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5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열린 교육부의 2028 대입제도 개편 1차 설명회에서 한 학부모가 발표 자료를 들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10월25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열린 교육부의 2028 대입제도 개편 1차 설명회에서 한 학부모가 발표 자료를 들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10월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 앞에서 기자회견 두 개가 동시에 열렸다.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에 대한 교육부의 2차 학부모 설명회를 앞두고서다. 하나는 국민희망교육연대·전국학부모단체연합·아이들을 위한 공정한 세상이 열었다. 참가자들은 ‘수능 상대평가는 공정한 선발의 기본! 준비 부족·현장 혼란 고교학점제 재점검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같은 시각 10여m 떨어진 곳에서는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전국혁신학교학부모네트워크·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에서 나온 참가자들이 정반대 내용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줄 세우기 상대평가 이제 그만’ 등의 손 피켓을 들고 “과도한 대입 경쟁 및 사교육 고통을 야기하는 고교 내신과 수능 상대평가를 모두 절대평가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두 집회 주최 측 모두 교육부가 지난 10월10일 발표한 2028 대입제도 개편 시안을 반대하고 있었다.

2028 대입 개편 시안에서 현재와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내신 5등급제 도입이다. 교육부 진단에 따르면 지금의 내신 9등급제는 “교실 내 소모적 경쟁과 과잉 사교육을 유발하는 교실 황폐화의 주범”이다. 전체의 4%, 반에서 1등 정도만 1등급을 받는 지금의 촘촘한 경쟁 구조를 좀 더 느슨하게 바꿔 반에서 2~3등, 상위 10% 정도까지 1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일찍부터 내신 5~6등급 체제를 지속해온 미국·영국·일본·프랑스·홍콩·오스트레일리아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9등급제를 시행해왔다며, 교육부는 이번 내신 5등급제 전환에 ‘선진화’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등급 기준이 다소 헐거워졌지만, 여전히 ‘등급제’가 유지된다. 상위 몇 퍼센트인지를 매기는 상대평가 성적이 앞으로도 계속 대입에 반영될 거라는 이야기다. 개개인의 학습 성취도와 상관없이 옆 친구와의 상대적 우위에 따라 성적이 결정되는 상대평가가 비교육적이고 과도한 경쟁을 유발한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많이 나왔다. 더구나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진로·적성에 맞춰 선택과목을 수강하는 고교학점제가 2025년부터 전국 모든 고등학교에서 시행된다. 고교학점제는 본래 ‘절대(성취)평가’와 한 묶음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므로 2025 고교학점제 전환이라는 새로운 교육과정에 따라 개편하게 된 이번 2028 대입 제도는 ‘내신 절대평가’라는 게 이론적으로 맞는다. 하지만 교육부는 현실과 타협했다. 아직 학교별 ‘내신 부풀리기’ 우려가 크고, 대입 선발 시 변별력 확보가 어려울 거라며 현행 내신 상대평가 체제를 유지했다. 대신 과목별 A·B·C·D·E로 구분되는 성취도를 석차 등급과 함께 기재해 상대·절대평가 성적 모두를 대학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10월30일 교육부의 2028 대입제도 개편 2차 설명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 앞에서 학부모 단체들이 상대평가 강화와 고교학점제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사IN 변진경
10월30일 교육부의 2028 대입제도 개편 2차 설명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 앞에서 학부모 단체들이 상대평가 강화와 고교학점제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사IN 변진경

두 번째 변화는 수능 선택과목 폐지다. 국어·수학·탐구 영역에서 여러 갈래로 쪼개져 있던 선택과목들을 없애(제2외국어/한문 제외) 수능시험 날 모든 응시생이 동일한 문제지를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그림〉 참조). 특히 사회·과학탐구 영역에서 선택과목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1999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다. 현행 사회탐구 9과목, 과학탐구 8과목 중 어떤 과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표준점수 유불리가 발생해 선택과목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게 사실이다. 교육부는 이런 ‘불공정’을 없애고 교과 영역 전반에 대한 통합적·융합적 사고를 함양하겠다며, 선택과목들의 조합을 없애고 통합사회·통합과학을 탐구 영역 공통과목으로 지정했다. 국어·수학·탐구 영역의 수능 9등급 상대평가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2028학년도 수능 과목 개편안(자료:교육부)
 2028학년도 수능 과목 개편안(자료:교육부)

“절대평가, 이상적이고 바람직하지만…”

이번 개편 시안의 가장 뜨거운 쟁점은 ‘고교학점제와 내신 상대평가의 어색한 동행’에서 발생한다. 고교학점제 도입이 대입제도 개편의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쟁 아닌 학생 개인의 절대 성취를 도모하는 고교학점제에 걸맞게 내신 평가 방식이 전환되지는 않았다.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경쟁의 ‘수위’만 조절되었다. 이 때문에 내신 절대평가가 동반되지 않은 고교학점제는 파행으로 치달을 거라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10월18~23일 전국 고등학교 교사 11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교사 78%가 2028 대입 시안에 대해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적합하지 않으며 고교학점제가 무력화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와 전국진학지도협의회도 공동 입장문을 내어 “학생들은 내신 등급이 잘 나올 수 있는 과목만 선택하게 돼 고교학점제의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비판했다.

‘고교학점제는 절대평가가 맞다’는 사실을 교육부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0월26일 교육부 유튜브 ‘교육TV’ 채널의 ‘2028 대입 개편, 핵심은 이것입니다’ 영상에서 이처럼 말했다. “절대평가가 이상적이고 선진국의 길이고, 교육학자들도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취지로는 절대평가만 두는 게 바람직하지만 바로 그렇게 가버리면 학교마다 학생들에게 다 A를 주고 할 텐데, 내신 신뢰성이 떨어질 거란 걱정이 많다. 지금은 절충안으로 일단 절대와 상대 점수를 병기하고, 나중에 학점 인플레 우려가 없어지고 교사의 평가에 신뢰성이 생기면 그때 상대평가가 없어질 수도 있다. 지금은 과도기, 그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결과적으로 ‘뜨거운 공’이 학교 현장으로 다수 넘어갔다. 기존 수능 선택과목에서 발생하던 쏠림 현상이 고교학점제상 수강 과목 쏠림으로 재현되리라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고교 내신 상대평가가 유지되면서 이런 우려는 더욱 커졌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수능에서 응시생의 탐구 영역 선택과목 비율을 보면, 지구과학Ⅰ은 33.7%인 데 비해 물리학Ⅱ는 0.6%다. 생활과 윤리는 32.9%인데 경제는 1.1%만 선택했다. 어렵고 응시 인원이 적은 과목일수록 표준점수를 받기가 불리하니 학생들이 기피하는 것이다. 수능에서는 이 선택지가 사라지지만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는 학교에서는 어떨까?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수강 과목을 선택하기보다 내신 등급 받기 유리한 과목으로만 쏠리지는 않을까?

논·서술항 문항도 마찬가지다. 이번 정부 들어 교육부는 ‘여러 차례 미래형 문제해결력 인재 양성을 위해 논·서술형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따라서 이번 개편 때 수능에 논·서술형이 포함되리라는 추측이 무성했지만, 수능은 그대로 오지선다형으로 가기로 했다. 대신 교육부는 내신 평가에 논·서술형 문항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교사들의 평가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와 자료 개발에 나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상대평가 내신에 논·서술형 문항이 늘어남에 따라 학교 현장 내 갈등과 혼란이 가중되리라는 걱정이 많다. 교사가 주관적으로 평가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학부모의 민원과 소송이 빗발칠 거라는 우려다.

교육부의 2028 대입제도 개편안 설명회가 열린 10월25일 대전 유성호텔 앞에서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이 대입 시안 철폐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사IN 신선영
교육부의 2028 대입제도 개편안 설명회가 열린 10월25일 대전 유성호텔 앞에서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이 대입 시안 철폐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사IN 신선영

대입과 직결된 이번 정부의 교육정책은 아직 어느 하나로 노선이 정의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고교학점제는 예정대로 도입한다. 자사고·특목고는 이전 결정을 뒤집고 존치했다. 내신은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상대평가다. 수능에서 선택과목을 대거 없애 학습 부담을 상당히 낮췄다지만 ‘심화수학’ 선택과목 신설은 또 검토 중이라 향후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온탕과 냉탕이 번갈아 제시된 이번 대입 개편 시안이 교육의 공정성과 혁신을 동시에 이뤄낼 수 있을까? 10월30일 학부모 설명회에 발표자로 나선 정성훈 인재선발제도과장은 교육부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도해보겠노라 약속했다. “‘오묘하게 잘 만들면 불가능하진 않지 않을까’라는 게 우리의 시각이다. 쉽지 않지만,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만든 게 이번 시안이다.”

이번 개편안은 확정안이 아니다. 하지만 확정까지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교육부는 오는 12월20일 대국민 공청회 등 추가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한 뒤 연말까지 시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확정되면 이 개편안은 현재 중학년 2학년 학생이 고3이 되어 치르는 2028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적용될 것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