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 미루어 생각하여 판정한다는 뜻이다. 기사를 쓸 때 되도록 피하려고 하는 단어다. 미루어 짐작하기보다는 똑 떨어지는 사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11월22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기자회견을 보며 ‘추정’이란 단어에 실린 비극을 목격했다. 한 희생자의 아버지가 말했다. “1997년 6월29일 10시30분 이 세상에 태어나 2022년 10월29일 이태원에서 10시30분 26세의 꽃다운 나이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 하나뿐인 우리 딸 이상은의 아빠입니다.”
사망 시간을 미루어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추정이다. 또 다른 희생자 부모는 아들의 사망진단서를 내보였다. 사망 일시도 추정, 사인은 미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말했다. “어떤 순간에 죽음에 이르렀는지, 누군가 도와줘 심폐소생술이라도 받았는지 병원 이송 도중 사망했는지 이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질문이라기보다 절규였다. 이날 유족들은 희생자들의 생전 사진을 손에 쥐고 있었다. 개개인의 삶이 증언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158개의 세계가 소멸했다는 실감도 같이 왔다.
이태원 참사 이후 의아할 정도로 유족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개별 언론사가 접촉해 기사를 냈지만 규모에 비해 소수였다. 희생자 명단 공개를 둘러싼 논쟁이 유족의 목소리를 대체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취재 관행의 변화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더 큰 원인은 유족들의 첫 기자회견에서 확인되었다. 이들이 서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결되지 못해서, 각각 어떤 사정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웠다.
한 유족은 참사 17일이 지나서야 수소문 끝에 겨우 다른 유족을 만날 수 있었다며 정부가 장례비, 위로금은 빨리 지급하면서 정작 필요했던 유족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족들이 모이면 안 되는 것입니까, 무슨 반정부 세력이라도 됩니까?” 단일한 요구를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날 발언에서 나온 것처럼 참사와 관련해 유족들만이 서로가 서로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참사 24일 만에 한데 모여 책임 규명을 요구했다. 사망 시간에 이어 참사의 책임마저 추정하는 선에서 그칠 것인가.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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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총장)
이태원 참사 희생자가 이태원에 간 사실을 전혀 몰랐던 유족은 10월30일 오후에 전화를 받았다. “희생자가 이태원에서 사망했는데 경기도 ○○병원이니 신원을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