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는 국정 운영의 중추 부처이자 재난안전 총괄부처입니다. (…) 또한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전국을 골고루 함께 잘 살게 만드는 데 앞장서는 부처입니다.”
행정안전부(행안부) 홈페이지(mois.go.kr)에 기재된 주요 업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처다. 156명이 숨지고 187명이 다친(11월3일 기준)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놓고 행안부 장관에게 눈길이 쏠리는 건, 그렇기에 당연한 일이다. 장관은 부처의 최종 책임자다.
참사 다음 날인 10월30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발언은 그래서 중요하다. 참사의 성격을 규정짓기 때문이다. 그는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다” 같은 말을 쏟아냈다.
사실관계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가 아니라는 뜻으로 들리는 발언이었다. 비판이 쏟아지자 이상민 장관은 10월31일 추가 발언을 했다. “(경찰이나 소방의 대응으로) 사고를 막기에 불가능했다는 게 아니라, 과연 그것이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모인 이들이 예년 대비 30% 정도 늘었고, 경찰 인력은 40% 증원됐다는 근거를 대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앞으로도 대참사를 면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의 정확한 사고 원인(발표)이 나오기 전까지는 섣부른 예측이나 추측,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책임을 묻는 목소리에 ‘선동’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같은 날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 장관의 발언을 두둔했다. “주최 측 요청이 없을 때 경찰이 선제적으로 국민을 통제할 법적·제도적 권한은 없다.” 10월29일 이태원에는 주최 측이 없었기에 경찰에 책임을 묻는 것은 ‘윤석열 정부를 반대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의미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 아닌 추모의 시간”이라는 말도 같은 기조다. 책임 소재를 묻는 것(추궁)과 애도(추모)를 동시에 할 수 없는 것처럼 대비시켰다.
이는 정부의 책임을 가리는 태도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의 유승민 전 의원은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헌법 제34조 6항(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을 강조했다. 결국 10월31일 오후 이상민 장관은 문자메시지로 ‘유감’을 표명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국민들께서 염려하실 수도 있는 발언을 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상민 장관이 공개적으로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한 날은 이태원 참사 발생 사흘 만인 11월1일이었다. 그 전까지, 10월29일 이태원의 핼러윈은 ‘축제’가 아닌 ‘현상’이라며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라고 말한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같은 날 입장문을 냈다. “관내에서 발생한 참담한 사고에 대해 구청장으로서 용산구민과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하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윤희근 경찰청장도 사과문을 발표했다.
“112 녹취록으로 국면이 바뀌었다”
11월1일은 ‘112 녹취록’이 공개된 날이기도 하다. 이태원 참사 당일 저녁 6시34분부터 신고가 빗발쳤다(인포그래픽 참조). “압사당할 거 같아요.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거 인파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주셔야 될 거 같은데요”라는 신고자에게, 경찰은 “사람들이 교행이 잘 안 되고, 압사 밀려서 넘어지고 그러면 큰 사고 날 거 같다는 거죠?”라고 확인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시민들이 참사 4시간여 전부터 정부에 알렸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인재’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경찰 책임론이 확산되면서, 시선은 이상민 장관으로 이어진다. 일선 경찰관들의 “현장 대응 미흡(윤희근 경찰청장)”만이 아니라 상황 대비 및 인력배치, 지휘체계와 같은 윗선의 책임이 가려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31년 만에 행안부 내 경찰국을 신설했다. 6월27일 이상민 장관은 직접 경찰 지휘체계를 브리핑했다. 역대 정부는 청와대가 경찰청을 직접 지휘·통제했다고 비판하며, 윤석열 정부는 헌법과 법령에 따라 ‘대통령→국무총리→행안부 장관→경찰청’으로 지휘체계를 변화시키겠다고 밝혔다. 행안부 장관의 지휘 책임을 스스로 공시했다.
또한 행안부는 6월27일 보도자료에서 ‘경찰 업무 조직’(경찰국) 신설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행안부 장관이 법에서 주어진 역할을 책임 있게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간 행안부 장관은 경찰 관련 조직이 없어 역할과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서도, 치안 관련 책임을 이유로 국회에서 해임 건의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며 실제 통과된 사례도 있다. 앞으로는 행안부 장관이 경찰 업무 조직의 보좌를 받아, 보다 충실하게 경찰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권한만큼의 책임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행정안전부는 경찰 관련 업무와 관련해 장관의 권한을 강조해왔다. 그렇기에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놓고, 윤희근 경찰청장과 함께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경질 요구가 나오는 것이다. 야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안에서도 안철수·권은희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이 공개적으로 이들의 경질을 주장한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공개적으로 발언을 못해서 그렇지, 112 녹취록으로 당내에서도 국면이 바뀌었다는 공감대가 크다. 적당한 때 이상민 장관은 옷을 벗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장관을 지키려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위험해진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이상민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11월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이 장관은 불참했다. 대신 윤석열 대통령의 조문에 동행했다. 다음 날인 11월3일에도 윤 대통령의 조문을 따라갔다.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서울대 법대’ 후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좌동훈·우상민’이라 불리며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행안부는 재난안전사고 주무 부처다.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동행한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및 당선자 시절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팻말을 언급하며 국가수반의 책임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많은 사람과 의논도 하고 상의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결정할 때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국민의 기대와 비판과 비난도 한 몸에 받는다. 열심히 하고 국민에게 평가를 받겠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에는 5월 한·미 정상회담 때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팻말이 놓여 있다. 그 팻말에는 윤 대통령이 강조했던 ‘트루먼 전 대통령의 문구’가 적혀 있다.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이태원 참사 발생 엿새째인 11월4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 영가 추모 위령법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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