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입구로 의료진들이 들어가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11월2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입구로 의료진들이 들어가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의과대학의 문이 넓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18년째 3058명으로 동결돼 있던 의대 신입생 정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고2 학생들이 대학교에 진학하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시점을 못 박았다. 2025년 대입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내년 4월까지는 정원이 확정돼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12월 말이나 1월 초에는 의대 증원 규모를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적으면 300명에서 많으면 3000명까지 증원 규모가 점쳐진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정원 확대를 저지해냈던 2020년처럼 이번에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대란’처럼 의사를 찾지 못해 생명을 위협받는 사건들이 늘어나고, 각종 추계는 고령화로 인해 의사 부족이 심화되는 방향을 가리킨다. 보건의료노조가 11월 초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3%가 의사 정원 확대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의대 증원 논의가 빠르게 흘러가는 가운데 누락된 질문이 하나 있다. ‘늘어난 의대의 정원은 어떤 이들로 채워져야 하는가?’ 더 나아가 ‘누가 의사가 돼야 하는가?’ 좀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는 이 물음을 던지는 것은 한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의대 쏠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사’를 키워내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의대는 의사라는 전문 직종을 키워내는 교육기관이라는 기능적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다. 〈한국의 능력주의〉를 쓴 박권일 작가는 “사법고시가 로스쿨로 대체된 이후 법조인들이 누리던 기득권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의대는 마지막 성역이고 의사는 마지막으로 남은 특권 집단이다”라고 말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의사는 선망받는 직종이고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지만 한국은 단연 압도적이다. 2020년 기준 한국 의사(전문의)의 임금은 평균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개원의가 7.1배, 봉직의가 4.6배였다. 주요 국가 가운데 격차가 가장 크다(〈시사IN〉 제825호 ‘지연된 의대 증원, 그리고 그 반대자들’ 기사 참조).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에서 자녀의 의대 입시와 관련된 이슈가 점점 더 빈번해지는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종이 차지하는 지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한국의 의대 입시는 이 특권적 계급을 획득하는 통로로 통용된다. 의대 문턱을 넘는 순간 약속되는 보상은 너무나 독보적이라 기여, 재능, 노력, 그 무엇에 따른 분배로도 정당화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어 “한 사회의 자원배분 시스템까지 왜곡시키고 있다”라는 것이 박권일 작가의 분석이다. ‘의대 쏠림 현상’이 단적인 예이다. 1990년 입학 성적 상위 10개 이공계 학과 중에서 의학계열은 서울대 의대 한 곳이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며 1위부터 10위까지를 모조리 의대가 차지하고 있다( 아래 〈표〉 참조).

의대 선호는 점점 더 극심해져 최근엔 최상위권 학생이라면 의사 이외의 선택지가 지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도권 소재 의과대학에 재직 중인 한 교수는 적성과 무관하게 의대에 진학하는 실태의 심각성에 대해 말했다. “컴퓨터를 좋아하고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에도 합격했는데 집에서 진학을 반대해 우리 학교(의대)에 온 학생이 있다. 이런 고민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일단 의대를 졸업하고 원하는 일을 다시 생각해보면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줬다. 그런데 이 학생이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수상하고 하는 걸 보니 단순히 좋아한다 수준이 아니라 그 분야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거다. 그래서 내가 너무 쉽게 말했다고 사과하고 그 분야로 유학을 가라고 용기를 불어넣어줬는데 결국 의대를 못 떠나더라.”

일각에서는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들을 독식하는 ‘의대 블랙홀’이 심화될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현재 한국 의사들의 압도적으로 높은 지위는 18년째 정원 3058명에 고착돼 있는 ‘적은 수’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본다면 의사 수 확대는 특권을 희석시키는 방향성을 띤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는 직군에 대해 사회적 존중과 예우, 직업적 안정성은 보장되어야겠지만 의사에게 돌아가고 있는 평균적인 보상은 재조정돼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는 의사들의 특권을 누그러뜨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상류층의 계급 재생산 통로?

한국 사회는 그동안 의사가 되는 자격을 성적순으로 배분해왔다. 이는 의사라는 ‘값진 신분’을 차지하는 경쟁의 룰로서 별다른 의문 없이 수용되어왔다. 그런데 사회적 필요와 조응하는 의사 인력 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떨까?

앞서 〈시사IN〉은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들을 늘리는 방안에 대한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시사IN〉 제826호 ‘사람 살리는 의사를 늘리기 위해서는’ 기사 참조). 지역 대학병원에 남아 수련을 이어가고 있는 전공의 윤상우씨(가명)는 이 기사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가 택한 전공은 생명을 살리는 데에 꼭 필요한 ‘바이탈 과’이지만 동시에 대표적인 기피 과이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지금처럼 부의 대물림이라든지 경제적 보상을 얻기 위한 창구로 의사를 택하는 흐름이 굳어진다면 ‘바이탈 과’에 오는 사람들은 점점 더 줄어들 거라고 생각한다. 교수든 전공의든 필수과목들의 근무 여건이 현재보다 개선되는 건 분명하지만, 아무리 대우를 개선한다 해도 질환의 특성상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같은 곳은 QOL(Quality of Life·삶의 질)이 높다고 하는 과만큼 편해지기는 어렵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8 대입포럼의 문호진 연구원은 이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의사이기도 한 그는 의대 입시가 계급 재생산 통로로 굳어져가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은 대략 3대 7 비율로 정시(수능)와 수시에서 학생을 선발한다. 수시는 다시 ‘학생부 교과전형’과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나뉜다. 전형별로 특성은 다르지만 어느 전형이든 최고 수준의 사교육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대 입학을 노리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문호진 연구원은 본다.

“학생부 교과전형은 내신 성적으로 선발하는 전형이지만 의과대학 대부분이 수능 최저 등급 조건을 굉장히 높게 요구한다. 수능 네 과목 중 1등급이 3개 이상이어야 하고, 심한 곳은 1등급 3개에 나머지 한 과목도 2등급 이상이어야 한다. 지역 일반고 학생들이 수능에서 그런 점수를 받기란 쉽지 않다. 학생부 종합전형 같은 경우는 스펙을 정말 끝내주게 만들어야 하는데 의대 컨설턴트가 따라붙지 않으면 수행해낼 수 없는 수준이다. 정시는 〈시사IN〉이 보도했듯 강남 재수학원 한 곳에서 의대 합격자 50%가 나오고 있지 않나(〈시사IN〉 제821호 ‘기울어진 저울 위 춤추는 사교육’ 기사 참조).”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하원하는 학생들의 모습.  ⓒ시사IN 박미소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하원하는 학생들의 모습. ⓒ시사IN 박미소

의대생 10명 중 8명은 소득 상위 20%인 고소득층의 자녀로 추정된다. 더불어민주당 문정복 의원실이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학기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의대생은 7347명이었다. 전체 의대생 수(약 1만8000명)에 비춰보면 40% 정도에 그친다. 국가장학금은 소득 8구간(중위소득 기준 200%) 이하만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고소득층임을 아는 학생들은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신청률도 저조한 편이지만,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의대생 7347명 중에서도 절반 넘는 신청자(56.7%)가 9·10구간으로 분류돼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9·10구간은 월 소득 1100만원 이상이다.

수도권 의대에 다니는 한 의대생은 “국가장학금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의대생들이 많을 것이다. 동기들의 재력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김동은 계명대 의대 교수(이비인후과)는 “의대 입학생 상당수가 고소득층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편중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요즘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장학금 대상자를 의대 내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최규진 인하대 의대 교수(의료인문학)는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점점 더 이른 나이부터 의대 입시반 등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고, 부모는 자녀를 의대에 진학시키기 위해 해가 갈수록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에 대한 보상이 되는 진료과목에 학생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의대생들을 이런 선택으로 몰아넣는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시민사회가 기대하는 의사의 자질을 담보하기가 어렵다.”

잠시 2020년 9월로 시계를 돌려보자. 당시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했는데 이를 반대할 목적으로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이 만든 카드뉴스가 큰 파장을 낳았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 아래 두 가지 보기가 주어졌다. ‘A: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B: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이 홍보물 자체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공부 잘하는 사람이 의사가 돼야 한다’ ‘성적이 높은 사람을 의사로 뽑아야 한다’라는 한국 사회 전반의 인식이 분명하게 투영돼 있다. 2020년 파업 당시 전공의들을 반대 투쟁의 전면에 나서게 했던 결정적 도화선은 공공의대 신설이었다. 지역사회 인사들이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추천으로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다는 계획이 ‘시험을 통한 공정한 선발’이 아니라는 점에서 젊은 의사들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시사IN〉 제680호 ‘공정은 어떻게 그들의 무기가 되었나’ 기사 참조). 그때 여파로 정부는 기존 의대에서 정원을 늘리겠다는 방안 이외엔 언급을 삼가는 분위기다.

11월21일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의과대학 입학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11월21일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의과대학 입학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그런데 과연 ‘공부를 잘한다’라는 건 의사의 자질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일까? 공정한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은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할수록 실제로 더 뛰어난 의사가 될까?

의대 수업을 이수하고 의료 전문가로서 실력을 갖추는 데에 ‘학습능력’은 기본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문호진 연구원은 의대 공부나 의사의 자질에 대해 일반적 오해가 있다고 말했다. “의대 커리큘럼을 따라가기 위해선 사실 성실성이 가장 중요하다. 하루에 배우는 PPT 슬라이드가 많으면 1000개, 적으면 500개이다. 인체에 대해 기초 내용을 다 배워야 하니 굉장히 많은 양을 암기한다. 성실함은 어디서든 기본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의대생에게 필요한 학습능력이란 흔히 생각하는 ‘수월성’보다는 ‘성실성’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수학·과학 성적이 아주 뛰어난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하는데 사실 의대에서나 의사가 되어서나 미적분을 쓸 일은 없지 않나. 수학·과학 분야에서 탁월함이나 천재성, 복잡한 문제해결력 등은 물리학과나 공대, 의학에서는 소수의 의과학자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라고 본다.”

최규진 인하대 교수는 의대에서 요구하는 학업 성취도 수준은 “전반적인 성실성과 학업능력을 평가한다는 측면에서 수능이나 내신 2~3등급 정도면 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최상위권 1%를 뽑는 것보다 성적 기준은 중상위권 정도로 열어두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사상에 부합하는 학생을 선발해 잘 가르치는 것이 좋은 의사를 길러내는 데에 당연히 더 적합한 방식이다.”

일반적인 진료는 그러할지라도, 생존 가능성이 낮은 난치병을 치료하거나 고도의 의술이 필요한 어려운 수술을 받을 때는 수능 1%로 지적 능력이 뛰어난 의사가 더 실력이 있지 않을까? 김새롬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예방의학)는 이렇게 되물었다. “지금 각 분야에서 명의라고 불리는 분들, 한국 의료계를 이끌고 있는 분들이 모두 전교 1등, 학력고사 1등이었을까? 아니었을 거라고 본다. 그때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하긴 했지만 공대, 물리학과 같은 곳의 입학 점수가 더 높았지 않나.”

김동은 계명대 의대 교수는 “목숨을 다루는 막중한 임무를 지게 될 의대 신입생을 성적순으로 뽑는다는 것은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의대는 입학하면 대부분 의사의 길을 걷게 되기 때문에 품성, 가치관, 태도, 기질 등을 평가해 직업적 정체성에 맞는 지원자를 선발하는 과정이 다른 전공에 비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 여러 의과대학은 지원자를 다면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그리고 지역사회의 필요와 사회적 책무성을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의대생을 선발한다. 김동은 교수는 미국 UC 데이비스 의대의 전형을 일례로 들었다. “UC 데이비스는 2012년부터 자체적으로 개발한 ‘사회경제적 불이익 척도(SED)' 점수를 입시에 반영한다. 얼마나 많은 역경을 딛고 그 자리에 왔는지를 평가하는 일명 ‘역경 점수’이다. 소외된 지역,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 출신일수록 유리하다.” UC 데이비스 의대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지역사회로 돌아갈 의사 양성’이다. 기존 선발 전형만 있었다면 의대를 꿈꾸지 못했을 원주민 학생이 의대에 진학하고, 의사가 되면 출신 지역에서 주민들을 진료하는 것을 목표로 의대에 다닌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이카지아 병원. 네덜란드는 의대생 일부를 추첨으로 선발한다.ⓒEPA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이카지아 병원. 네덜란드는 의대생 일부를 추첨으로 선발한다.ⓒEPA

네덜란드는 의대생 일부를 추첨으로 선발한다. 성적이 높을수록 선발 확률이 올라가지만 하위권 학생들의 추첨률도 16~20% 정도 된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의대생을 뽑으려는 목적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만큼 파격적인 방식이지만, 네덜란드 사례는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사회에 필요한 의사를 배출하는 데에 맞추어 의대 입시가 여러 모양으로 설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새롬 연구교수는 DEI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의 첫 글자를 딴 약어다. “좋은 의료를 위해서는 더 다양한 의사가 필요하다는 국제적 합의가 있다. 세계의 좋은 의과대학들은 선발이나 교육 전반에서 DEI를 ‘의도적’으로 추구하고, 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는 동질화되기가 무척 쉬운 집단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사회경제적 계층이 고착되면서 환자들의 생활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건강과 질병에 끼치는 영향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치료 결과도 좋을 수 없다.

공공의대라는 새로운 양성 트랙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촉발된 건 지역 병원과 필수의료 과목에서 주민들을 진료하고 환자를 살리는 의사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필요를 중심에 두고 그에 걸맞은 의대 선발 전형과 교육과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변화는 더디다. 2021년부터 지역 의과대학들은 ‘지역인재 전형’으로 해당 지역 고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을 40% 이상 선발하도록 돼 있다. 김동은 계명대 의대 교수는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이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입학 전형이 도입돼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수도권 출신 학생들이 졸업 후 지역에 남는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역 출신이 지역 병원에 많이 남는다. 부산대 의대는 이미 지역 학생을 80% 이상 뽑고 있고, 전남대 의대도 2025학년도부터 호남 지역 학생들로 80%를 선발하기로 했다. 지역의 다른 의대들도 이 비율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이렇게 늘어난 지역 정원은 ‘농어촌 학생 전형’ ‘고른 기회 특별전형’ 등을 통해 다양한 배경과 출신의 학생들에게 의대 입학의 문을 넓히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 김 교수는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교육·수련 비용을 국가와 지방정부가 부담하고 지역 국공립 의대가 그 지역에서 의무 복무할 의사들을 길러내는 지역의사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의 분만실. ⓒ시사IN 박미소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의 분만실. ⓒ시사IN 박미소

2020년 전공의 파업 이후, 정책 순위에서 밀려난 ‘공공의대 설립’ 역시 진지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이나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처럼 영리성 높은 분야로 의사 인력이 빠져나가는 추세는 가속화되고, ‘고투자-고수익’ 구조로 굴러가는 지금의 의대 입시 제도는 이런 선택을 부추기고 있다. 이 현상에 균열을 내지 않는다면 의대 정원 확대는 사회가 기대하는 효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공적 가치에 감수성을 지닌 학생들을 선발하고 의료의 공익성을 추구할 의지가 있는 의사들을 키워내 지역과 필수과목, 공공의료 분야로 의사 인력을 유입시킬 별도의 의사 양성 트랙을 설치해야 한다.

‘의과대학의 문이 넓어질 전망이다.’ 그 뒤에는 많은 얘기가 숨어 있다. 그러나 의사 단체의 반발을 의식해서, 또 ‘공정’이라는 암묵적인 틀에 사로잡혀 공동체에 필요한 의사 배출 방안을 모색할 공간은 ‘의대 증원’ 논의에서 증발돼버린 상태다. 누가 의사가 돼야 하는가? 어떤 의사를 키워야 하는가? 유예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11월21일 공공의대 설립을 촉구하는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시사IN 박미소
11월21일 공공의대 설립을 촉구하는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시사IN 박미소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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