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심리상담 지원에 나선 변상우 서울예술대 학생상담센터장(왼쪽)과 김지은 ‘상담공간 서로오롯’ 대표 상담사. ⓒ시사IN 조남진

참사는 트라우마를 남긴다. 10월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로 생존자와 유가족을 비롯해 보도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시민들에게 대규모 심리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고 사흘째인 10월31일, 사단법인 한국상담심리학회는 이태원 참사 수습을 지원하기 위한 대응팀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현재 국가트라우마센터 심리지원단 내에도 상담심리사가 합류해 시민들의 심리치료에 동참하고 있다.

11월2일,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지원위원회 변상우 위원장(서울예술대학교 학생상담센터장)과 홍보위원회 김지은 부위원장(‘상담공간 서로오롯’ 대표 상담사)을 만났다. 두 전문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갑작스러운 재난 앞에 그간 마련해두었던 ‘원칙’이 흔들렸다고 평가했다. 언론은 재난보도준칙을 지키지 못했고, 공직자는 곧바로 사과하지 않았으며, 참사의 원인 규명은 ‘순수한 애도’라는 구호 아래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어떻게 죽음을 애도하고 공동체의 상처를 보듬으며 무너진 사회적 신뢰를 쌓아올릴 수 있는지 물었다.

이태원 참사를 접한 시민들은 어떤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나?

변상우(변):언론에서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언급하는데, PTSD는 외상을 경험하고 4주가 지난 뒤부터 진단이 가능하다. 지금은 비정상적인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이상 반응을 보이는 단계다. 컴퓨터가 ‘랙(프로그램이 멈추거나 느려지는 현상)’에 걸리는 것처럼 사람도 심리적·정서적 랙에 걸릴 수 있다. 평소의 생각이나 감정, 행동 등에서 작은 차이라도 없는지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

김지은(김):고위험군인 생존자나 유가족을 상담할 때 개인적으로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은 ‘해리 반응’이다. 공포나 고통에 압도당하는 것을 막는 과정에서 감각과 기억, 신체 반응이 둔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재난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다양한 트라우마 증상을 보일 수 있다. 불면이나 무력감, 신체적 떨림, 대인관계 회피, 순간적인 분노, 예민함과 짜증 같은 각성 상태의 지속, 이 재난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간접외상(미디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고를 접한 후 생기는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

10월30일 저녁 이태원 해밀톤 호텔 옆 추모공간을 찾은 한 시민이 무릎을 꿇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트라우마 측면에서 봤을 때 이번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 무엇이 다를까?

:이번 참사는 수도권 도심 안에서, 특히 젊은 세대가 모인 공간에서 일어났다는 특징이 있다. SNS에 익숙한 세대인 만큼 현장 동영상과 사진이 여러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우리의 뇌는 정보를 완성된 형태로 저장하고자 하는 속성이 있는데, 초반에 정제되지 않은 단편적이고 비현실적인 정보를 접하게 된 거다.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으니 계속 검색을 하게 된다. 그렇게 접한 정보가 객관적인 사실관계들이 아니라 인간이 무너져 내린, 가장 취약한 모습의 참상들이었다. 이것에 반복적으로 노출돼 간접외상을 겪게 된 시민들이 많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특징 중 하나다.

:이번처럼 일상적인 공간에서 참사가 벌어진 경우 안전에 대한 기본적 신념이 흔들리게 된다. 언제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가 퍼진다. 이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에게 ‘재난을 당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를 ‘공정한 세상에 대한 신념(Just-world hypothesis)’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은 공정하고 공평한 곳이므로 피해자가 무고하다면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믿는, 잘못된 신념이다. 이런 생각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지기 쉽다. 희생자들이 ‘서양 놀이문화’에 빠져 ‘밤늦게까지 놀다가’ 목숨을 잃은, ‘순수하고 올바른 피해자’가 아니라는 비난은 청년 세대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사고가 난 데에는 너희 잘못도 있다는 식이다.

피해자 혐오와 2차 가해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희생자와 동세대인 청년들이 그들의 죽음에 자신을 대입하게 되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핼러윈 참사를 겪은 20대들은 10대 시절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다. 2014년, 10대였던 이들이 20대가 되어 다시 또래의 집단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겪게 되었다.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는 경험이 이들에게 어떤 마음의 상흔으로 남게 될지, 앞으로의 시민의식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된다.

:2차 가해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생존자들을 더욱 고립시킨다. 트라우마는 몸으로 온다. 예를 들어 지난주 즐거웠던 일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보통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뭘 했다는 걸 답한다. 그런데 외상을 겪은 사람들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야기하려고 하면 순간적으로 신체에 충격이 온다. 그 이후에 감정이 올라오고, 기억의 조각들이 떠오르지만 이걸 시간 순서대로 논리적으로 배열할 수 없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야, 어떻게 된 거야’라고 물어도 말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려워지면서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피해자에 대한 비난까지 쏟아지면 이들은 자신이 겪는 트라우마를 제대로 정리할 기회를 아예 잃게 된다.

언론의 초기 보도가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

:마약 등을 언급한 검증되지 않은 시민 인터뷰, 현장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의 모습을 화면에 담은 초기 보도 등은 재난보도준칙이라는 대원칙을 지키지 못한 모습이었다. 재난 현장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유언비어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납득해야 하기 때문에 온갖 말이 나온다. 언론은 이것을 정제하고 공신력 있는 언어를 통해 시민들에게 안전과 질서에 대한 감각을 유지시켜줘야 한다. 옛날 재난지침에는 재난 참사 현장에서 가장 먼저 라디오를 복구하도록 했다. 그만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심리 지원 현장상담소에서 시민들이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디까지가 국민의 알 권리이고, 어디까지가 자제되어야 할 자극적 보도일까?

:유가족 취재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족의 의사다. 언론이 ‘알 권리’를 이유로 이들의 삶을 들춰낼 순 없다. 고 김용균의 어머니처럼 유족이 스스로 결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보도윤리에 어긋나지 않겠지만, 일방적으로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며 아직 슬픔에 빠져 있는 유족들의 이야기를 옮기는 건 과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인지, 경쟁적 보도관행인지 자성해야 한다.

:트라우마 연구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정서를 자극하는 영상이나 사진이 사안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문제 해결의 추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트라우마를 흥밋거리로 소비하는 행태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불안감과 공포심이 높은 어린이를 만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매주 부모와 잔인한 사건·사고를 다루는 TV 프로그램을 봤던 거다. 시청을 중단시켰더니 어린이의 야뇨가 사라졌다. ‘시청 가능 연령’이 왜 있나? 뉴스 보도에서도 모든 연령의 시민이 그 내용을 접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자극적인 시청각 자료를 사용하는 건 피해야 한다.

어린이나 사회적 취약집단이 받을 충격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보호자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쉬운 언어로 설명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후 SNS 같은 소셜미디어를 제한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또 이태원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을 고려하면 퀴어 커뮤니티의 충격도 크리라 예상된다. 슬픔을 공유하기 위해 자조모임 등을 갖는 것도 방법이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감정에 압도될 수 있으므로 전문가 혹은 활동가가 지켜보는 가운데 모임을 진행하길 추천한다.

:팬데믹 때의 경험을 되살려 대처법을 찾을 수 있다. 초반엔 코로나19 뉴스만 나와도 불안해하고 울먹이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성인 보호자는 정부가 백신 개발 등을 포함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먼저 설명해주고, 그럼에도 어린이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묻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는 방식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즉 난무하는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검증된 정보를 차분하게 정리해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래 문화가 강한 청소년의 경우, 성인이 정보를 통제하기 어렵다.

:청소년도 또래집단과 나누는 대화에서 한계를 느낄 수 있다. 그럴 때 성인 보호자인 부모 혹은 교사가 ‘언제든지 너와 대화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인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뉴스를 통제하는 일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외상이 심할수록 더 그렇다. 지금도 아마 뉴스를 보는 게 힘든데도 뉴스 보기를 멈추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거다. 외상과 관련된 자극에 노출됐을 때 주로 보이는 특징 중 하나가 시야가 좁아지는 거다. 이분들을 상담할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도 물리적으로 목을 못 돌리고 한 곳만 보는 거다. ‘주변을 좀 돌아보세요’라고 하면 목은 그대로 두고 두 눈만 움직인다. 심리적 충격을 받으면 사람은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이 좁은 화면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저도 주위 사람들에게 뉴스를 멀리해라, 일시적으로 SNS 앱을 지우라고 권하는데 자발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애도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있다면?

:재난 상황에서 책임자가 사과하는 것이 이후 증상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다. 미국의 9·11 테러 당시 생존자들은 자신의 안녕에 대한 믿음, 타인과 세상에 대한 신뢰가 ‘산산이 부서졌다’고 느끼며 이 세상이 가짜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때 생존자들의 분노는 과녁을 잃고 사회 속에서 부유한다. 하지만 재난 책임자가 성실히 해명을 할 때, 시민들은 다시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힘을 얻는다. 사회 내의 집단적 분노를 감소시키는 데 효과적인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받으면 화가 난다. 지금처럼 가장 기본적 생존권이 흔들리는 상황이면 분노는 가중된다. 정치 지도자, 재난 책임자의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과 후속조치에 대한 약속 등을 통해 사회질서가 여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은 확인할 수 있다.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라는 단어를 쓰거나 ‘참사’를 ‘사고’라고 쓰는 등의 행동은 책임을 회피하고 축소하려는 태도로 보인다. 사태 수습을 위한 기본적 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거다.

정부가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하기도 했는데.

:세월호 참사 때는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분노를 유발했다면 지금은 중앙집권적인 지침으로 애도를 유도하고 있어서 반발심을 일으키고 있다. 교육청에 조기 게양을 하도록 공문이 내려오고 극장들은 일방적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애도를 위해 국가가 할 일은 큰 틀을 갖춰주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할 수 있도록 존중해줘야 한다.

:미국의 미술가이자 사회활동가인 셰퍼드 페어리는 ‘OBEY(복종하라)’라는 스티커를 제작해서 유명해졌다. 그에게 이 문구를 쓰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사람들이 들었을 때 가장 즉각적으로 반발심을 느끼는 단어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일방적이고 집단적인 방식의 애도를 강요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고, 희생자에게 편지를 쓰고, 긴 산책을 하며 기도를 하는 등 각자의 애도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내어줘야 한다.

어려움을 느끼는 모든 시민이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나?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심리지원단에 상담심리사들이 함께하고 있다. 대표번호 1577-0199로 연락하면 상담을 안내받을 수 있다. 한국심리상담학회 차원에서도 자체 채널을 운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kcpa_pr)을 통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 굉장히 치유가 된다. 지금 당장 엄청 죽을 것 같지 않더라도 내가 기댈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언제든지 상담을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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