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수 ‘교육의봄’ 공동대표는 “기업의 채용 문제를 지렛대 삼아 변화의 물줄기를 틀어보려 한다”라고 말했다(왼쪽). 윤지희 ‘교육의봄’ 공동대표는 “인구절벽 시대에 소수의 승자만 남기고 다수를 패자로 만드는 체제는 생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오른쪽). ⓒ시사IN 조남진

학벌사회 붕괴로 우리 교육에도 봄날이 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단체가 있다. 이름 그대로 ‘교육의봄’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12년 동안 이끌었던 송인수·윤지희씨가 공동대표를 맡아 2020년 출범했다. 송인수 대표는 기독교 교사 단체인 ‘좋은교사운동’, 윤지희 대표는 ‘참교육학부모회’에서 활동하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의기투합했고, 이제 교육의봄까지 동행하고 있다.

교육의봄은 ‘학벌을 보지 않는 채용 문화’가 입시 경쟁에 찌든 우리 교육을 바꾸리라 본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그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플랫폼’이 되려 한다. 올해만 해도 학벌과 업무 성과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채용 흐름의 변화를 설명하는 강좌를 개설하는 등 ‘봄날’을 앞당기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일자리재단과 ‘좋은 채용 기업’을 찾는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경기도일자리재단과 협력하는 수백 개 기업 가운데 학벌에 의존하지 않는 채용을 하는 기업을 찾자는 내용이다. 좋은 채용 기업 이야기로 두 사람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좋은 채용의 기준을 어떻게 잡고 있습니까?

송인수:출신 학교 정보를 아예 서류 단계부터 요구하지 않는 기업, 작성 칸은 있지만 필수가 아닌 기업 등 다양하겠죠. 그것들 외에도 분명히 각 기업 나름대로 좋은 인재를 뽑는 노하우가 있을 거예요. 이걸 공유하고 알릴 겁니다. 기업은 자기 살길을 찾아서 채용 문화를 바꾸고 있지만, 그 일이 우리 교육의 변화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윤지희: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ESG 지표가 있잖아요. 여기에는 다양한 민주주의 가치도 포함돼요. 앞으로는 기업이 학벌사회를 해소하기 위해서 얼마나 기여했는가 하는 부분도 이 지표에 들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공정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차별 없는 채용 문화를 중요하게 여길 겁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오래 이끌어온 두 분이 ‘교육의봄’이라는 단체를 만든 이유가 뭔가요?

윤지희:해마다 실태조사를 해보면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이유 중 부동의 1위가 ‘기업 채용에서 출신 학교를 중시하기 때문’이에요. 결국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출신 학교를 중시하는 풍토와 관행을 해소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죠. 그래서 2016년부터 출신 학교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시작했어요. 문재인 정부 이후 공기업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을 하고 있지만, 문제는 민간기업이죠. 입법화에는 시간이 걸릴 테고, 기업이 자발적으로 학벌사회 해소에 나서도록 견인하려면 특화된 단체가 필요하다고 봤어요.

학벌사회 구조를 깬다는 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었을까요?

송인수:처음엔 그런 심정이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현실이 이미 바뀌고 있었습니다. 교육계만 잘 모르고 있었어요. 이런 현실을 알려야 하는데 어느 기관도 이런 일을 하지 않았어요. 기업도 마찬가지로 교육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우리 회사만 채용을 잘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플랫폼이 되어 기업의 채용 변화를 알려주자고 생각했죠. 기업의 언어를 보통 시민과 교육계가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주는 통역사 구실을 하기로 했습니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도 많이 만나보았겠네요.

윤지희:그동안 교육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막상 운동을 시작하려고 보니 우리 존재를 몰라서 어려움이 많았죠. 관련 행사를 계속 진행하고 안면을 익히면서 이제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도 교육의봄이 추구하는 바에 공감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송인수:처음에는 우리를 경계했죠. 그런데 자꾸 만나다 보니 우리가 가진 정보가 더 포괄적이거든요. 그분들은 자신이 속한 기업의 정보만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런 정보를 나누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신뢰가 쌓인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학벌과 직무능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표했습니다.

송인수:학벌사회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의문점이 두 가지예요. 하나는 학벌이나 스펙이 정말 일 잘하는 능력과 무관한 거냐. 또 하나는 정부에서 돈을 대는 공공기관이야 블라인드 채용 등 학벌사회를 약화시키는 쪽으로 가겠지만, 민간기업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예요.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내놓으려 했어요.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대기업의 연구원 792명을 대상으로 한 석사논문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학벌·스펙과 일 잘하는 능력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였죠.

윤지희:직장인이라면 대다수가 학벌과 업무 성과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에 대해 동의할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우리가 대기업 쪽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자신들도 그런 데이터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해요. 다만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거죠. 이번에 처음 관련 데이터가 공개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5월18일 ‘경기도형 좋은 채용 기업’ 발굴을 위해 경기도일자리재단과 교육의봄이 업무협약식을 가졌다.ⓒ경기도 제공

이번 발표를 보면서도 여전히 ‘학벌 좋은 사람이 일 잘하는 것 아니야?’ 하는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송인수:연구원 792명 분석 자료에서 출신 학교를 수능배치표에 따라 1군, 2군, 3군으로 나눴잖아요. 이 중 표본이 가장 많은 집단이 3군(상위권 21~100위 대학, 381명)이었어요. 대기업 연구직임에도 이미 1군이 아닌 3군 출신이 많이 취업해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학벌과 업무 성과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조사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해요. 물론 특정 직업군에 관한 조사라는 한계가 있고, 앞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겁니다. 한 방에 정리될 주제는 아니니까요. 앞으로 관련 데이터를 축적해서 발표할 계획입니다.

대기업 관계자들이 실제로 이런 연구 결과에 동의했다고요?

송인수:학력은 물론이고 학점도 입사 후 3년 정도는 영향이 있지만, 이후에는 아니더라는 거예요. 구글의 조사 결과와도 일치하죠. 발표를 안 해서 그렇지, 기업들 사이에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겁니다.

윤지희:이제 과거처럼 상급자가 업무를 지시하고 하급자는 따르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잖아요. 협업과 집단지성이 중요해지는 거죠. 외국계 기업의 한 인사 담당자는 이런 말을 해요. 우리는 입사 지원자가 명문대 출신에 학점까지 좋으면 일단 의심하고 본다. 대학 시절에 학점 따는 데에만 몰두한 사람은 협업을 못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외부에 관심을 두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가진 것을 나눌 줄 알고, 소통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원한다는 거예요.

전교조라든지 기존 교육 관련 단체들은 교육의봄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송인수:거기까지는 확인을 못했습니다만, 제가 교사들 상대로 강의를 해보면 가끔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채용 문화가 바뀌었으니까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교육의 본질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 교육은 채용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몹시 불편하다는 지적이에요. 저는 이렇게 답해요. ‘우리가 그동안 교사로서 학부모로서 온갖 정책적 노력을 다 해봤다. 그러나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이제는 기업의 채용 문제를 지렛대로 삼아 변화의 물줄기를 틀어보려 한다. 그동안 학교 교육이 그토록 길러내고자 했던 인간상이 오히려 기업의 채용 변화를 통해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경제 영역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이 교육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런 운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윤지희:우리가 인생에서 20년 정도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가잖아요. 20년이라는 교육 시간은 그 이후의 삶과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죠. 그런 점에서 교육의 본질이 뭘까 하는 고민을 해요. 우리 교육이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함양시켜주고 있는가. 저는 지금이 호기라고 봅니다. 지금 사회와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이 교육의 본질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교육과 노동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송인수:교육의봄에서 기업의 채용 변화를 이야기하면 누가 가장 반기는지 아세요? 대안학교와 혁신학교에 계신 분들이 환영해요. 교육의 본질을 위해서 애썼던 학교의 관계자와 학부모들이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맞았구나 하는 거죠. 이런 현실을 교육기관과 교원단체 종사자들이 알아야 합니다.

‘스카이캐슬’은 무너질까요?

송인수:무너질 거라는 신념은 확고합니다. 이미 채용시장에서 균열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어느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의 여성 임원을 만났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기업에서는 이미 학벌사회가 끝났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아이에게는 공부 잘하라고 재촉한답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학벌이 액세서리잖아요’ 하는 거예요. 학벌이 장식품의 위상 정도로 격하된 거죠. 장식품을 달아주기 위해 아이들을 계속 쥐어짜면 어떻게 되겠어요?

윤지희:결국 기술이 사회변화의 속도를 부추길 겁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식으로는 변화에 발맞춰 살아갈 수 없음을 모두 알고 있을 거예요. 지식을 암기하고 거기에 우열을 가려서 들어가는 ‘스카이캐슬’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어요.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길을 찾아가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관건이 될 테니까요. 인구절벽 시대에 소수의 승자만 남기고 다수를 패자로 만드는 체제는 생존할 수 없어요.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다가올 미래입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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