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은 “명문대 진학으로 중산층이 됐던 과거 경험은 이제는 착시현상이 됐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은 스스로를 ‘사교육의 괴수’라고 칭했다. 학벌사회를 무너뜨리려는 단체 ‘교육의봄’의 연단에 서게 된 일을 ‘사교육 괴수와 사교육 킬러의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손주은이 누군가. 1990년대 후반 ‘손사탐’이라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사교육 강사. 2000년 이후에는 메가스터디를 창업해 온라인 사교육 전성시대를 열어젖힌, 대한민국 사교육계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 그런 이가 교육의봄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연속 강연 ‘학벌 없는 채용의 시대가 온다’의 첫 번째 강사로 나서 “앞으로 10년 안에 사교육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은 교육의봄과 함께 학벌사회의 변화를 짚어보고 있다. 제769호(‘어느 대학 나왔나요? 묻지 않는 세상이 온다’ 기사 참조)에서 기업의 채용 흐름을 살펴본 데 이어 이번 호에는 사교육 시장의 변화에 대한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의 강연을 요약·정리한다.

(1) 어느 대학 나왔나요? 묻지 않는 세상이 온다 https://www.sisain.co.kr/47683
(2) 사교육의 괴수가 사교육 붕괴를 말하다 https://www.sisain.co.kr/47738
(3)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한 적 있나요? https://www.sisain.co.kr/47786
(4) 성공하는 일은 당신을 닮았다 https://www.sisain.co.kr/47825

저는 사실 어쩌다 사교육에 종사하게 됐습니다. 1987년에 학생들을 한 2년만 가르쳐보자 했다가 인생이 꼬이면서 10년간 서울 강남의 부잣집 아이들을 소수 정예로 가르쳤어요. 당시 제가 학생을 잘 가르쳐서 좋은 결과를 내면 개인의 윤리로는 선인데 그렇게 하면 누군가가 밑으로 떨어지니까 사회 윤리로는 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잣집 아이들 말고 대중 강의를 택했습니다. 1997년 2월 강남대일학원에서 10개 반 강의를 개설했는데, 7개 반에는 학생이 한 명도 없고, 3개 반에 2~3명이 왔더군요. 첫 달 월급이 32만원이었습니다. 아내가 ‘정신이 제대로 나갔구먼’ 하고 말하더군요(웃음). 이후 5개월 만에 한 강의실에 250명씩, 월 5000명을 가르치는 스타 강사가 됐죠. 그게 ‘손사탐’ 시절입니다.

그런데 왜 또 메가스터디라는 온라인 강의를 만들게 됐느냐. 학부모 한 분이 새벽 1시에 수업이 끝나고 케이크를 들고 왔어요. ‘따님 성적이 많이 오른 모양이죠?’ 했더니 그것보다 더 감사할 일이 있대요. 자기가 은평구에서 강남까지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가 은행 대출을 무리하게 받아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샀대요. 산 지 5개월 만에 3억원이 올랐다는 거예요. 그래서 케이크를 사 가지고 온 거예요.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때부터 대치동 사교육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죠. 누구나 값싸게 들을 수 있도록 대중 강의를 시작했는데, 대치동 사교육 현상과 함께 아파트 값이 올라가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해버린 거예요.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죠. 전국 어디에서든 값싸고 좋은 강의를 듣게 해야겠다는 목표로 2000년 9월에 음성만 전송하는 강의를 시작했죠. 세계 최초로 온라인 강의 서비스를 상용화한 모델이었습니다.

메가스터디 임직원과 저는 생각이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직원들이 내부 게시판에 ‘우리 회장님은 군수공장 공장장인데 반전주의자다’ 이렇게 써놓았어요. 제가 사교육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밖에서는 사교육의 괴수이지만, 사교육 시장 안에서는 ‘저 인간은 우리 이익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시선도 있죠.

‘학벌의 시대가 끝났다’라는 이번 강연의 주제를 놓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서연고서성한이중경외시’라는 말은 들어봤죠?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네카라쿠배당토’라는 서열이 올라오고 있어요.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입니다. 이런 기업에 다닌다는 게 자신의 계급의식을 더 높이면서 대학 서열이 어느 순간 확 사라질 것 같아요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손주은 회장은 ‘의대 몰빵’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군수공장 공장장인데 반전주의자’

저는 이제 학교를 떠나서 교육을 논의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이제는 우리가 지식을 유튜브에서 습득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인공지능(AI) 교육혁명이 가속화되면서 교사의 구실도 바뀔 겁니다. 철저한 맞춤교육이 가능해지니까요. 교사가 티칭이 아니라 ‘코칭’을 하는 거죠.

우리 사회는 저성장으로 가고 있어요. 인구 감소와 함께 초고령사회로도 진입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고 있어요. 교육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죠. 이제 산업사회의 필요에 따른 인재 양성은 끝났습니다. 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적인 사교육은 10년 안에 사라질 것이다, 이런 기대와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교육 지도를 한번 그려볼까요? 10~15년 전이 절정이었어요. 사교육이 빨간색이라면 우리나라 지도가 온통 빨갰어요. 지금은 색깔이 상당히 옅어졌어요. 과거처럼 대학입시를 치열하게 치러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도시든 지방이든 많이 사라졌어요.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잘 안 되니까요. 초등·중등 쪽은 입시보다 보육 기능이 강화된 측면이 있죠. 지금 빨간색은 서울 대치동·중계동, 대구 수성, 부산 해운대 정도예요. 대치동 사교육의 말기적 현상이 ‘의대 몰빵’입니다. 지금 거기는 전부 의대 가려는 학생밖에 없어요. 모르셨나요?

그런데 왜 사교육비는 계속 늘어날까요. 우선 학원비가 엄청나게 비싸졌어요. 정부에서 예전처럼 학원비 규제를 안 합니다. 시간당 수업료가 제가 강의할 때보다 세 배 정도 올랐어요. 학원 교재도 일반 교재보다 세 배 정도 비싸요. 또 온라인 강의 상품은 싸거든요. 메가스터디의 경우 50만~70만원이면 수험 생활 전체를 끝낼 수 있어요. 그렇다 보니 학생들이 신학기에 학용품 준비하듯이 메가스터디, 대성, 이투스 등 하나씩 다 삽니다. 교재 값은 또 따로예요. 수요는 정체했거나 떨어졌는데, 공급자들의 마케팅에 의해서 사교육비가 많이 오른 겁니다.

새로운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대

한국의 사교육은 결국 고도 압축성장의 부산물입니다. 부모 세대는 명문대학에 진학하면 중산층에 편입할 수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자녀에게 이식시키려 했죠. 그게 지금 40대 학부모에게도 어느 정도 이어져오고 있어요. 일종의 착시현상입니다. 한국교육개발원 자료를 보니까 2012년 4년제 대졸자 취업률이 66%예요(〈그림 1〉 참조). 2020년에는 61%로 떨어졌어요. 얼마 안 떨어졌네? 하겠지만 이건 실제 수치가 아니에요. 지방 사립대의 경우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졸업 예정자에게 어떻게 해서든 직장에 들어가 건강보험에 가입하라고 해요. 건강보험 가입 여부로 취업 통계를 내거든요. 한 2~3년만 지나면 직장에서 나와버려요. 그러니 실제 취업률은 40%를 밑돈다고 보시면 돼요. 기업은 옛날처럼 공채를 통해 직원을 많이 뽑지도 않아요. 수시 채용으로 경력직을 뽑아요.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없어요.

여러분, 지금 대학생 중에 컴퓨터공학 전공자가 몇 명쯤 될 것 같아요? 한 해 4년제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이 30만~40만명인데 컴퓨터공학 전공자가 20만명이라고 합니다. 부전공까지 합치면 실제로 그렇다고 합니다. 문과생들도 ‘문송합니다’ 하면서 컴퓨터공학을 부전공으로 삼고 있어요. 지금 코딩 쪽에 인력이 엄청나게 모자라거든요. 몸값이 기본적으로 연봉 5000만원에서 1억원 사이예요. 코딩은 협력이 중요하잖아요. 애플리케이션 하나를 만들 때도 역할을 나누고 협력해야 해요. 결국 협력과 창의성, 실무능력이 중요한 시대로 가고 있는 거죠.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같은 것도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스타트업에 들어가 배우거나, 혹은 자기들끼리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요. 기존 대학의 학제 구조와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저는 ‘새로운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직업의 시대가 끝났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직장에 들어가면 그 직장에서 나한테 ‘롤(Role)’을 주죠. 내가 총무팀에 배치되면 매일 그 일만 하고 살아요. 직장이 내 인생의 업을 정했던 거죠. 새롭게 개천의 용이 되는 친구들은 달라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스스로 창업을 하는 젊은이가 많이 늘고 있어요. 정부의 창업 지원 예산도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어요(〈그림 2〉 참조). 민간에도 이런 예산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사교육으로 번 돈에서 300억원 정도 출연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윤민창의투자재단’을 만들었어요. 윤민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제 딸의 이름입니다. 선정되면 5000만원에서 1억~2억원을 무상으로 줍니다. ‘클래스 101’이라는 스타트업이 있는데요, ‘취미 교육을 하는 메가스터디’라고 알려진 회사입니다. 수채화를 그리고 싶다, 빵을 굽고 싶다 등등 온갖 취미와 관련된 것들을 아주 짧은 시간에 온라인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윤민창의투자재단에서 5000만원을 지원했고, 지금은 기업가치가 수천억 원대에 이릅니다.

끝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K-에듀케이션(Education)’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AI와 메타버스 시대에는 각종 스마트 기기를 통해 학생의 공부 상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맞춤 교육이 실시될 겁니다. 이른바 에듀테크(edutech)입니다. 미국 다빈치 연구소의 토머스 프레이 소장이 예언했죠. 2030년이면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의 핵심 사업이 교육 분야가 될 것이고, 우리가 아직 들어본 적 없는 기업이 그 주인공이 될 거라고. 앞서 클래스 101 사례를 들었죠? 에듀테크 분야에서도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해온 한국의 사교육 업계가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교육을 위한 저의 변명입니다.

기자명 정리·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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