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 전 편집국 기획회의 때였다. 한 선배의 ‘제보’ 이야기가 나왔다. 올해 전국 의대 ‘정시’ 합격자 절반이 한 재수종합학원에서 나왔다고 했다. 수능도 아닌 학력고사를 봤던 세대인 다른 기자가 무척 신기해했다. 수능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선호하고,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이 정도 ‘싹쓸이 입학’이 가능하다니. 그 학원 관련 취재를 하기로 했다. 누군가 말했다. ‘기사를 어떻게 써도, 학원 홍보처럼 읽을 사람들이 있겠는데요.’ 기사 기획 단계부터 학원 이름을 가리기로 했다. 이상원 기자가 쓴 이번 호 커버스토리 기획회의 때 오간 대화였다.
수능·입시 문제 등에 대해 잘 모른다. 학력고사 때 수학 객관식 7번 문항을 보고 속으로 환호성을 지른(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나오다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못 풀 거야!) 이후, 입시에 별달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2018년 정시·수시의 공정성 문제가 부각되었을 때, 기사 때문에 당시 공론화위원회에서 제시한 관련 자료를 들여다본 게 그나마 최근이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를 읽으면서 ‘내가 너무 몰랐구나’ 싶었다. 의대 입시와 사교육이 이렇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니. ‘킬러 문항’이라는 게 진짜 있었구나. 기사를 읽고 나니, 얼마 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일타 스캔들〉도 다르게 다가왔다. 드라마에서 내 관심 사항은 배우 정경호와 전도연이 어떻게 좋아하게 되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정도였다. 극 중에서 ‘킬러 문항’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나 학원 강의를 수강하지 않는 다른 친구에게 학원 교재를 주었느니 하면서 갈등하는 에피소드는 그냥 가벼운 설정이려니 했다. 로맨스 혹은 추리극으로 대했던 드라마가 이제 보니 ‘리얼리즘’ 드라마였다.
한 학원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이상원 기자의 취재는 ‘수능시험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 나아간다. 취재 과정에서 이 기자는 199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도입하는 일을 맡았던 박도순 고려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를 인터뷰했다. 박 교수는 “출제 경향도, 활용 방식도 애초 구상과 너무도 다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력 측정 방식으로서 수능은 ‘부정확’하다고까지 말한다. 한국에서 입시는 답이 없어 보이는, 까다로운 문제다. 하지만 ‘수능 창시자’도 부정적인 지금, 수능 제도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싶다. 기사에 등장하는 학원 이름이 무엇인가만 묻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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