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1일 밤늦은 시간에도 많은 학생들이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있다.  ⓒ시사IN 박미소

지난해 1인당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치다. 지난 3월 교육부와 통계청의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원이다. 사교육에 참여하는 서울 일반고 학생만 놓고 보면 98만3000원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 수치마저 체감보다 낮다고 여긴다. ‘평균의 함정’과 설문조사의 한계가 원인으로 꼽힌다. 많은 이들은 오늘날 사교육비가 가계에 미치는 영향이 드러난 숫자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사교육은 그 자체로 가계 부담일 뿐 아니라 교육 불평등 문제도 부른다. 평균적으로 부모 소득이 높은 학생일수록 사교육비를 더 쓴다. 지난해 가구소득 200만원인 학생의 사교육비 지출은 월평균 12만4000원이었다. 가구소득 800만원 이상인 집에서는 그 5배 이상인 64만8000원을 사교육비로 썼다.

“공정한 변별력”이라는 6월15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관련 발언은 이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대통령이 보기에 ‘공정’을 흐리는 것은 사교육과 수능의 연계다. 학교에서는 가르칠 수 없고 사교육은 대비할 수 있는 문제가 수능에 나온다. 사교육비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이가 유리하므로 불공정하다. ‘변별력’은 6월16일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등장한 용어다. 킬러 문항(고난도 문항)이 빠지면 ‘물수능(매우 쉬운 수능)’이 된다는 비판에 반박하는 취지였다. 종합하면 사교육이 수능에 미치는 영향을 줄여도 변별은 가능하며, 이렇게 하면 대입이 공정해진다고 대통령은 본다.

대통령 발언의 후속 격으로 나온 교육부의 6월26일 ‘사교육 경감 종합대책’ 내용을 보면 크게 두 갈래다. 첫째,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이 흡수한다.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수능에 내지 않는다. 공공 컨설팅·대입 정보 제공을 강화하고 방과후 과정과 EBS 강좌를 확대한다. 6월21일에는 학업성취도 평가를 확대하고 자율형사립고(자사고)·특목고를 존치하는 게 골자인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둘째, 사교육을 직접 규제한다. 정부 차원에서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사안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대형 입시학원 세무조사에 나섰고, 교육부는 ‘사교육 카르텔 의심 사안’에 대해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공교육과 입시의 연계를 높이고 사교육의 ‘반칙’을 단속해 사교육의 매력을 떨어트린다는 게 정부 전략이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육부 대책이 별로 효과가 없으리라고 본다.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은 공교육 경쟁력 제고를 두고 “단기적으로 사교육비를 일부 줄일 수는 있으나 수혜자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여건상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공교육 확충은 유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사교육을 받는 이들에게도 ‘경쟁력을 더한 공교육’이 대체재가 될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무엇이 입시를 대비하기에 더 우수한지 비교할 때 시장의 사교육이 더 낫다고 판단하면 공교육을 외면할 수 있다.” 실제 인기 사교육업체 관계자들은 공교육과 수능의 연계가 강화된다 하더라도 문제 풀이에 특화된 사교육의 이점은 여전하리라고 예측한다(〈시사IN〉 제824호 ‘수능 5개월 전에 ‘킬러 문항’ 겨눈 대통령’ 기사 참조).

자사고 늘린 MB 정부, 사교육비 줄었다

‘카르텔 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질지를 두고서도 신 팀장은 의문을 제기한다. “최근 교육부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로 직접 신고를 해봤다. 유명 학원 관계자가 블로그를 통해 입시 컨설팅을 하는데, 학원법을 준수하지 않는 정황이 많았다.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으로 이송했고 교육청은 ‘국세청에 직접 문제 제기하라’고 답변해왔다. 전폭적 단속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신소영 팀장은, 사교육 때리기가 실효 없는 ‘제스처’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26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사교육 경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시사IN 조남진
지난 6월26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사교육 경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시사IN 조남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오히려 정부 대책 일부가 사교육을 더 유발할 수 있다고 본다.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 유지 결정이 대표적이다. 영유아 ‘이음학기’ 운영과 방과후 과정을 도입하는 것도 오히려 조기 사교육을 부를 수 있다. 이음학기란 만 5세 아이에게 놀이 중심 언어교육과 초등학교 1학년 교과 연계 교육을 하는 것이다. 신소영 팀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수장이었던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당시와 비슷한 대책을 내놨다”라고 평했다.

윤석열 정부의 사교육 정책이 이명박 정부와 흡사하다는 시각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만의 것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6월23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난데없이 일제고사 부활과 자사고·외고 존치를 들고나왔다. (…) 고교 서열화를 부추기고 경쟁 압력을 높여 초등학교부터 학생들을 사교육 현장으로 내몰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대책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가 내세워온 교육정책 전반이 이명박 정부 때와 닮았다는 지적이 이전부터 교육계 일각에서 일었다.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목적만 봤을 때 ‘이명박 정부 스타일’이라는 평은 그리 날카로운 비판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사고 무더기 인가, 일제고사 시행을 밀어붙여 경쟁을 부추긴다고 비판받았다. 과열된 경쟁은 사교육을 유발하기에, 자연히 이명박 정권 때 사교육비가 급등했으리라고 짐작하는 이가 많다. 통계가 드러내는 바는 정반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소폭이지만 줄었다(〈그림 참조〉). 1980년대부터 이명박 정부 때까지 사교육비가 감소한 해는 IMF 외환위기 직후뿐이다. 코로나19 확산 탓에 사교육 수강이 물리적으로 어려웠던 2020년을 제외하면, 이후에도 사교육비가 줄어든 적은 없다. 윤석열 정부가 좇으려는 이명박 정부의 사교육 정책은 어쩌면 더 살필 만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이 수치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라고 주장한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사교육 참여율’이 꾸준히 감소했는데, 불황으로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통계를 보면 이 설명은 흔들린다. 저소득 가구는 사교육비 지출을 그리 줄이지 않았다. 월소득 200만원 미만인 가구가 2010년 한 차례, 사교육비 지출을 평균 6000원 줄였다. 그러나 이후 2013년까지 이들은 오히려 지출을 늘렸다. 반면 월소득 300만원 이상인 가구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매해 사교육비를 줄였다. 통계청은 소득구간을 100만원 단위로 끊어 조사했는데, 소득 700만원 이상인 가구를 포함해 모든 응답층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 시기 사교육비 감소 통계는 중산층 이상의 결정이다.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이명박 정부 시기 사교육비 감소 이유를 “대입 전형의 난이도와 복잡성이 낮아졌다”라는 데서 찾는다. 이 시기에는 쉬운 수능 기조가 유지됐고 이듬해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에 효과가 나왔다. 입시 과정은 이전보다 단순해졌다. 수능·내신·논술을 모두 대비해야 했던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해체했다. 정시 논술고사를 폐지하고 내신 반영 비율을 자율화한 것이다. 전형 난이도와 복잡성을 줄이는 기조는 자사고·특목고 입시에도 적용됐다. 외고는 입학시험과 외부 시험점수 반영을 금지하고, 영어 내신 성적만 볼 수 있게 했다. 자사고는 일정 내신 성적 이상(2010년 평준화 지역 기준 상위 50%)의 지원자를 받은 뒤 추첨하는 방식으로 학생을 뽑았다.

사교육 강사 출신인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은 이범 교육평론가와 생각이 좀 다르다. “사교육 참여 학생 기준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사교육비가 올랐다. 또한 대입 전형을 바꾼 게 영향을 줬다면 주로 고등학생들의 사교육비가 감소해야 하는데 통계상 그렇지 않다.” 이현 소장은 이명박 정부 때 줄어든 것은 ‘사교육 참여율’이며, 이건 입시 경쟁에서 탈락한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소장 역시 이명박 정부의 외고 입시 폐지는 높이 평가할 점이라고 말했다. “이 시기 초·중학교 학생들의 사교육비가 참여 학생 기준으로도 줄어든 해가 있다. 외고 입시가 폐지되면서 외고 입시 전문학원들이 망하다시피 하는 계기가 됐다.”

2017년 6월28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주최로 자사고 폐지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사IN 신선영
2017년 6월28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주최로 자사고 폐지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사IN 신선영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이명박 정부와 흡사한 사교육 정책이 지금도 통할까? 방향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사람들이 어떤 때 사교육을 줄이고 늘리는지 연구한 논문이 있다. 2019년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기초교육학부)가 발표한 ‘사교육 수요에 관한 행태적 분석’이 그것이다. 응답자가 현재 50만원을 사교육비로 쓰고 있다고 가정하고,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해 자녀의 사교육비를 줄이거나 늘릴지 물었다.

응답자들은 △다른 학부모 모두가 사교육을 그만둠 △월소득 50만원 감소 상황에서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했다. △자녀의 성적이 오름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거나 제자리인 상황에서는 ‘현상 유지’ 응답이 많았다. 시나리오 중 정부가 손댈 수 있는 교육정책의 영역은 △방과후학교 강화 △쉬운 수능 △수능과 EBS 연계 100%로 확대 △자기주도학습 전형 확장이다. 대다수 응답자가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이명박 정부는 네 가지 모두 수행했고 1인당 사교육비 통계가 드러내는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단순히 보수 정권이거나 이명박 정부 때와 같은 수장이 교육부에 있어서 당시 정책을 그대로 베끼는 게 아니다. 통계와 설문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검증된 안을 재활용하는 데 가깝다.

그런데 사교육비를 잡는 데 효과가 증명된 이들 정책은 공짜가 아니다. 학교 현장에서 비용을 발생시킨다. 방과후학교는 학생의 시간을 가져간다는 점에서 사교육비 경감에 이롭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 모두 불만을 표출하는 일이 잦다.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방과후학교에서 양질의 입시 대비 교육을 원하는 학생이 많다. 방과후학교는 사교육 업체의 ‘일타강사’들에 비해 수강료가 싸지만 교습 경쟁력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교육 억제책은 공짜가 아니다

교사에게 방과후학교는 업무 폭탄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최근 몇 년간 교육부와 방과후학교의 운영 책임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교육부는 2020년 초·중등교육법을 고쳐 학교를 방과후학교 운영자로 명시하려 했는데, 이들 단체가 거세게 항의해 법안을 철회했다. 내부 정교사들에게 방과후학교 일을 맡기기 어려운 학교는 외부 민간업체에 위탁한다. 일반적인 외주화의 문제가 공교육에서 발생한다. 강사 처우와 수업의 질이 동시에 하락하는 것이다.

교육부 발표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EBS 교재 활용 방안도 이점만 있지는 않다. EBS 지문을 활용해 수능 문제를 내면 수험생 체감 난도가 낮아지고 사교육 유인도 감소한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수능 모든 과목에서 EBS 교재 70% 이상 연계’ 방침을 내놨고, 윤석열 정부 또한 강좌 확대와 수능 체감 연계율 상승을 천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입장이 달랐다. 11년 만에 수능과 EBS 교재 연계율을 50%로 낮췄고 지문도 EBS 교재 그대로 내는 게 아니라 일부를 변형하는 간접 연계 방식으로 바꿨다. 사교육비 증가를 감수하고 수능 EBS 연계율을 낮춘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선 고등학교에서 교육과정에 따라 교사가 학습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EBS 교재를 암기하다시피 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강태중 당시 평가원장은 2021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육만 걱정한다면 연계율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 대입 경쟁의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교육적 문제를 감수하면서 EBS 연계 정책을 채택해야 했다. 50%로 (수능의 EBS 교재) 연계율을 낮춘 것은 그동안 교육복지 투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금은 바로잡혔으니 교육적 부작용을 고려해 결정한 것이다.”

‘집약적 양육’은 자녀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준다. 지난해 11월17일 수능을 마친 학생과 가족의 모습. ⓒ시사IN 신선영
‘집약적 양육’은 자녀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준다. 지난해 11월17일 수능을 마친 학생과 가족의 모습. ⓒ시사IN 신선영

어떤 값을 치러서라도 사교육비를 잡는 게 우선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경제 여건에 따른 학업성취도 차이를 없애는 게 공정한 변별이라는 관점이다. 하지만 공정을 앞세우는 듯한 이 주장은 두 가지 결함이 있다. 첫째,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의 공정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다. 둘째, 사교육 외에 공정을 저해하는 요소가 여전히 남는다.

첫 번째 결함은 2025년 시행하는 고교학점제와 맞물려 있다. 고교학점제는 필수 이수 과목 외에 선택과목을 학생 스스로 선택해서 듣는 제도다. 학점제와 상대평가는 함께 갈 수 없다. 유불리를 따지기 위해 우수한 학생의 수강 여부나 수강생 추이를 살피게 만들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 고등학교 신입생부터 선택과목을 절대평가하겠다고 밝혔다. 공통과목을 듣는 1학년 내신은 성취평가(절대평가)와 9등급 상대평가를 병행하고, 선택과목을 듣는 2·3학년은 성취평가만 실시하게 된다.

절대평가는 대다수 교육 전문가들이 긍정적으로 보는 제도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자사고와 특목고를 존치하겠다며, 이전 정부의 일반고 전환 방침을 뒤집으면서 생겼다. 자사고·특목고 학생들은 학습환경에서 득을 보는 대신 상대평가 내신 손해를 감수해왔다. ‘일반고 전교 1등이 특목고 100등보다 서울대 진학에 유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자사고와 특목고가 고교평준화를 흔든다는 비판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되었다. 2025년부터 이 방어막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공정성 면에서는 명백한 후퇴다.

자사고와 특목고를 존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 수월성을 꼽으나, 다름 아닌 사교육비 경감을 말하는 이도 있다. 2009년 외고와 자사고 제도 개편 실무를 담당한 성삼제 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학교제도기획과장은 이명박 정부 때 사교육비가 줄어든 이유로, 입시 폐지나 내신 50%라는 자사고의 헐거운 입학 요건을 꼽지 않았다. 자사고의 존재 자체가 사교육을 줄였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방과후에 전부 학원에 갔다. 지금도 일부 학교 학생들은 지방에서 서울로 학원에 간다. 대다수 자사고는 교사가 자존심 때문에라도 잘 가르친다. 학생으로서는 굳이 학원에 갈 필요가 없다. 자사고·영재학교에서 사교육을 흡수한 것이다.” 이 논쟁적 주장에 따르면, 자사고·특목고는 고교평준화에 타격을 가해 공정성 문제를 유발하는 동시에 고교생의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는 양면적 제도다.

대입 불공정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사교육비 경감을 지상 과제로 보는 시각의 두 번째 난점은 좀 더 복잡하다. 소득과 사교육비가 비례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소득이 높은 학부모는 학원 교습비 외에도 ‘무기’가 많다. 학업성취도에는 사교육 이상으로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 대화의 밀도, 경험의 폭이 중요하며, 여기에도 소득 격차는 작용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결과적으로 사교육과 수능의 고리를 약화해도 부모 재력이 대입에 끼치는 영향은 극적으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설명에 따르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사교육 변수를 제거하려는 대입 정책’은, 학원비는 줄일 수 있지만 소득에 따른 진학 불공정까지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한다.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국가 재정을 들여 대학 간 격차를 완화하자고 주장한다. ⓒ시사IN 조남진

김성식 서울교육대학교 교수는 부모의 사회적 배경이 학업성취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김 교수는 “대입이나 수능 성적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 구체적 데이터를 내기 어렵다. 그러나 사교육 영향은 알려진 것만큼 크지 않다는 게 교육학계의 통설이다. 높게 잡아도 10%를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김 교수는 ‘사교육을 억제하면 교육이 공정해지는가’라는 질문에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통념상 공정한 대입은 주변 도움 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경쟁해서 결과를 얻는 것이다. 사교육은 부모의 경제력이 작동하게 하는 직접적 통로가 된다. 이걸 막는 게 공정성을 높이는 부분은 분명 있다.” 곧이어 김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순수하게 자신의 노력만으로 뭔가 이뤄내는 경우를 구분해내기가 쉽나? 거슬러 올라가면 선천적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까지 따져야 하는데, 이건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도 어렵다. 현실적으로 어떤 교육정책까지 공정하고 어디부터 불공정한지는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 된다.”

경제학자 마티아스 도프케와 파브리치오 칠리보티는 2020년 저서 〈기울어진 교육〉에서, 부모의 ‘양육 방식’이 자녀 학업성취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썼다. 책은 집약적(intensive) 양육 방식에 주목했다. 자녀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때에 따라 특정 방향으로 향하도록 지시하는, 상대적으로 강경한 방식을 뜻한다. 집약적 양육을 경험한 학생이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더 높은 경향을 보였다. 책은 한국에서 집약적 양육을 경험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점수를 비교하는데, 2012년 PISA에서 두 집단의 수학 점수는 평균 23점 차이가 났다. OECD 국가 중 점수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핀란드와 점수가 낮은 영국의 격차와 비슷한, 매우 큰 차이다. 한국 말고도 다수 국가에서 집약적 양육은 학생의 시험 점수와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부모가 이야기를 들려준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수학·읽기·과학 점수가 2~7점 높았고, 책을 읽어준 학생은 16~18점 높았다. 부모와 정치 이야기를 나눈 학생은 9~12점 높았다.

저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집약적 양육은 기본적으로 소득불평등과 연관이 있다.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처럼 소득불평등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는 집약적 양육이 소수다. 미국·영국·프랑스에서 집약적 양육 비율은 더 높고, 중국·러시아·튀르키예는 이 방식이 주류다. 저자들은 세계 수준에서 봤을 때 한국은 불평등 수준이 낮은 편이라고 적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집약적 양육 경향이 강한 까닭을 노동시장이 아닌 교육제도에서 찾았다. “중국·프랑스·한국·튀르키예 등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직전 보는 대입 시험이 명문대 입학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그렇다 보니 많은 부모가 공부를 하라고 날마다 아이를 다그치고 사교육의 도움도 많이 받는다. ‘걸려 있는 것이 많은’ 시험의 존재는 불평등 수준이 낮은 편인 프랑스나 한국에서도 집약적 양육이 많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하지만 대입이 인생에 몹시 중요한 사건이고, 집약적 양육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모든 부모가 이 방식을 택할 수는 없다. 불평등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고학력 중상류층 부모는 저학력 하류층 부모보다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저자들은 “여가 사용의 차이”라고 분석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집 청소 같은 서비스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절약한 시간을 아이 돌보는 데 쓴다. 임금이 적은 사람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희생한다.”

사교육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대입 경쟁 강도 자체를 떨어트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경쟁 보상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공공기관과 사기업에서 출신 대학을 가리고 선발하는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되는 가운데에도 대입 사교육은 늘기만 해왔다. 학생이나 학부모, 사회 전반의 ‘의식’을 개혁해야 할 문제일까? 이범 교육평론가는 “대중은 주어진 상황에서 합리적 선택을 한다. 대학 서열은 관념적인 게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다. 대학이 학생 한 사람당 들이는 교육비가 이른바 명문대일수록 높다. 새로 설립한 대학이라도 교수와 시설에 큰돈을 들이면 일약 인기를 얻는다. 높은 사교육비는 더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었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대학에 큰 재정을 들이면 대학 간 격차를 줄이고, OECD 국가 대비 낮은 절대적 고등교육비는 올릴 수 있다고 했다. 국공립 대학에 더해 일부 사립대학도 참여시켜 세계 수위권 대학으로 올라서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이범 평론가는 이 방안을 ‘포용적 상향평준화’라고 부른다.

사교육비 증가 원인을 노동시장에서만 찾는 이도 있다. 고용불안정은 경쟁을 강화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푸라기 잡듯 택하는 게 사교육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교육정책은 근본적으로 사교육 폭증 앞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불법 사교육 행위를 단속하면서 일자리나 사회안전망이 확충되길 기다릴 따름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외에 교육정책에 따른 사교육비 부침도 분명 존재한다고 말한다. 교육계 한 인사는 이 논쟁에 정치적 측면도 있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실패하자 '사교육은 노동시장 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가 교육정책을 통해 사교육을 경감하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그러나 고교학점제와 어울리지 않는 자사고·특목고 존치나, 교육학계와 일선 학교에서 논란을 증폭한 EBS 교재·수능 연계 강화 등을 내세운 것은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미심쩍은 수단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정부는 ‘공정’을 목적으로 내세우지만, 득보다 실이 더 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정부는 ‘킬러 문항 배제’와 같은 단편적 조치만 내세웠을 뿐, 교육정책을 탈바꿈할 큰 그림을 보여준 바 없다. 6월에 발표하겠다고 했던 2028 대입 개편안마저 8월까지로 미뤘다. 대중의 관심이 쏠린 이슈에서 장기적 안목 없이 가용자원을 총동원하는 정책은 대개 포퓰리즘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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