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기자로서 쓰는 기사가 아니다. 나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취재를 하지 않았다. 고백한다. 현장을 앞에 두고 취재와 구호 활동 사이에서 갈등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현장을 비추기도 했다. 그래서 후회한다. 잠시였고, 참사 현장에서 그런 행위가 양해되는 기자임에도 그때의 나를 자책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기사가 아니다. 구체적인 참사 경위와 분석도 없고, 한발 떨어져 넓게 조망하는 시야도 없다. 참사 원인 규명과 수습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날 내가 했던 일과 보고 들은 것을 되짚어 옮겨 적었다. 모두가 숨죽여 바라본 그날, 현장의 기록이다.
해밀톤 호텔 근처에 살고 있다. 걸으면 15분, 버스를 타면 두 정거장 거리다. 전셋집을 얻은 첫해, 들뜬 마음에 핼러윈 기간 이태원역 근처로 구경을 나갔다가 인파에 휩쓸려 크게 고생했다. 그 뒤로 큰 행사가 열리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날에는 해밀톤 호텔 근처에 가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한산해지는 헬스장을 가거나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산책하며 구경만 했다. 10월29일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운동을 했고 해밀톤 호텔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멀리서 구급차와 경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도로변까지 나온 인파와 꽉 막힌 차에 막혀 금방 멈춰 섰다. 구급대원들이 들것과 구급 장비를 들고 나와 해밀톤 호텔 방향으로 달렸다. 다른 구급차들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규모의 사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급대원들이 향한 방향으로 돌아섰다. 휴대전화 카메라 앱을 열고 인파 사이를 헤치며 뒤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한 건 오후 10시50분이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으며 걷다 서다를 한참 반복했으니 해밀톤 호텔 근처에 도착한 시간은 11시를 훌쩍 넘겼을 것이다. 의식을 잃은 사람들이 들것과 시민들의 손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멀리 있는 구급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실려온 사람을 도로변에 눕히고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했다. 그사이 두 명이 더 실려 나왔다. 네 명, 다섯 명이 그 뒤를 따랐다.
“CPR 자격증 소지자 있어요?” “좀 도와주세요!” 휴대전화 카메라 너머로 구급대원과 시민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여러 기회로 CPR을 반복해 배워왔다. 사고 현장에서의 경험도 있었다. CPR을 할 수 있다고 알렸다. 근처에 있던 다른 구급대원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뒤를 따랐다. 주점과 클럽이 모인 골목을 지나 해밀톤 호텔 뒤쪽을 돌자마자, 발이 저절로 멈춰졌다. 현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구급대원과 경찰, 시민들이 동시에 CPR을 하고 있었다. 왼편에 보이는 좁은 경사로에선 더 많은 사람들이 넘어진 채 얽혀 있었다. 손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도와야 했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됐다.
도움을 요청하는 분명한 신호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며 누워 있는 여성의 몸을 흔들고 있는 남성이 보였다. 신발을 한쪽만 신고 있었고, 바지에 새카만 발자국이 남아 있었던 것을 보면 그 역시 방금 구조된 것으로 보였다. “이분 의식 잃으신 지 얼마나 됐어요?” “CPR은 하고 있었어요?” 질문을 했지만 남성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여성의 코에 귀를 대고 호흡과 흉부 움직임을 확인했다. 팔을 걷어 맥박을 체크했다. 불규칙하고 희미했지만 호흡이 있었다. CPR을 가르쳐준, 이제는 취재원이 된 의료계 관계자가 ‘이런 경우는 환자가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라’고 일러줬다. 의학적으로 확인된 거냐는 질문에 ‘상황이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다. 웃어넘겼던 그 말이 뒤늦게 이해됐다. 여성은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그 신호에 답해야 했다.
CPR과 인공호흡을 반복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힘은 점점 빠져가는데 여성의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요! 저 힘 빠져요!”라고 외치자 다른 시민들이 달려와 손을 바꿔줬다. 호흡이 불규칙하다는 점을 알렸고 서로 신호에 맞춰 CPR과 인공호흡을 했다. 누워 있던 여성이 토사물을 뱉어냈다. 호흡이 돌아왔다. 근처의 구급대원에게 알렸다. 함께 보조를 맞춘 시민들과 여성을 들고 도로변으로 내려왔다.
현장으로 올라갔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내 앞으로, 뒤로 의식을 잃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실려 내려오고 있었다. 경찰이 도로와 인도를 통제하며 부는 호루라기 소리와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과 비명,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음악소리가 한데 뒤섞여 들려왔다. 모두가 어렸고, 또 젊었다. 한껏 꾸미고 왔을 이들의 옷과 얼굴엔 땀과 토사물, 혈흔, 발자국이 묻어 있었다. 육안으로도 심각한 부상이 확인되는 사람들, 푸른색 모포를 덮고 나란히 누워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명치끝이 저려왔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경찰과 소방이 더 많이, 가까이 있었다면
구급대원과 경찰들은 여전히 홀로 두세 명을 번갈아 돌보고 있었다. 구호 조치가 서투른 시민들은 구급대원이 큰 소리로 넣어주는 구령에 맞춰 CPR을 했다. 다른 소방 관계자는 마이크를 켜고 “구호 조치에 나서신 분들은 최선을 다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움직여야 했다. 크게 숨을 쉬고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급히 한 남성을 눕히고 상의를 벗기고 있는 일행들이 보였다. 근처를 돌며 돕고 있는 간호사 출신 시민이 알려준 대로 하고 있다면서도, CPR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앳된 얼굴의 남성은 호흡과 맥박이 없었다. 얼굴은 검은빛으로 변해 있었다. 잠시 망설이고 있으니 일행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빨리 CPR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재촉했다. 가슴을 계속해서 압박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손을 멈추자 일행들은 “왜 그러세요” “우리 조금 더 해봐요”라며 다그쳤다. 다시 몸을 움직였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했던 CPR은 희망을 가지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행들을 위한 CPR이었다.
간호사라고 밝힌 여성이 다가온 뒤에야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성은 잠깐 멈추라고 하더니, 누워 있는 남성의 눈에 휴대전화 플래시를 비췄다. 한숨을 내쉬고 립스틱으로 가슴에 ‘N’자를 그렸다.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표시다. 일행들에겐 금방 굳을 수 있으니, 남성의 손을 모아주라고 일러줬다. 도와야 할 사람이 더 있다며 나를 일으켰다. 뒤에서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렸다.
같은 상황이 얼마나 반복됐는지는 모른다. CPR을 얼마나 했는지, 몇 명을 했는지 세어보진 않았다. ‘숨 쉬세요’ ‘눈 뜨세요’를 제외하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경찰관이 고생하셨다고 어깨를 두드렸을 때, 그제야 멈췄다. 현장은 소방과 경찰에 의해 통제가 되어 있었고 전문 의료진들이 투입돼 있었다.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함께 보조를 맞췄던 다른 시민이 건네주고 간 물을 마셨다. 고개를 들자 한 여성이 보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빨리 일어나”라며 누워 있는 사람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한 여성이 보였다. 그가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사람은 모포를 덮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의 얼굴이 그 여성과 겹쳐 보였다.
나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두고 며칠을 고민했다. 글을 쓰기 위해 그날을 되짚는 일이 힘들었던 나만큼, 이것을 읽는 이들 역시 모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사 희생자와 부상자, 가족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 그러나 참사 수습 과정을 보면서, 그날을 되짚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날 구호 활동에 나섰던 모두는 최선을 다했다. 적어도 구조 현장에서 지켜본 일선 경찰들의 통제, 소방의 구조 지휘와 통솔은 있는 조건하에서 최선을 다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구호 활동 뒤에는 그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경찰, 소방 모두 한계를 넘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을 하려고 노력했다.
다만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돌려 다시 묻는다. 구조 현장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경찰과 소방이 더 많이,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부족했던 소방과 구급대원의 손이 더 빨리 모일 수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존재만으로도 통제와 질서유지 역할을 하는 경찰관이 배치돼 있었다면 참사 직후 진입이 더 빠르지 않았을까. 애초에 인파가 뒤섞이는 일 자체를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은 그래서 무책임하다. 그는 참사 직후인 10월30일 오전 1시, 참사 현장을 방문했다. 나와 시민들과 소방과 구급대원, 경찰과 같은 공간에서 직접 상황을 파악했음에도 그는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과연 그것(경찰·소방 대응)이 원인이었는지 의문이다.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핼러윈 기간에 모인 인파를 두고 ‘자발적 집단 행사’라고 규정해 권한 행사가 어려웠다는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들의 변명은 궁색하다.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한 공간에 몰릴 것이 일찌감치 예고된 상황에서, 별도의 주최자가 없다면 시민들의 질서와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국가뿐이다. 지금의 지적을 단순히 사후 책임을 묻기 위한 정치적 선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현장의 절박한 메시지다.
‘책임’이라는 말이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뒤늦게 나왔다. 동시에 책임 회피와 떠밀기를 암시하는 발언들이 쏟아지면서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현장에서 만났던 한 부상자는 그날, 친구의 손을 놓쳤다며 모든 게 본인 잘못이라고 했다. 여러 취재원들을 통해 현장에 투입된 경찰·소방·의료계 관계자들은 더 많은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며 자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왜 참사 이후의 자책과 후회가 오롯이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몫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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