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사 출신인 강민정 의원은 “사교육 문제의 근원은 복합적이며 단칼에 해결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시사IN 신선영
평교사 출신인 강민정 의원은 “사교육 문제의 근원은 복합적이며 단칼에 해결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시사IN 신선영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평교사 출신 의원이다. 25년 동안 중학교에서 사회와 역사를 가르쳤다. 강 의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학교 교육에 끼치는 영향을 최전선에서 체감했다. 국회에 들어간 뒤 시민단체와 함께 수능의 난이도, 교육과정 준수 여부에 대한 비판적 조사 결과를 다수 내놨다. 정치권에서는 그 개념조차 낯설던 때부터 수능 ‘킬러 문항’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2021년에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공교육정상화법)을 내고 ‘킬러 문항 방지법’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그런데 ‘킬러 문항을 수능에서 배제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6월15일 발언을 강 의원은 환영하지 않는다. 도리어 발언 시점과 과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대통령 발언을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맥락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돌출된 발언이었다. 논란이 되자 (교육부에서) “3월에 지시했던 사항”이라고 하는데, 교육부 홈페이지나 정책 당국 회의 자료를 뒤져봐도 전혀 자료가 없었다. ‘3월 지시’가 사실이라도 문제다. 대통령이 큰 틀의 방향성이나 원론을 말할 수 있지만 이번 발언은 출제 지침 수준이다. 일반에 공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정할 게 아니다.

교육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6월 모의평가가 계기라고 밝혔다.

모의평가 실무를 알면 더 이해하기 어렵다. 6월1일 모의고사를 보면 보통 3월께 출제자들이 조직된다. 이미 출제 과정에 돌입했을 때일 수도 있다. 3월에 이 수준의 세부 지침을 제시하는 건 때늦다. 이게 반영되지 않았다고 (평가원) 감사까지 운운하는 건 행정의 기본을 어기는 것이다. 게다가 6월 모의고사는 아직 채점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객관적 데이터도 없는 상황에 책임을 묻는 것은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이다.

11월 수능 출제에 어떤 영향이 갈까?

수능은 그해 초부터 큰 틀의 방향을 정하고 6월, 7월, 8월에 걸쳐 상세 계획과 출제자 선발, 출제 방향 따위를 논의한다. 대통령이 앞뒤 가리지 않고 6월 중순에 이런 발언을 던졌으니 실제로 수능이 출제되고 운영되는 전 과정이 밑바탕부터 힘들어진다. 게다가 평가원은 감사를 받는 상황이다. 출제 담당기관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지 의심스럽다. 조직 전체가 쑥대밭이 될 수도 있는데, 만에 하나 시험 출제나 운영 과정에 ‘사고’라도 벌어지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킬러 문항의 해악을 앞장서 지적해왔다. 그래도 이번 지시는 문제인가?

킬러 문항은 비교육적이고 나쁜 문제다. 없애는 건 옳은 방향이다. ‘킬러 문항을 없애면 쉬운 수능이 된다’는 일각의 우려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교육과정 안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출제해도 충분히 다양한 난이도의 문제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킬러 문항 제거 못지않게 교육 현장의 안정성 또한 중요하다. 수험생은 고등학교 3년간 학습 계획과 입시 전략을 세운다. 시험 5개월을 앞두고 이런 지침이 나오면 ‘수능을 위해 준비해온 시간 전부가 흔들린다’고 여길 수도 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혼란을 부르고 수험생들을 불안한 상태로 몰아간 게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대통령은 사교육비 절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킬러 문항이 상위권 학생들의 엄청난 사교육을 유발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문제가 없으면 부분적으로 사교육을 완화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사교육은 단순히 킬러 문항이나 어려운 수능 때문에만 생긴 게 아니다. 직접적 원인은 대학 서열화와 ‘상위권 대학’에 진입하기 위한 경쟁 교육이다. 학령인구는 계속 줄어드는데 왜 인기 대학에 가려는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사교육비는 늘어날까? 근원부터 따지자면 청년 고용 문제까지 짚어야 하는 뿌리 깊은 난제다. 단칼에 하나의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좋게 말해 순진하고 나쁘게 말해 안이하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한 수험생. ⓒ시사IN 조남진

재작년 발의한 공교육정상화법의 내용은? 교육부는 어떤 입장이었나?

현행법상 대학별 고사는 고등학교 교육과정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선 안 된다. 그런데 수능은 따로 규정이 없다. 개정안은 수능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지 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출제에 반영하도록 했다. 이 법안 심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또 문제가 드러난다. 당시 교육부는 ‘이미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하고 있어 법 개정이 필요없다’고 밝혔다(지난해 9월16일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킬러 문항은 사실 교육과정을 벗어났다기보다 그 안에서 난이도 조절 내지는 변별력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랬던 교육부가 대통령이 지시하니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킬러 문항은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었다(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라며 입장을 180도 바꿨다.

수능 문제가 교육과정 밖에 있는지 판단할 방법이 있나? 교육과정 안팎을 가르는 기준은?

교육부가 교육과정을 고시한다. 여기에 과목별·단원별 학업성취도 기준이 있다. 사회 과목으로 예를 들면 민주주의 정치에 대해 어떤 지식과 태도를 습득해야 하는지 정하는 것이다. 정해진 성취 기준을 넘어서는 데서 출제되면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건 주관의 영역은 아니지만 전문성이 있어야 판단할 수 있다. 25년 학교에서 사회 수업을 했던 나 같은 사람은 ‘중학교 수준 성취 기준’을 파악하고, 무엇이 그 범위를 벗어나는지 안다. 대통령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지침을 내밀 게 아니라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문제다.

‘비전문가’ 대통령의 상세한 지시를 교육부가 따르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과목 융합형 문제 내지 말라’는 지시는 시대착오적이다. 단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은 끝난 지 오래됐다. 창의적이고 융합적 인간을 길러내는 게 우리 교육의 목표다. 창의력과 판단력, 비판적 사고력이 중시해야 하는 때에 적합하지 않은 생각이다. ‘비문학 국어 문제 내지 말라’는 지시는 대통령의 말이라기에 너무 가볍다. 특정 과목의 세부 문항까지 언급하는 건 대통령직의 무게를 스스로 격하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권 카르텔”을 운운하며 ‘반(反)사교육 전사’를 자처하는데, 진심으로 사교육 문제가 걱정이라면 현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거기에 맞는 큰 틀의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게 대통령 일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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