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9일 경기도 시흥의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앞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소아 환자와 보호자들.ⓒ시사IN 신선영
4월29일 경기도 시흥의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앞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소아 환자와 보호자들.ⓒ시사IN 신선영

4월23일 일요일 아침 7시30분. 신도시 지역의 한 아동병원. 약 40평 규모 대기실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림해서 세보아도 대기실에 들어찬 사람이 120명은 족히 넘었다. 주말 아침부터 소아청소년과(소아과) ‘오픈런’을 한 보호자들과 아이들이다. 접수대 앞으로는 S자 모양의 긴 줄이 늘어섰다. 전날 입원을 기다리다가 결국 자리가 나지 않아 새벽 5시에 다시 왔다는 4세 여아의 엄마는 대기 순번 36번을 받았다. 아기띠를 두른 채 두 시간 동안 꼬박 서서 발을 구르던 한 아빠가 한숨 쉬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전쟁이다.”

과장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보호자들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면 피를 말려야 한다. 소아과 진료 예약 앱은 ‘1분 컷’으로 마감되고, 예약을 잡지 못한 부모들은 “시속 120㎞”로 차를 몰아 아직 문 열지 않은 소아과로 달려간다. 다른 한편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자체가 고사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몇 년째 전공의가 들어오지 않아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이 소아 입원진료를 중단하는가 하면, 소아과 개원의들이 경영난을 이유로 폐과를 선언한다. 그 틈바구니에서 현장을 지키는 소아과 의사들은 진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 넣는다.

모두가 힘겨운 싸움 중이다. 비난의 화살은 갑질하는 맘카페로, 뭘 물어볼 겨를도 없이 3분 만에 진료를 끊는 소아과 의사에게로, 무책임하게 소아 환자를 받지 않는 대학병원으로, 가벼운 감기에도 소아과에 뛰어오는 보호자들로 돌고 돈다. 원망이 오가는 사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은 하루하루 위태로워지고 있다. 전쟁통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소아 진료를 제공하고, 제공받을 길은 없을까? 저출생과 전공의 지원 감소라는 나선형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는 소아과를 구해낼 해법이 과연 있기는 할까? 〈시사IN〉은 우선 소아과를 둘러싼 당사자들의 시선을 통해 소아 진료 현실을 살펴보는 데에서 출발하려 한다.

시선 1. 신도시 지역 어린이병원 원장

박용훈씨(가명)는 입원 병실을 갖춘 아동병원의 공동 원장이다. 그가 일하는 아동병원은 평일에 밤 11시, 주말에는 저녁 6시까지 외래 진료를 보는 달빛어린이병원이기도 하다(달빛어린이병원은 야간·주말 진료를 하도록 정부가 지정한 소아 의료기관이다. 전국에 37곳이 있다).

4월23일 일요일 아침 8시. 입원실 회진을 돌고 2층으로 내려온 그가 대기실을 가득 채운 보호자와 아이들 사이를 뚫고 다이빙하듯 진료실로 뛰어 들어갔다. 보통 병실 회진을 돈 뒤 병원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해결하지만 이날처럼 “병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때”는 건너뛴다. 병원 앞 주차장에는 끊임없이 차가 들어섰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는 연신 사람들을 토해냈다. 병원 홈페이지에 안내된 진료 시간은 오전 9시부터이지만 그는 한 시간 일찍 진료실 문을 열었다. 컴퓨터를 켜자 모니터에 접수 환자 수가 떴다. 86명. 이날 하루 예정돼 있는 환자 수가 아니다. 아침 8시까지 박 원장 앞으로 접수를 마친 환자 수이다.

본래도 신학기와 환절기가 겹친 3·4·5월은 소아과가 붐빈다. 올해는 차원이 다르다. 마스크 착용이 전면 해제되고 지난 3년간 코로나19 유행으로 주춤했던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단체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감기 바이러스 7~8종이 일시에 유행하고 있다. RS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나을 즈음이면 보카 바이러스에, 보카 치료를 끝내면 아데노 바이러스에 다시 걸리는 식이다. 3월부터 두 달째 약을 달고 사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치료 시기를 놓쳐 폐렴으로 악화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긴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시절 그도 ‘3분 진료’를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개원의가 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진료비 이외에 수익 낼 항목이 거의 없는 소아과 특성상 환자를 많이 봐야 병원이 돈을 번다는 영리적 목적도 있지만, 진료를 짧게 끊어야만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대기 시간은 ‘복리’로 늘어나요. 제가 앞 환자를 조금만 오래 봐도 그 뒤에 기다리는 환자들은 연쇄적으로 대기 시간이 길어져요.” 얼마 전 평일 야간 진료 때는 저녁 6시에 접수한 아이와 엄마가 밤 11시30분에야 진료를 봤다. 진료 시간이 5분만 되어도 좀 더 “다정한 소아과 의사”가 될 수 있을 텐데, 마음속에 늘 남아 있는 아쉬움이다.

그가 안간힘을 써서 환자를 보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주말이나 평일 저녁, 이곳에서 진료를 받지 못한 아이와 부모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달빛어린이병원에서 수용하지 못해 튕겨 나간 환자들은 응급실로 가야 한다. 열나는 경증 환자들이 대학병원 응급실을 채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할뿐더러, 소아 응급환자 앞에 놓인 문턱 역시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다.

입원해야 하는 아이들 앞에 놓인 여정은 더욱 험난하다. 중증 난치병 환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아 입원의 대부분은 폐렴, 장염, 고열이 원인이다. 박 원장은 가장 흔한 질환인 폐렴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폐렴은 기침과 고열을 동반해요. 어린아이들이 기침을 심하게 하면 ‘콜록’ 할 때마다 몸이 들썩이잖아요. 뜨거운 햇볕(열) 아래서 쉬지 않고 운동을 하는 것과 비슷해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어른이든 아이든 탈진하겠죠. 그러면 링거를 맞히면서 포도당과 전해질, 수분을 공급해줘야 해요. 문제는 소아과 특성상 애들이 입원해서 수액을 맞을 수 있는 병원이 한정적이라는 거예요.” 박 원장네 병원만 해도 새벽 5~6시부터 기다린 아이들이 입원하고 나면 그 이후로 오는 환자들은 한없이 병상이 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날이 많다.

폐렴이 심한 아이들은 수액으로 포도당과 전해질을 공급해줘야 하는데 소아 입원 병실을 찾기가 쉽지 않다.ⓒ시사IN 신선영
폐렴이 심한 아이들은 수액으로 포도당과 전해질을 공급해줘야 하는데 소아 입원 병실을 찾기가 쉽지 않다.ⓒ시사IN 신선영

얼마 전에는 전화통을 붙들고 인근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와 언성을 높였다. 숨을 잘 쉬지 못하는 아기였다. 2차 병원인 아동병원에서는 커버할 수 없는 중증도의 환자라 대학병원에 전원을 문의했다. 일단 산소 투여를 하는 긴급 처방을 해서 그리로 보내겠다고 하니 “(소아과) 전공의도 없고, 입원실도 없으니 보내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는 말에 “내가 전화 돌리는 동안 애가 넘어가면 어떡할 거냐. 거기는 숨 못 쉬는 소아 환자를 케어하기 위한 장비도 있고, CPR(심폐소생술)도 할 수 있고, 의료진도 더 많지 않으냐. 여기는 나랑 간호조무사 두 명뿐이다”라고 실랑이를 벌인 끝에 그 환자를 전원시킬 수 있었다.

낮 1시30분. 역시 점심도 거른 채 오후 진료에 들어갔다. 정신없이 다음 환자, 또 다음 환자를 보는데 진료실에 들어온 보호자가 불같이 화를 낸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입원 자리를 얻으려고 새벽 2시에 병원에 왔는데 새벽 5시쯤 온 보호자의 아이가 먼저 병실을 배정받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접수 과정에서 착오가 생긴 모양이었다. 박용훈 원장은 “정말 죄송하다. 그런데 제가 지금 (대기실로) 나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꼭 오늘 입원을 하시게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드리겠다”라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어째서 순서가 뒤집혔는지 박 원장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걸 따지려면 CCTV를 돌려봐야겠지만 그럴 여유도 없고, 추궁하기 시작하면 가뜩이나 격무에 시달리는 직원들을 병원에 붙잡아두기도 어렵다. 4월23일 하루 환자 212명을 보고 저녁 8시15분 퇴근하는 길, 그는 생각했다. ‘아이 데리고 병원에 오는 것조차 왜 이렇게 경쟁을 해야 할까.’

시선 2. 두 자녀를 둔 워킹맘

서은주씨(가명)는 여덟 살, 네 살 형제를 키우는 엄마다. 결혼하고 남편 직장을 따라 연고가 없는 대전에 왔다. 지금은 맞벌이 중이다.

굳이 ‘소아과 대란’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이가 아플 때 맞벌이 부부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라면서 딱 두 번 입원했던 첫째와 달리 돌 직전에 폐렴을 앓은 둘째는 어린이병원 입원실을 찾는 경우가 잦다. 심할 때는 한 달에 두 번씩 입원하기도 했다. 부부 둘 다 비교적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장에 다녀서 아이가 병원에 가야 하거나 입원할 때면 연차를 쓰곤 했는데 지난해에는 10월 무렵 무급휴가까지 죄다 소진하고 말았다. 그 바람에 다른 지역에 사시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번갈아 며칠씩 오셔서 아픈 손자를 돌봐야 했다.

아이의 신체 변화를 민감하게 살피는 열혈 엄마냐고 묻는다면 반대에 가깝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은 새 학기마다 영유아 건강검진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소아과에서 받을 수 있는데 인기가 많은 곳은 한 달 전에 마감된다. “그런 곳은 이것저것 체크를 되게 많이 해준다던데” 서씨는 예약에 성공해본 적이 없다. 동네에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오래된 소아과가 있어 거기서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곤 한다. 엄마가 가서 배가 아프다고 해도, 애가 가서 목이 아프다고 해도, 감기일 때도, 폐렴일 때도 약처방이 항상 똑같은 곳이다. “(영유아 검진을 할 때도) 키랑 몸무게 재보고, 이거 들어봐라 앉아봐라 하면 끝나요. 아무래도 대충 한다는 인상을 받죠.”

주말에도 아이가 열이 난다 하면 일단은 지켜보고 해열제를 먹인다. 문 연 소아과를 찾아가더라도 한참 기다려야 하는 걸 아니까 아이도, 부모도 서로 고생이다. 그래도 열이 안 떨어지면 진료 예약 앱으로 평일인 다음 날 방문할 소아과를 알아보는데 웬만한 곳은 예약이 다 차 있다. 눈이 빠져라 앱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끔 KTX 표처럼 취소 자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안 될 때 제일 확실한 방법은 소아과 문 열기 전에 가서 그냥 기다리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병원에 갔더니 입원 대기 환자 수가 60명이었다며 그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출생 시대라는데 아이 키우는 집은 어린이집이며 병원이며 기다림의 연속이에요.”

4월29일 김정은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2과장이 소아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시사IN 신선영
4월29일 김정은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2과장이 소아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시사IN 신선영

지난 3월에도 아이 봐줄 병원을 찾아다니느라 가슴 졸이는 일이 있었다. 금요일이었다. 저녁으로 생선요리를 먹었는데 가시가 걸렸는지 첫째가 목이 아프다고 했다. 처음에는 괜찮겠지 했는데 아이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말도 못하고 고개만 겨우 끄덕거렸다. 겁이 나서 5분 거리에 있는 A 병원 응급실로 갔다. “핀셋으로 가시를 뽑고 나면” 금세 귀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A 병원 응급실 의사는 이비인후과 의사가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자 아무 대학병원이나 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B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이번에는 아이를 한번 보지도 않고 “소아과 의사가 없어서” 진료가 안 된다고 했다. 그 뒤로 서씨는 토요일인 다음 날까지 C 대학병원 응급실, D 어린이병원을 거쳐 다섯 번째로 찾아간 E 대학병원 응급실에서야 아이를 치료받게 할 수 있었다. E 대학병원 응급실도 주말에 소아 진료가 어렵다는 것을 아이 상태가 너무 안 좋다고 사정해서 겨우 접수해준 것이었다. 금요일 밤 8시부터 병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 목구멍 안쪽 상태를 확인하고 약을 처방받고 나니 토요일 밤 8시였다.

그날 서씨는 남편과 “이래서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고들 하나 봐”라고 푸념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서울의 대형병원에서도 소아 응급환자의 주말·야간 진료를 중단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났다. ‘아이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애를 낳았을까?’ 종종 머릿속을 채우는 의문에 그는 쉽게 답할 수 없다.

시선 3. 종합병원 소아과 봉직의

김정은씨는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2과장이다.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자리 잡은 신천연합병원은 132병상 규모로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랜 기간 지역사회와 호흡해온 공익적 민간병원이다.

토요일이던 4월29일 오전 7시50분. 아직은 고요한 병원에서 소아과 2진료실은 불을 밝히고 있었다. 김정은 과장은 신천연합병원에 입원한 소아 환자 22명에 대해 오더(처방)를 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5~6층 입원병동 회진을 돌며 아이들 상태를 확인하고 2층 소아과 진료실로 내려온 참이었다. 환자별로 약 투약, 검사 등 필요한 처치들을 병원 내부 전산망에 입력해두면 병동 간호사들이 그 지시를 보고 처치를 수행한다. 오더를 꼼꼼하게 내려놓아야 8시30분부터 시작되는 외래 진료에 집중할 수 있다.

아침 8시가 넘어가자 보호자와 아이들이 대기실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8시16분, 갑자기 진료실에서 뛰쳐나온 김정은 과장이 1층으로 내달렸다. 응급실에서 콜이 온 것이다. 응급실 한편에 마련된 격리 구역 안으로 젊은 엄마와 품에 안긴 아기가 눈에 들어왔다. 서둘러 격리 구역으로 들어가는 김 과장에게 응급실 간호사가 “애기는 아까 38도4에서 38도6이었어요”라고 체온을 알려줬다. 코로나19에 걸린 아기였다. 곧 보호구를 착용한 김정은 과장이 격리실 유리창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기 배에 청진기를 대보고 엄마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격리실을 나온 그는 간호사에게 입원 준비를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쏜살같이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두 칸씩 껑충껑충 뛰어올라 2층으로 돌아오자 소아과 대기실에는 이제 엉덩이 붙일 곳이 없었다.

8시25분 첫 번째 외래환자가 2진료실로 들어갔다. 입 안쪽과 귓구멍을 들여다보려고 하자 세 살배기 지우가 울음을 터트렸다. 아빠가 아이를 끌어안고, 간호조무사가 머리를 붙잡은 상태에서 의료용 플래시로 입 안쪽을 비춰볼 수 있었다. 외래환자를 보는 동안에도 김정은 과장의 안테나 한쪽은 입원병동에, 다른 한쪽은 응급실로 뻗어 있다. 입원병동 간호사들이 아기가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한다거나, 뭘 먹고 토했다는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보내온다. 예상치 못한 증상이면 2층 소아과 진료실로 내려오도록 한다. 이날도 환자복을 입고 한쪽 손에 링거를 꽂은 아이들과 보호자가 중간중간 진료실을 찾았다.

4월29일 김정은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2과장이 주말 오전 진료를 앞두고 응급실로 달려가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사실상 1인 3역이다. 김정은 과장은 진료가 없는 일요일이나 휴일에도 병실 회진을 돌기 위해 병원에 나온다.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1진료실은 올해 1월부터 비어 있다. 4개월째 소아과 전문의를 구하고 있지만 지원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대학병원 소아과들이 입원전담 전문의 채용에 나서면서 신천연합병원 같은 중소 규모 병원들은 소아과 의사들 사이에서 더욱 입지가 좁아졌다.

지금의 외래환자도 입원환자도 김정은 과장이 혼자 보기에는 힘에 부치는 숫자이다. 그러나 시흥 북부 지역에 소아 입원이 가능한 병원은 신천연합병원이 유일하다. 요즘에는 안산, 부천,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입원을 받아주지 않아 이곳까지 오는 환자와 보호자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대학병원 교수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대학병원에서도 전공의 확보가 안 되면서 수년째 교수들이 당직 시프트를 메우고 있어요. 그분들도 이제 너무나 ‘번아웃’이 돼버렸어요.”

김정은 과장이 소아과 의사로 살아온 지도 20년이 넘었다. 대학병원 교수로도 있었고, 자신의 이름을 딴 소아과를 개원한 적도 있다. 개원의, 봉직의, 대학교수. 그 가운데 소아과를 지망하는 후배 의사들이 처음에 품었던 꿈을 실제로 펼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던가. 소아과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질수록 그의 고민도 깊어진다.

시선 4. 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

소아청소년과에는 큰 단체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전체 소아과 의사들을 아우르는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이다. 한국 의료체계에는 소아청소년과,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 26개 진료 과목이 있는데 각 진료 과목별로 학회가 조직돼 있다. 또 다른 단체인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조금 독특하다. 소아과 개원의들의 모임이다. 3월28일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연 곳이 여기다. 검은 옷을 입고 모인 의사들은 소아과 의원의 수입이 점점 줄어 더 이상 병원을 운영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호소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의료계 인사는 “소아과는 어찌 보면 정직한 과”라고 말했다. 소아과에서 행해지는 진료는 대부분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수가(가격)를 정해 지불하는 ‘급여’ 항목이다. 보통 한국의 의원과 병원들은 가격을 자의적으로 정하는 ‘비급여’ 항목에서 매출을 크게 올리는데 그런 면에서 소아과는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 다른 과와 비교한 통계에서도 소아과는 연평균 임금이 낮은 축에 속한다.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의원급 병원의 소아과 의사 연평균 임금은 1억6300만원으로 조사에 포함된 22개 과목 가운데 19번째였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2020년에는 1억870만원으로 오히려 수입이 줄어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의료계 인사는 “큰 수익 창출의 기회가 없는 걸 알면서도 아픈 아이를 치료한다는 가치에 비중을 두고 그 과를 선택한 사람들이 소아과 의사이다. 그런 사람들이 화를 낼 정도면 귀를 기울여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요즘 극심하게 벌어지는 ‘소아과 대란’은 흔히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미달 사태와 연관해서 얘기된다. 2023년 소아과 전공의 확보율은 17%에 그쳤다. 대학병원을 포함해 전국의 소아과 수련병원 50곳 가운데 38곳이 전공의를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이런 뉴스가 속속 전해지며 위기감을 더했다. 그런데 상황을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최근 1~2년이 아니라 기간을 더 길게 잡아 살펴보면 2018년 101%, 2019년 94.2%로 정원을 거의 다 채울 만큼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하는 전공의 숫자가 충분했다(〈그림 1〉 참조).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20년, 2021년을 지나며 급감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소아과 대란’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한 소아과 전문의 ㄱ씨는 코로나19의 영향을 꼽았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소아과는 재앙적 수준의 수익 급감을 겪었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의료기관 방문을 꺼린 데다 마스크 착용, 등원·등교 중지 등으로 소아들이 자주 걸리는 질환의 발생이 현격히 줄어들기도 했다. ㄱ 전문의는 “지금 하루에 1000명씩 환자가 몰리는 어린이병원들이 그때는 환자 4~5명을 봤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19년 2조9000억원이었던 소아과 진료비는 2020년 2조1000억원으로 27% 감소했다.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한 소아과 의원들이 여럿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의료계에서는 추정한다. 코로나19 영향만을 집계한 데이터는 따로 없지만 심평원 자료에 의하면, 소아과 의원 수는 2017년 2229개에서 2021년 2111개로 118곳 줄어들었다(〈그림 2〉 참조). 소아과 진료 ‘공급’은 감소했는데 마스크 해제와 일시에 몰린 감기 바이러스 유행으로 ‘수요’는 폭발하며 2023년 봄 ‘소아과 대란’이 빚어진 것이다. ㄱ 전문의는 “2020년, 2021년 소아과 면허를 따고 배출된 의사들이 구직난에 시달렸다. 그 여파가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 감소까지 미쳤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을 문제일까? 이 ‘특수 시즌’이 지나면 지금 당장 목도하는 극단적 형태의 소아과 대란은 약간 풀리겠지만 소아과 의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은 앞으로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몇 년째 전공의를 확보하지 못한 진료 과목은 전공의 확보율을 반등시키기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전공의 정원이 비었던 그 병원, 그 과에 전공의로 들어가면 1년 차 레지던트가 2~3년 차 레지던트의 일까지 모두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팔라지는 저출생 기조도 예비 의사들의 소아과 선택을 주저하게 한다.

2~3년째 전공의가 들어오지 않아 소아 입원 기능마저 마비된 대학병원 가운데 일부는 소아과 입원전담 전문의를 채용하는 방식으로 진료 공백을 메울 채비를 하고 있다. 전공의의 초장시간 노동에 기대는 대신 입원전담 전문의라는 직군을 정착시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소아과 의사라는 풀이 한정된 상황에서 한쪽이 인력을 끌어가면 다른 쪽에서는 또 다른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3월28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소아과 개원의의 경영난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연합뉴스
3월28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소아과 개원의의 경영난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연합뉴스

소아 진료 공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31일 중증·응급·분만 그리고 소아에 방점을 찍은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①소아암 진료체계 구축 ②소아 응급진료 기반 확충 ③소아 입원진료 수가 개선 ④소아 1차 의료 지원 강화 ⑤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적자 사후 보상 등이다. 소아과 의원급 1차 진료부터 중증·응급 환자까지 소아 진료 인프라의 전 부분을 아우른 듯 보인다. 2월22일 서울대 어린이병원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소아의료체계 강화를 위해 정부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대해 한 의료계 전문가는 1차 의원-2차 병원-3차 대학병원으로 이어지는 소아 의료체계에서 “사실상 최상층부만 보호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 발표 중 전국 9개 대학병원이 선정된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적자 사후 보상(⑤번)’ 사업 정도만 사실상 의미 있는 대책이라고 짚었다. 실효성을 발휘할 만큼 획기적인 예산이 확보된 사업은 이들 대형병원의 소아 진료 적자를 메워주는 정책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필수의료’에 중점을 두는 현 정부 기조상, 보편적인 의료복지보다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로 지정된 대형병원을 지원해 중증 난치 소아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에 돈을 쓰겠다는 거다. 하지만 그 아래 나머지 부분으로 자원이 흘러가긴 어렵다.”

의료는 생태계다. 1차 동네의원들이 촉수처럼 뻗어 있고, 2차 병원이 지역사회의 허리 역할을 하고, 3차 대형병원이 중증환자를 맡아야 한다. 이번 정부 대책으로 어린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부모들은 안정적으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뜻 있는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를 택하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까? 꼭대기만 비대해져서는 지금의 위기로부터 소아과를 구해내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인천 길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부족으로 지난해 12월 소아 입원 진료를 한동안 중단했다.ⓒ길병원 홈페이지 갈무리
인천 길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부족으로 지난해 12월 소아 입원 진료를 한동안 중단했다.ⓒ길병원 홈페이지 갈무리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