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

아프리카 분쟁지역부터 경기도 남단의 소도시까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의 최용준(39) 소아청소년과 과장은 2021년 여러 번 거주지를 옮겼다. 의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픈 아이들을 따라온 여정이었다.

구호활동가가 되고 싶어 의사를 꿈꿨다.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임상 경험을 쌓은 뒤 2021년 2월 ‘국경없는 의사회’ 멤버로 남수단 아곡 지역에 파견됐다. 2011년 수단에서 독립한 남수단은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 중 하나이다.

가난한 정부의 행정력조차 가닿지 못하는 오지에서 부모들은 아픈 아이를 업고 사흘 밤낮을 걸어 아곡의 유일한 소아과 의사를 찾아왔다. 생후 1.5개월, 태어난 지 45일 된 한 아기는 영양실조와 탈수증상으로 입원을 했다. 피부 가죽이 다 말라붙은 앙상한 몸에 겨우 혈관을 잡아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영양치료를 받은 아기는 하루하루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포동포동 살찌는 아기를 보며 그는 기쁘고 또 슬펐다. “알고 보니까 엄마도 영양실조라 모유가 말랐던 거예요. 지금은 저렇게 건강해져서 퇴원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거잖아요.”

구호 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공공병원인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에 짐을 풀었다. 의사로서 그간 코로나19 환자를 보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감염병 전담병원인 이곳으로 그를 이끌었다. 오미크론 유행이 본격화되며 소아 확진자 역시 넘쳐났다. 어린이들은 신체 특성상 열이 나고 목이 부으면 응급 상황에 처할 위험이 높았다. 최용준 과장은 두 달간 병원에 24시간 상주하며 놀란 부모를 달래고, 불덩이 같은 아이들의 몸을 식혔다. ‘무척’이라는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바쁜 날들이었다.

처음에는 한 달을 예정하던 기간이 석 달을 넘겼다. 다시 구호 활동을 나가려던 계획을 잠시 미루고 지난 3월 안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으로 정식 부임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들며 오랜만에 평온을 되찾은 병원에서 최용준 과장은 새로운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가 우리 아이’라는 미등록 이주아동 의료지원 사업이다.

“어리면 어릴수록 자주 아프다”라고 그는 말했다. 성인은 그 나이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기본적인 건강을 증명하지만 작고 여린 몸들은 그들의 미래만큼이나 수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다. 이른 시기에 정확한 진단과 예방적 치료가 중요한 이유이다. 부모의 체류 신분 때문에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국내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최용준 과장이 출연한 ‘국경없는 의사회’ 후원 광고에는 KBS 〈다큐 3일〉에서의 모습을 기억하는 댓글이 많다. 2015년 어린이병동의 72시간을 찍은 다큐멘터리다. 레지던트 1년 차였던 그는 “후회가 없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잘한 거 같아요. 마음에 들어요. 힘든 점은 당연히 있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고, 후회하진 않습니다.” 그로부터 7년. 답변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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