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11월1일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흥구

브리핑 시작 1시간30분이 지났지만 기자들이 계속해서 손을 들었다. 발언 기회를 얻은 한 기자가 자신을 ‘알자지라’ 소속이라 소개했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기본적으로 관리가 안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는지 궁금해서 카메라맨이지만 질문한다”라고 말했다. 11월1일 ‘한덕수 국무총리 이태원 사고 외신 브리핑’ 현장에서 나온 이 질문은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외신들의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날 외신기자 70여 명은 한국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며 날 선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서는 인재가 주기적으로 일어난다고도 한다. 그때마다 안전 사회를 정부가 강조했는데 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가?(〈뉴욕타임스〉)” “주최 측이 없던 행사라고 해서 과연 방지 못할 만한 참사였나(NBC)” “공공기관 중에서 안전을 총책임지는 기관이 어디인가?(BBC)”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청년들이 또다시 이런 시국을 감당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가디언〉)”

주요 외신은 참사 직후부터 현장 소식을 발 빠르게 전했다. 사건 당일 홈페이지에 속보 창을 띄운 〈뉴욕타임스〉는 현장에서 인파에 휩쓸렸다 살아남은 생존자, 인근 상점 관계자, 목격자 등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의 퍼즐을 그렸다. 공통적으로 그 같은 대규모 인파는 처음이고 경찰 인력이 적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핼러윈 당시에도 이태원을 찾았던 한 외국인은 여러 경찰이 골목 입구를 감시했던 1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그 경찰이 올해 거기에 있었다면 아마 아무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CNN 역시 사고 당일 통제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중점 보도했다. 이태원이 최근 핼러윈 축제를 즐기는 인기 장소로 부상했고, 일부는 해외에서도 오는 등 많은 인파가 예상되었는데도 군중 통제에 대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게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참사 초기에는 주로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에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일본 ANN 방송은 스튜디오에 사고지점인 이태원 골목 경사와 같은 각도의 구조물을 설치해 당시 상황을 추측했다.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희생자 중 외국인은 26명이다. 이들의 생전 삶을 반추하는 기사도 잇따랐다. 미국 언론은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방문한 미국인 스티븐 블레시와 앤 마리 기스케의 비보를 전했다. 유족은 슬픔을 넘어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한 당국에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희생자 중 한 명이 미국 연방 하원의원의 조카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일본인 희생자 두 명 역시 유학생으로 〈요미우리신문〉은 케이팝과 한국을 좋아하는 도미카와 메이의 사연을 전했다. 이번 참사로 5명이 사망한 이란의 외무부 대변인이 한국 정부의 현장 관리가 부실했다고 비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해당 언급이 개인적 발언이었다는 해명과 더불어 한국 정부의 유감 표명이 있었다.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함께 정부·지자체의 대응에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미국의 군중 안전 전문가 폴 워트하이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코로나19로 억눌린 수요가 있다는 걸 고려할 때 당국이 많은 인파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의문이라며 경찰이 골목길에 대한 접근을 관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사고는 한 가지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정책적·행정적·간접적·직접적 원인이 있다. 한 부분이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재앙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재해나 사고가 아니라 인재라는 기조가 명확해졌다. 한국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문제삼는 기사들이 늘었다. 경찰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도 소개되었다. 10월31일 AP통신은 이번 사고를 ‘인재(manmade disaster)’라고 규정했다. 11월1일 〈뉴욕타임스〉는 군중 안전을 연구하는 밀라드 하가니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대학 교수의 발언을 빌려 ‘분명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그는 “당국이 골목이 위험한 병목지역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어야 한다. 경찰도, 서울시도, 정부도 이 지역의 군중 관리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해당 매체는 BTS가 5만5000명 규모의 쇼를 열 때 경찰 1300명을 배치했지만 이태원 참사 당일에는 137명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어 덧붙였다. “한국 경찰은 아무리 작은 규모의 시위라도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지난 토요일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기 없는 지도자의 시험대

비판적 논조의 외신 보도가 이어지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외신기자를 상대로 브리핑을 열었다. 수차례 ‘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 군중 관리)’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질문이 없을 때까지 회견을 진행했지만 가장 화제가 된 발언은 농담조의 실언이었다.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라는 질문 과정에서 통역에 문제가 생기자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라고 웃으며 말한 것.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비판이 일자 사과했다. BBC는 한 총리가 사전 관리가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했다며 정부가 이번 일을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사고’로 치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꼬집어 보도했다.

이번 참사가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도 눈에 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일로 “한국의 기술·대중문화 강국의 이미지가 손상됐다”라며 2014년 판교 환풍구 추락 사고, 세월호 참사를 언급했다. 〈블룸버그〉는 이태원 참사가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핼러윈 비극은 인기 없는 지도자의 시험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희생자가 주로 젊은이인 악몽 같은 재난”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중도 우파 지도자” 등을 언급하며 “잠재적으로 정치적 인화점이 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뒤 정치적 위기에 몰리게 되는 과정을 짚으며 ‘7시간 논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역대 정부는 외신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거나 정부를 평가하는 데 주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외신에서 한국에 관심을 갖는 주된 영역은 북한 이슈다. 이번만은 이례적 참사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한 달 전 인도네시아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을 때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든 한국에서 왜 이토록 엄청난 규모의 압사 사고가 발생했는지 이들은 의아해한다. 참사 이후 〈뉴욕타임스〉가 던진 질문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이제, 목격자들은 과학적으로 군중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도시가 젊은 참석자들이 모이는 1년 중 가장 바쁜 밤, 어떻게 그렇게 비참하게 실패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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