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7일 한 여성이 유아차를 밀며 서울의 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앞을 지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지금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는 일대 위기를 맞고 있다. 상태가 중한 환자들이 입원하고 응급실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대학병원의 소아 진료 공백은 곧 어린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문제와 직결된다. 지난 5월, 서울 광진구에서 급성 후두염에 걸린 5세 아동이 응급실을 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입원 진료도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정 지역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가 아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수련병원(대부분 대학병원) 가운데 소아 응급실을 축소 운영하는 병원이 51%였다. 24시간 소아 진료가 가능하다고 응답한 병원은 38%뿐이었다. 지난해 연말부터 여러 대형병원에서 소아 환자 입원을 받지 않는다든지, 야간·주말 진료를 중단했다든지 하는 소식이 줄줄이 전해진다.

이유는 소아청소년과(이하 소아과) 전공의가 몇 년째 들어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4년간 소아과 전공의 충원율은 2020년 71%, 2021년 37%, 2022년 28%, 2023년 25%로 급감했다(〈그림 1〉 참조).

대학병원의 의사 인력은 크게 교수(전문의)와 그 밑에서 수련을 하는 레지던트(전공의)로 구성돼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 전공의는 대학병원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병원의 환자 진료를 떠받치는 역할을 해왔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의 한 소아과 전공의는 “교수가 환자의 치료 방향을 결정하면 거기에 따라 검사·처치·면담·기록·퇴원 등 환자를 직접 보는 실무는 대부분 전공의들이 맡는다. 신체로 치면 교수가 브레인, 전공의들은 그걸 수행하는 손발이다”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전공의들은 대학병원을 24시간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다. 대학병원은 밤에도 입원 병동과 중환자실, 응급실을 지킬 당직 의사가 있어야 한다. 보통은 전공의들이 번갈아가며 당직을 서는데 소아과 전공의의 빈자리가 커지면서 이 '시프트'를 채울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학병원 소아과의 위기가 외래 진료는 유지하지만 소아 입원 중단, 응급실 소아 야간·주말 진료 중단의 형태로 나타난 이유다.

본래 수련의 제도의 취지에서는 크게 벗어나 있지만, 소아과 전공의 미달은 현재 한국 의료계에서 대학병원이 제공해온 소아 필수의료의 공백을 가늠하는 지표이다. 〈시사IN〉은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을 통해 ‘2020~2023년 4년간 수련병원별 소아과 전공의 정원과 모집 현황’ 데이터를 확보했다. 1년 차부터 4년 차까지 4년 동안 전공의 모집 현황을 통합해야 2023년 현 시점에서 대학병원 소아과에 비어 있는 인력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를 다시 지역별로 분류하고, 각 수련병원별로 따져보았다.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제공하는 응급실 온라인 종합상황판에서 각 병원의 소아 응급진료 상황을 체크했다. 이 자료들을 종합해 ‘소아 필수의료 지형도’를 살펴보았다. 한 줄로 요약하면 ‘전국이 빨간불인데 지역은 더 빨간불’이라고 할 수 있다.

2023년 들어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크게 축소되었다. ⓒ시사IN 박미소

10명 필요한데 확보 인력은 4명뿐

소아과 수련병원으로 승인된 종합병원은 전국에 70여 곳이다(이번 기사에서는 특수성을 띤 국립암센터·원자력병원, 해당 기간 전공의 모집이 없었던 제일병원을 제외하고 68곳을 조사했다). 매해 전국적으로 모집하는 소아과 전공의 수는 200명가량이다. 2020년에서 2023년까지 4년간 837명을 모집했는데 이 기간 들어온 인원은 340명이다. 1년 차~4년 차 소아과 전공의 총정원의 41%이다. 10명이 필요한데 확보된 인력은 4명뿐이라는 뜻이다. 저출생 시대에 맞게 소아과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실정에서 대학병원 소아과 진료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숫자다.

4년 내내 전공의가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아 소아과 전공의가 전혀 없는 병원도 적지 않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소아과 전공의가 0명인 수련병원은 총 12곳이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연속 소아과 전공의를 뽑지 못한 곳은 17곳이다. 전체 소아과 수련병원 68곳 가운데 모집 인원의 절반을 채우지 못한 병원을 세어보면 무려 42곳에 달한다(최근 4년 전국 소아청소년과 수련병원 전공의 모집 결과 https://www.sisain.co.kr/50488).

이마저도 서울이 끌어올린 수치이다. 서울 소재 소아과 수련병원(21곳)은 전공의 총정원 412명 가운데 228명을 확보해 충원율 55%를 기록했다. 그 외 지역들은 서울보다 전공의 모집 정원 자체가 훨씬 적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평균 충원율인 41%를 넘긴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그림 2〉 참조).

수도권 지역인 경기도와 인천은 전공의 모집이 눈에 띄게 저조했다. 경기도 수련병원(11곳)은 4년간 총 99명을 모집했는데 들어온 전공의는 20명에 그쳐 충원율이 20%였다. 경기 북부(고양), 남부(성남·수원·화성), 서부(부천·광명·안양)로 나누어도 충원율이 각각 17%, 24%, 17%로 낮았다. 인천은 충원율 16%로 인하대병원과 길병원이 총 31명을 모집했으나 5명이 확보됐다.

강원도는 한림대춘천성심병원, 강원대병원(춘천), 원주세브란스병원에서 전공의 17명을 구했는데 4명이 들어와 충원율 24%였다. 대전은 수련병원 3곳 가운데 건양대병원만 유일하게 전공의를 일부 확보해 충원율 18%였다. 전라남도와 경상북도는 소아과 수련병원이 없다. 이 지역에서 소아 중증환자 진료를 도맡는 광주(수련병원 3곳)와 대구(6곳)는 전공의 충원율이 각각 35%, 26%이다. 울산은 울산대병원에 전공의 한 명이 근무한다. 제주도는 제주대병원에서 2020년 한 명, 2023년 한 명을 모집했지만 들어오지 않아 소아과 전공의가 한 명도 없다.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운영하는 종합상황판을 통해 각 수련병원의 응급실 진료 불가 메시지를 확인한 결과 소아 응급진료가 특히 축소된 지역은 대전, 대구, 부산이었다. 대전은 충남대병원·건양대병원·대전을지대병원 응급실 모두 야간에 소아 환자를 받지 않았다. 대구는 시내 5개 대형병원 중 경북대·계명대동산·대구가톨릭대·영남대 4개 병원이 소아 응급진료를 보지 않거나 매우 한정된 케이스만 수용하고 있다. 부산은 6개 수련병원 가운데 부산대병원·동아대병원 등 5개 병원에서 소아 응급환자의 야간·주말 진료가 제한되었다. 다만 대구와 부산은 외곽 지역에 있는 칠곡경북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이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한다. 응급실 종합상황판에 진료 가능 여부를 올리지 않는 병원이 상당수여서 실제 소아 응급의료 상황은 전국적으로 이보다 더 제약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소아과 전공의 지원이 급감하는 가운데 서울 쏠림 현상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2023년 모집 현황을 보면 지역은 ‘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다. 2023년 총 208명 모집에 53명이 충원되었는데 이 중 44명이 서울의 수련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인천, 강원, 대전, 충남, 대구, 부산, 경남, 제주의 수련병원들은 2023년 소아과 전공의를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그림 3〉 참조). 서울로 간 44명 중에서도 대다수가 서울대병원(14명), 서울아산병원(10명), 삼성서울병원(7명) 세 곳에 몰렸다.

2023년 지원 전공의 0명인 지역 수두룩

지역의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일했던 한 소아과 의사는 “지역 병원들은 전공의 의존도가 더 높다”라고 말했다. “서울 대형병원들은 교수와 전공의 사이에 펠로들이 꽤 두텁게 일하고 있다(펠로는 해당 과목에서 전공의를 마치고 해당 과목의 면허를 땄지만 대학에 남아 진료와 연구를 하는 전문의를 뜻한다). 그러나 지방에는 펠로를 둔 병원들이 많지 않다. 전공의가 없어지는 순간 그 역할을 교수가 다 하거나, 일제히 중단해야 한다.”

대학병원 소아과 진료를 정상화할 대안으로 ‘전담 전문의’ 채용이 꼽힌다. 소아과 전문의들로 입원 전담 전문의, 중환자 전담 전문의, 응급실 전담 전문의를 뽑아 그동안 전공의들이 메우던 입원 병실, 당직 스케줄, 응급실 업무를 대체하자는 것이다. 전공의라는 값싼 인력에 의존했던 병원 운영에서 벗어나 전문의 중심 진료체계로 전환하자는 방안은 수년간 누누이 언급되었던 이상적인 방향이다. 인하대병원은 3년째 소아과 전공의를 모집하지 못하고 있지만 ‘전담 전문의’ 인력을 충원해 인천의 다른 상급종합병원들이 소아 입원·응급 진료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도 소아과 진료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제공해왔다.

그러나 소아과에서 입원 전담 전문의 등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공의보다 임금수준이 훨씬 높은 전담 전문의를 뽑는 데에 난색을 보이는 병원도 있고, 적극적으로 구하려는 병원이라도 지원자가 없거나 몸값이 크게 뛰어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전공의 미달로 현재 대학병원 소아과에 벌어진 인력 공백의 규모 자체가 워낙 커서 단시일 내에 전문의로 빈자리를 다 메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지난해 12월 집계한 바에 따르면, 소아과 수련병원 가운데 입원 전담 전문의가 1인 이상 근무하는 곳은 27%(서울 30%·타 지역 24%)에 그쳤다.

6월7일 서울의 한 소아 전문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아이를 안은 여성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안타까운 뉴스를 통해, 또 소아 진료에 어려움을 겪었던 환자와 보호자들의 경험을 통해 올해 부쩍 소아과 위기가 피부로 와닿고 있지만, 대학병원 소아과의 필수의료 공백은 몇 년간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4년간 전공의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2020년 충원율 71%를 기록한 뒤 이듬해 37%로 급락한다. 그나마 전공의 지원자가 비교적 많았던 2020년 소아과에 들어왔던 4년 차 전공의들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병원을 떠난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서 임원을 맡고 있는 은병욱 노원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올해도 힘들지만 내년이 더 두렵다”라고 말했다. “우리 병원만 해도 4년 차 전공의 2명 이후로는 전공의가 없다. 지금은 무너지기 직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11~12월부터 4년 차 전공의들이 전문의 시험 준비에 들어간다. 불과 몇 달 남지 않았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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