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 벽면을 성형외과 간판들이 채우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 벽면을 성형외과 간판들이 채우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의사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종이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에 몰리고, 그 문턱을 통과하면 고소득과 안정적인 지위가 보장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점점 더 열악한 처지로 내몰리는 의사들이 있다. 의료 본연의 역할이라 할 ‘생명을 살리는 과’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전통적으로 필수의료로 분류돼온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에 더해 환자의 목숨이 걸린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신경외과 등 ‘바이탈 과’가 여기에 해당한다.

현장 사정에 밝은 한 보건의료 전문가는 “병원마다 정말 몇 명 안 되는 의사들이 기피과로 불리는 필수의료 분야에서 버티고 있다. 남아 있는 분들은 사명감으로 일하는 건데 거의 인간문화재급이라고들 한다”라고 말했다. 인력이 충분치 않으니 밤샘 근무나 당직이 잦고, 그곳에 있던 의사들이 자리를 옮기거나 전공의가 지원하지 않아 근무 환경이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이 대학병원의 흉부외과, 신경외과, 소아청소년과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년째 필수의료 환경이 취약해지고 공백이 커진 결과, 시민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사건들이 수면 위로 하나둘 떠오르고 있다. 수술이 필요한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해 거리를 떠도는 상황이 거듭되고, 지난 5월에는 입원 병실을 얻지 못한 아동이 급성후두염으로 목숨을 잃는 일마저 생겼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보건복지부는 2020년 의사 파업으로 중단된 의대 증원 논의를 재개했다.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의사 인력이 2030년 1만4000여 명, 2035년에는 2만7000명 부족할 거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는 2019년 기준 모든 의료 수요가 충족되고 있다는 가정 위에서 도출한 숫자로, 현재의 의사 인력 공백은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는 2025년 대학입시에 늘어난 정원을 반영하겠다고 시한을 못 박으며 추진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대통령실에서 ‘직접 챙기는 관심사’라는 얘기도 나온다. 의료계 대표 격으로 협상에 임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2020년 의사 파업 때처럼 동력을 모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체적으로 부족한 의사 수를 채워야겠지만, 이를 필수의료에 흘러가도록 세심하게 물길을 내는 작업은 훨씬 더 까다로운 과제다. 수년간 뒤틀려 있던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재설계하고, 의료 서비스와 의사라는 직업에 투영된 사회의 여러 욕망도 재조정해야 한다. 이 어려운 미션을 뚫고 한국 사회는 ‘사람 살리는 의사’를 늘릴 수 있을까.

■ 기울어진 운동장

의협에서는 의사를 늘려도 어차피 필수의료 분야로 유입되지는 않을 거라고 주장한다. 소아청소년과·흉부외과·신경외과처럼 현재 의료 공백이 문제되고 있는 곳은 진료가 어렵고, 보상도 적은데 근무 여건까지 열악해서 의사들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소득을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전문 과목에 따라 실제 큰 차이가 난다. 2020년 기준, 안과의 경우 임금노동자 대비 소득비는 10.1배에 달했지만 소아청소년과는 3.5배였다. 의료기관별로도 격차가 있다. 병원과 의원이 임금노동자 대비 소득비가 각각 8배, 6.8배인 데 비해 필수의료 성격이 더 짙은 종합병원(5.4배), 상급종합병원(4.1배)은 그보다 낮았다(〈시사IN〉 제825호 ‘지연된 의대 증원, 그리고 그 반대자들’ 참조).

그 원인으로 저수가 구조를 꼽는다.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운영되는 한국에서 ‘수가’는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이 의료 행위에 대해 지불하는 가격이다. 의협과 의료계 전반의 주장은 필수의료 행위에 매겨지는 수가가 비정상적으로 낮아 수입이 적으니 지원자도 줄어들고, 병원에서도 충분한 인력을 뽑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 행위를 6000개 정도로 구분해 수가를 매긴다. 이를 급여 항목이라고 한다(반대로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의료 행위는 ‘비급여’라고 한다). 6000개의 의료 행위를 기본진료(진찰·입원), 수술, 처치, 검체검사, 영상검사, 기능검사, 이렇게 6개 항목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6개 항목의 원가보상률을 따져보면 실제로 한국의 수가 체계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기본진료(진찰·입원), 수술, 처치에 지불되는 수가는 상대적으로 낮고 검체검사, 영상검사는 높다(〈그림〉 참조).

진료과에 대입해보면 소아청소년과처럼 대부분의 수입이 ‘진찰료’이거나 대학병원의 흉부외과처럼 급여가 적용되는 수술을 주로 하는 과들은 상대적으로 수익을 내기 어렵다. 반면 영상의학과처럼 검사를 하거나 입원이나 수술 시 CT, MRI, 초음파, 피검사 등 여러 검사를 붙일 수 있는 진료 과목들은 이득이 된다. 의협은 줄곧 기본진료(진찰·입원), 수술, 처치처럼 원가보다도 낮게 책정된 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타당한 요구다.

그러나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한 가지를 꼬집었다. “이처럼 수가의 높낮이가 맞지 않다 보니 진료 과목별로 유불리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정상적인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옳다. 그런데 낮게 보상되는 곳만 목소리를 높이고, 매년 높게 보상받는 곳은 굳이 얘기하지 않는다.”

의료계가 진료 과목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어서 필수 과목에 의사가 유입되지 않는다면 낮은 곳은 높이고, 높은 곳은 낮춰야 완만한 운동장을 만들 수 있다. 수가 협상은 매년 국민들이 내는 건강보험료라는 한정된 총액 내에서 비율을 나누는 방식이다. 그동안 낮게 책정되었던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정상화하기 위해 국민이 건보료를 좀 더 감수한다면, 동시에 의료계에서는 원가보다 많이 받고 있던 항목들의 수가를 일부 조정해야 한다. 의협은 기피과를 양산하는 구조의 반쪽만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최근 몇 년간 운동장의 기울기를 좀 더 가파르게 해온 것은 수가보다도 ‘비급여’ 진료이다. 비급여 의료 행위는 정해진 수가가 없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 원하는 대로 가격을 매길 수 있다. 소위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에 전공의 지원이 몰리고 그중에서도 피부·미용에 특화된 개원가에서 높은 소득을 올리는 이유다. 실손보험이 도입된 이후 통증주사, 도수치료 같은 비급여 시장은 더욱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가운데, 병원에서 수술방에 들어가는 마취과 의사들은 줄고, 통증의학과 의원들은 건물마다 들어서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처럼 비급여 진료로 무한정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의료 행위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필수의료는 수가를 계속해서 높여주더라도 기피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비급여 시장의 확장을 막아야 하는 필요성과 현실적 어려움을 동시에 짚었다. “비급여 진료로 의사들이 자꾸 빠져나간다면 그 시장을 규제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신규 개원을 어렵게 하거나, 물리치료사나 피부관리사 같은 다른 직군에 시장을 열어주거나. 부작용을 수반하겠지만 찾고자 하면 정부가 관리·감독할 제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가 극도로 상품화된 한국 사회에서 피부·미용이나 수액치료, 도수치료를 원하는 수요가 지금처럼 크다면 비급여·비필수 의료 시장은 계속해서 개척될 수밖에 없다.”

■ 누가 의사가 되어야 하나

윤상우씨(가명)는 지역 대학병원에 남아 수련을 이어가는 전공의다. 그가 택한 전공은 대표적인 필수 진료 과목이자 기피과로 꼽힌다. 젊은 의사로서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조심스러운 얘기인데, 지금처럼 부의 대물림이라든지 경제적 보상을 얻기 위한 창구로 의사를 택하는 흐름이 굳어진다면 바이탈 과에 오는 사람들은 점점 더 줄어들 거라고 생각한다. 교수든 전공의든 필수과들의 근무 여건이 현재보다 당연히 개선돼야 하지만 질환의 특성상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나 흉부외과, 신경외과 같은 곳은 흔히 QOL(Quality of Life·삶의 질)이 높다고 하는 과만큼 편해지기는 어렵다. 처음부터 필수의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의대에 더 뽑혀야 한다.”

6월27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의대의 모습.ⓒ시사IN 이명익
6월27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의대의 모습.ⓒ시사IN 이명익

지금처럼 의대 정원 3058명이 최상위권 학생들의 성적 순서대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윤상우씨는 보다 다양한 가치관과 배경을 가진 이들이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의대 입시 전형이 다변화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공공의대도 그중 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은 의대 정원 확대가 탄력을 받는 상황에서도 별달리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의대 입학이란 ‘의사가 되기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는 관문이 아니라 ‘의사라는 값진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레이스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이 레이스에서 ‘공정’한 경쟁을 해칠 위험성을 가진 다변화된 선발 방식은 발붙일 공간을 잃었다.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당시 전공의들을 반대 투쟁의 전면에 나서게 했던 도화선은 공공의대 설립이었다. 400명 확대 계획에서 공공의대 정원은 49명에 그쳤지만 ‘중립적인 시·도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보자를 추천한다는 정보가 부정확하게 확산되며 불공정 논란이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의대 정원 논의가 3년 만에 재개되며 보건의료 개혁 운동을 하는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공공의대를 신설해 의사를 배출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지만, 정부는 선을 긋는 모양새다. 자칫하면 2020년처럼 그 이슈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의대 입시 전형 관련 개편으로는 기존 의대의 정원을 늘리고, 현재 40%인 지역 인재 선발 비율을 높이는 방안 정도를 거론하고 있다. 그사이, 비단 공공의대뿐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의사를 어떻게 키워낼 수 있을까’라는 핵심 논의마저 흘러가버리고 있다.

■ 작게 고치면 이 정책은 실패한다

한 의료계 인사는 의사들이 금전적 보상으로만 움직이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임금수준과 비교하면 고액 연봉이지만 의사 사회에서 대학병원 교수의 임금을 높게 쳐준 적은 과거에도 없었다. 병원을 나가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음에도 의사들이 병원에서 필수과를 지켰던 건 지식의 추구, 의사로서 보람, 교수로서 명예 등 나름의 만족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도 어느 정도 나눠 보고, 당직도 적당히 배분하고, 자기 연구를 하면서 나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으면 그 자리에 남는다. 지금은 그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필수의료 현장에 있는 의사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은 인력이다. MZ 세대 젊은 의사들을 필수의료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도 전반적인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이를테면 ‘일자리 나누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바이탈 과의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수준은 올리되, 의사 수를 늘려 전반적으로 가파르게 증가하는 의사 인건비의 상승세는 억제하고, 필수의료 분야에서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게 하려는 구상이기도 하다.

2017년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가 응급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가 응급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연합뉴스

잇따른 필수의료 공백 사고와 그로 인한 사회적 요구 등을 고려하면 의대 정원은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개혁적인 보건의료 전문가와 활동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적극적인 의사 배치 정책 없이) 의사 수만 늘리면 ‘어차피 필수의료, 지역의료에 안 간다’는 의협 쪽의 주장대로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그 중요성을 꾸준히 언급은 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마다 “지역 인프라 확충, 필수의료의 합리적 보상, 근무 여건 개선” 등 의사 배치 정책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힌다.

한 보건의료 정책가는 “작게 고치려 하면 실패한다”라고 말했다. “필수의료는 오랫동안 조금씩 무너져 내려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그동안 보건복지부는 본질적인 제도개선 없이 손쉬운 방법들을 써왔다. 기피과에 수가를 조금 올려주고 병원이 알아서 사람을 채용하라는 식이었는데 약간 돈을 더 준 걸로 병원에 책임을 미룬 셈이다(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는 수가가산금으로 20~100%를 더 주는 정책이 2010년부터 시행됐지만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육부와 협의해 대학병원(의과대학)의 교수 정원을 더 늘린다든지 하는 정도의 정책적 시도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필수의료 분야에 몸담은 의사가 줄어드는 원인은 비교적 명확하지만 이를 풀어낼 단일한 해법은 없다. 어쩌면 의대 증원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일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그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결코 달갑지 않은 질문들을 마주할 준비가 돼 있을까.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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