늘었다. 수학의 격차가 특히 크다. 2010학년도 수학(자연계열) 과목을 보면, 지방의 1.5배였던 서울 1등급 수험생 비율이 2021학년도에는 3배가 됐다. 인문계열 수학·국어 1등급 수험생 비율 역시 서울이 나머지 지역의 2배 이상이다.

정시는 재수생 이상에게 유리한 제도다. ‘반복연습’이 수능 점수를 높여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N수생’에게 수시모집은 좁은 문이다. 수시는 내신 성적이 중요한데, ‘전교 1등 후배’들은 매해 전국에서 쏟아져 나온다. 정시에서는 어느 정도로 유리할까? 지난 3월15일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2020~2023학년도 정시모집 의대 신입생 선발 결과’를 공개했다. 의과대학은 대학 서열 최상위에 있다. 4개 학년도 의대 정시 합격자 중 고3 학생은 22.1%에 불과하다(〈그림 2〉 참조). 76.8% 이상은 N수생이다. 구조적으로나 지표상으로나 정시 비율이 늘면 재수는 합리적 선택이 된다. 이때 사교육이 개입한다. 절대다수의 N수생들은 혼자 공부하지 않는다. 재수종합학원에 등록한다.

정시는 서울 출신, ‘N수생’에게 유리

사회적 자원이 집중된 서울이 대입 수험에 유리할 이유는 많다. 많은 이들이 강남 대치동 학원가로 대표되는 사교육 접근성을 핵심으로 꼽지만, 그렇지 않다는 반박도 나온다. EBS 교재와 수능의 연계가 강해지고 인터넷 강의가 전국적으로 보급되며 ‘강남 입장권’의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도 있다. 더 나아가 “사교육은 수능 성적 향상에 별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능 인터넷 강의 시장을 석권한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의 이야기다. 〈시사IN〉과 한 통화에서 손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강남과 비강남, 수도권과 비수도권 수능 성적의 격차가 사교육 탓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학생 성적과 가장 밀접한 건 부모 유전자다. 강남 지역 학부모들 가운데에는 명문대 출신 고소득자가 많다. 이들의 자녀가 성적이 잘 나오는 건 당연하다.”

손 회장의 말을 ‘사교육 업계 대표자의 때늦은 진언’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강남 사교육 시장의 흐름에 밝은 이들은 고개를 젓는다. 의대 입시를 비롯한 수능 대비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업체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대치동에서 근래 급성장한 A 재수종합학원이다. 사교육과 수능의 연관성은 이 학원의 실적과 교습 방법을 통해 더 잘 보인다고 이들은 말한다. A 학원이 수능 고난도 문제를 판판이 공략해내고 있으며, 그 원인이 수능 출제 스타일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는 주장이다.

A 학원 수강생들의 진학 실적은 압도적이다. 올해 전국 의과대학 정시 합격자 절반이 이 재수종합학원에서 나왔다. 2023학년도 39개 의과대학 정시 총정원이 941명인데, 49.9%인 470명이 A 학원 출신이다. 서울대·연세대 등 대학병원을 갖춘 주요 6개 의대로 범위를 좁혀도 A 학원 합격자 비율은 51.2%다. A 학원은 자사 홈페이지에 이렇게 홍보한다. ‘작년(2022학년도) 수능 수학(미적·기하+과탐) 3·4등급 입학생 32%가 올해 수능 1등급으로 향상됐다.’ ‘작년 과학탐구 4·5등급 입학생 44%가 올해 수능 1등급을 받았다.’ 사교육 덕에 점수를 올렸다는 것이다.

A 학원의 약진은 업계에서도 기현상이다. 한 학원이 최상위권 대학 정원 절반을 거머쥔 실적만 놀라운 게 아니다. 수능 사교육 시장은 오래전부터 ‘레드오션’이었다. 대성학원, 종로학원 등 현장 강의 바탕인 재수학원들이 전통 강자로 군림하고, 메가스터디 등 인터넷 강의 기반 업체도 패권 다툼에 뛰어들었다. A 학원은 어떻게 이 틈바구니에서 제 몫을 챙기고, 나아가 ‘수능 시장을 평정했다’고 평가받기에 이르렀을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8 대입포럼의 문호진 연구원은 “A 학원은 처음부터 다른 학원과 달랐다”라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수능 대비 사교육 업체의 경쟁력은 소속 강사들의 역량에서 나온다. 강사의 역량은 크게 강의와 교재 개발이다. 남들보다 쉽게 가르치고, 수능과 유사한 문제를 만들어내는 강사가 많을수록 인기를 끈다. 인터넷 강의 시장이 열리고 수험생들의 정보 공유가 활성화되자 ‘스타 강사’들이 출현했다. 타 학원 강사를 고액에 섭외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졌다. 2014년 설립된 후발 주자 A 학원은 이 구도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대신 A 학원은 외부 인력을 포섭해 교재 개발, 특히 ‘모의고사 제작’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일군의 대학생들이 여기서 등장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8 대입포럼의 문호진 연구원. ⓒ시사IN 조남진

문호진 연구원은 자신이 ‘대치동 모의고사의 첫 타자’라고 말했다. 2011년께부터 의대에 재학 중이던 자신과 몇몇 학생들은 취미 삼아 수학 수능 문제를 만들곤 했다. 이들은 입시에 너무도 숙달된 나머지, 학원 강사들이 만드는 문제보다 더 ‘수능시험에 가까운 문항’을 뽑아내기에 이르렀다. 학생들이 만든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인 업체가 A 학원이었다. A 학원은 이들을 비롯한 ‘외부 출제자’들에게 문제를 구매한 뒤, 수능 모의고사를 제작했다. 이 교재를 불법 복제에 취약한 출판시장에 내놓는 대신 현장 강의 수강생들에게만 독점적으로 판매했다. 모의고사는 여전히 A 학원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이 학원에 다니고 있는 한 수강생은 A 학원 학생들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특출난 강사가 아니라면 수업을 잘 듣지 않는다. 본인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 간에 뒷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강의보다 자료가 A 학원의 ‘킬러 콘텐츠’에 가깝다.

초창기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성장한 지금도 A 학원은 일반인들에게 문항을 구매하고 있다. 이 학원 홈페이지에는 ‘문항 공모’라는 페이지가 있는데, 수능 전 영역에서 자유롭게 문제를 출제하라고 쓴다. 지원 대상은 “학생·교사·저자·콘텐츠 개발팀 등 제한 없음”이다. 영역별로 채택 상금이 다르다. 수학은 1문항에 최대 250만원을 준다고 적었다. ‘우수 문항’을 제작한 이는 내부 출제위원으로 합류하도록 제안한다. 이들에게는 300만~500만원을 따로 지급한다.

사교육 의존도 높이는 ‘킬러 문항’

‘집단지성’이 어떻게 수능을 공략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수험에 익숙한들 학부도 졸업하지 않은 대학생들이, 대학에서 해당 과목을 전공하고 십수 년간 출제 경향을 연구한 사교육 강사들보다 수능에 더 가까운 문항을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할까? A 학원 대표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강사들보다 학생 출제자의 ‘주관’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강사는 모두 스스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있다. 일종의 ‘시그니처’인데, 일부 학생들은 강사들이 주관에 따라 만든 문제가 좀 ‘편중’되어 있다고 말했다. 우리 학원은 어떤 의미에서 대중적·보편적인 문제를 확보했다.” 전문성이라는 강사들의 비교우위가 약화된 계기도 있다. 문호진 연구원은 “2010년대 어느 시점부터 바뀐 수능 출제 경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2000년대까지도 수능시험은 각 교과 개념의 정확한 정의와 사고력을 묻는 문항으로 변별이 이루어졌다. 평가원이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자 점차 수능은 ‘족보화’되었다. 해당 과목에 관심이 깊고 문제 풀이를 반복해온 학생들이라면 다음에 나올 문제 패턴도 예상할 수 있게 됐다.”

이 와중에 시험범위가 줄어든다. 2011학년도까지 수능 탐구영역(사회·과학)은 최대 네 과목까지 선택할 수 있었는데, 2014학년도부터는 최대 두 과목으로 줄었다. 초창기 60문항, 이전까지 50문항이던 국어와 영어는 45문항으로 줄었다. 수학도 꾸준히 범위가 줄었다. 정책 취지는 학습 부담 경감이었는데 현장에서는 도리어 역효과를 불렀다는 게 수험생 커뮤니티의 중론이다. 학습 범위가 어떻든 ‘수험생들을 줄 세워야 한다’는 정시의 대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출제 범위가 줄자 평가원은 대다수 수험생이 주목하지 않는 지엽적인 교과 내용에서 ‘꼬여 있는’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풀이를 위해 교과 이해도나 사고력을 넘어 ‘기술’이 필요한 ‘킬러 문항’이 탄생했다.

킬러 문항은 단순히 어려운 문제를 뜻하지 않는다. 최상위권에서 탈락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틀리라고 만든 문제’다. 문호진 연구원은 킬러 문항을 두고 “패턴을 예상할 수 있지만 풀이 과정과 시간을 극단적으로 늘려놓은 문항”이라고 말한다. 매해 비슷한 방식으로 출제돼 유사 문항을 만들어 ‘대비’할 수 있다.

2021년 11월 입시 경쟁에 반대하는 단체의 회원들이 수능 당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학생들을 포함해 수험에 숙련된 이들이 문항을 만들고, 학원은 현장 강의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를 판매한다. 이 일을 가장 적극적으로 한 게 A 학원이다. 재수생 기준 A 학원 수강료는 월 기본(독서실 사용료 포함) 208만원이다. 별도로 드는 급식비, 교재비, 모의고사비를 합치면 월 200만원대 후반에서 최대 300만원대까지 지출한다. 현장 강의 수강을 위한 강남 진입 비용(주거비 등)은 헤아리기 어렵다. 고가 사교육을 통해 반복적으로 ‘유사 킬러 문항’을 풀어온 학생들이, 수능에서 가장 어려운 한두 문제를 더 맞히는 방식으로 오늘날 수능의 변별력은 작동한다.

A 학원 대표는 수능에 긍정적이다. 그는 수능이 “굉장히 뛰어난 시험”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아는 지식과 개념을 응용하는 수준을 넘어, 보는 순간 ‘스파크’가 튀어야 풀 수 있는 문제는 오히려 15년 전쯤에 있었다. 요즘은 사라지는 추세라는 게 강사들의 평이다.” 사교육을 통한 반복연습이 킬러 문항을 푸는 데 큰 이점을 준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모든 일의 숙련은 반복연습이 기본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반복의 경로가 꼭 사교육일 필요는 없다고 그는 말한다.

생각이 다른 학생들이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준성 학생위원은 A 학원에서 재수·N수해 의대에 합격한 학생 3명을 인터뷰했다. 공교육 수준에서 현재 수능 문항을 대비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학생 김 아무개씨는 “진짜 천재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조차도 사교육을 하면 더 잘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아무개씨는 “1등급 중하위권까지는 가능할 듯하다. 1등급 상위권은 어렵다. 특정 과목의 경우 한 학원 강사가 킬러 문항 풀이 방법을 독점하다시피 한다”라고 말했다.

세 사람은 킬러 문항이 당락을 가르는 수능 체제에서 ‘승자’에 가깝다. 그런데 이들에게 ‘사교육과 공교육의 격차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지’ 묻자, 뜻밖에도 자신들이 성공을 거둔 ‘룰(규칙)의 불공정성’을 먼저 언급했다. 김씨는 “수시보다 정시가 공정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의대에 오는 애들은 다들 사교육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인강 보편화에 따라 학생 간 격차가 줄었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박 아무개씨는 자료의 불평등을 이야기한다. “가진 돈이나 사는 지역에 따라 자료 접근성이 천차만별이다. (모의고사) 시험지가 비싼 값에 팔린다. 서울에 사는 부유층일수록 수능에 유리하다.”

킬러 문항의 존재를 알지 못하면 ‘수능 줄 세우기’라는 과정이 공정해 보인다. 같은 시험에서 100등 한 학생이 합격하고 101등 한 학생은 불합격하는 시스템(정시)은 ‘평가자의 주관’이 들어가는 과정(수시)보다 낫다고 받아들이기 쉽다. 그런데 수능이 공교육만으로 대비가 불가능하거나, 고비용 사교육이 매우 큰 유리함을 가져다준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여전히 ‘사람이 평가 과정에 개입하지 않으니 수시보다 투명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다만 ‘투명하면 곧 공정하다’는 전제가 흔들린다. 단거리 달리기 기록을 기계로 재는 것은 투명한 절차다. ‘수능 문제와 흡사한 고가 사교육 교재’는 이 경기에서 자동차 구실을 한다. 지금의 정시는 ‘투명하되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다.

교육부 “정시 확대도 수능 변화도 없다”

입시 전형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수능의 불공정성이 ‘결과의 불평등’과 다른 개념이라고 말한다. ‘부잣집 아이가 좋은 대학에 많이 가니 정시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초대 평가원장으로, 수능이란 시험을 처음 도입한 고려대 박도순 명예교수(교육학)는 “수능은 학력을 측정하기에 부정확한 지표”라고 말한다. 1990년대 초 그가 고안한 수능은 일종의 자격고사였다. 문제풀이를 반복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점수를 얻을 수 있고, 반복연습을 하더라도 고득점을 얻는 데에 한계가 있도록 설계했다. 수능 이전 학력고사 체제가 사교육 부담을 가중한다는 비판을 받아서이기도 하지만, 시험이라는 제도의 ‘오차’ 탓도 있다. “학문적으로 어떤 시험도 오차를 없앨 수는 없다. 아침에 치는지 저녁에 치는지에 따라 점수가 다르다. 무엇을 ‘학력’으로 보고 어떻게 평가할지를 놓고 보면 교육학 책 한 권이 나온다. 이런 시험에서 95점 맞은 학생은 ‘능력이 높으니 합격’, 93점 맞은 학생은 ‘능력이 달리니 불합격’은 어불성설이다. 수능 점수는 자격고사쯤으로 삼고 대학이 면접으로 뽑는 게 낫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문제풀이 기술만 측정하지 않는, 새로운 수능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사IN 조남진

서울대 김경범 교수(서어서문학과)는 ‘학종 설계자’라고 불린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입학본부에 몸담았고, 2010학년도 서울대 학종 도입에 관여했다. 문재인·윤석열 대통령이 ‘깜깜이 전형’이라고 칭한, 그 전형이다. 그런데 김경범 교수는 ‘내신이 공정하니 비율을 늘리고 수능은 불공정하니 비율을 줄이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입시는 공정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어느 쪽이 더한지 덜한지의 차이다.” 김 교수의 말은 이렇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성적대로 줄 세우는 건 같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그게 어떤 형태든 ‘투자’를 해야 한다. 자원이 많은 학생은 평가를 어떻게 하든 그렇지 못한 학생보다 유리하다. 줄 세우기 자체의 불공정성은 사실상 해소할 수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입시 폐지나 대학 서열화 해체만이 대안일까? 그렇지는 않다. 김경범 교수는 현재 정시모집의 문제가 ‘수능이 특히 나쁜 시험이라서’ 불거진다고 본다.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게 하는 선다형 시험은 반복연습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교과 이해도나 사고력보다 ‘기술’에 고득점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올해 수능시험을 주어진 시간 안에 풀어 고득점을 얻는 고등학교 교사가 몇이나 될까? 대학 교수도 못 푼다. 테크닉과 감을 측정하는 시험이라 그렇다.” 불공정을 개선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력을 측정하기 위해 김경범 교수는 “문항 수를 줄이고 문제 푸는 시간을 늘려 생각하는 문제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40% 정시, 60% 수시 체제는 불공정하고 비교육적인 전형을 여론에 떠밀려 억지로 봉합한 데 불과하다. ‘새로운 수능’으로 줄을 세운다면 100% 정시도 바람직하며, 그게 현 상황보다 낫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교육부는 6월 중 새로운 대입 제도 개편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큰 변화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정시 추가 확대 공약은 사실상 파기됐다. 지난해 5월17일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정시 확대는 교육 현장에서 사교육 증가, 고교 교육 내실화 저해 등 우려가 있다.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수능의 변화도 예고된 바 없다. 지난해 12월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현 교육부 장관으로서 대입은 미세 조정할 수밖에 없지만 수능은 없어져야 마땅하다”라고 말했다. 여드레 뒤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내 수능 폐지를 고려하지 않으며, “대입 제도의 큰 틀은 일관성을 유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A 학원 출신 의대생은 “학원 덕에 수능을 잘 본 건 맞지만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영혼이 없는 좀비가 된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승자와 패자 모두 공정하게 불행한 입시 제도는 앞으로도 미세 조정된 채 유지될 전망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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