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0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폐막식이 열렸다. ⓒdpa

한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 졸고 있다.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UNFCCC COP27)의 최종 합의문이 나오기를 기다리다 잠든 참가자의 모습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국가에 대한 ‘손실과 피해’ 기금을 조성할지를 두고 마라톤협상이 이어졌다. 폐막식은 예정된 11월18일보다 이틀 늦어졌다.

최종합의를 기다리다 잠든 남자의 사진은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이하 당사국총회)에 기대를 걸지 않는 이들이 느끼는 지루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24차 당사국총회(COP24, 2018년)부터 지난해 열린 26차 당사국총회(COP26)까지 현장에 참석해 발언을 해오던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올해 행사장을 찾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COP26이 실패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COP는 세계적인 그린워싱 축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당사국총회에 기대할 게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당사국총회는 유엔 산하 198개국(2022년 기준)의 정상과 정부 대표단이 모여서 매년 기후 대응을 논의하고, 공동 목표를 선언하는 세계 유일의 총회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국가의 선의와 결단에 의존하는 한계를 안고 있는 회의이기도 하다. 당사국총회의 이런 이중적 성격은 매번 총회 결과에 대한 상반된 평가로 이어졌다.

현장에서 펼쳐지는 풍경 역시 당사국총회의 또 다른 이중성을 보여준다. 예컨대 이번 COP27에서는 기후위기로 생존을 위협받는 10개국 섬나라의 정부 대표단보다 화석연료 기업의 로비스트가 더 많이 참석했다. 로비스트 600여 명이 이집트를 찾았다. 지난해보다 25% 늘어난 숫자다.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케이팝 팬들이 BTS 음악에 맞춰 플래시몹을 펼치며 선언이 아닌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외친 반면, 현지의 한국홍보관에서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1.5%를 차지하는 ‘탄소배출 1위 기업’ 포스코그룹의 계열사가 탄소중립 실천 우수 사례를 발표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COP27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라는 기사에서 당사국총회의 지난 역사를 짚으며 “간헐적 승리와 다수의 재앙”이라고 평가했다.

당사국총회는 2020년 코로나19로 한 차례 총회를 건너뛴 것을 빼고 1995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열리고 있다. 27년 동안 이전 총회에서 낸 숙제를 다음 총회에서 점검하고, 더 나은 목표를 논의해왔다. 당사국총회의 성과와 한계를 이해할 수 있는 몇 가지 키워드를 뽑았다.

1. 약속 두 번 깬 미국

유엔 산하에는 기후대응 협의체가 두 곳 있다. 하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다. 전 세계 기후과학자들이 모여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보고서 형태로 발표하는 기구다. 정기적으로 5~7년마다 보고서를 내는데 유엔의 요청에 따라 특별보고서도 발간한다.

다른 하나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다. UNFCCC는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국제연합 협약이다. 협약에 가입한 당사국들은 매년 당사국총회를 열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한다. 이 당사국총회를 ‘COP
(Conference Of the Parties)’라고 부른다. COP 뒤에 붙는 숫자는 총회의 회차를 뜻한다. 지난 27년, 당사국총회가 거둔 주요 ‘실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선진국의 의무적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담은 ‘교토의정서(COP3, 1997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가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고 지구온도 상승을 1.5~2℃ 이하로 저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파리협정(COP21, 2015년)’이다.

초강대국이자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 2위인 미국은 당사국총회에서의 약속을 두 번이나 파기한 유일한 국가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파리협정에서 탈퇴했다. 미국은 기후변화협약에 참여하되 구속력 없는 이행을 추구하는 ‘아메리칸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강력하게 이어왔다. 미국의 이런 입장은 당사국총회의 다자협상 테이블에서 걸림돌이 됐다.

미국은 당사국총회 개최 이전부터 자국 우선주의 행보를 보였다. 시작은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 일명 ‘리우 지구정상회의(이하 지구정상회의)’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라 불리는 조지 H. W. 부시였다. 대선 후보일 때, 그는 공화국 후보이면서도 강력한 환경정책을 편 시어도어 루스벨트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구정상회의가 열리던 당시, 미국은 오일쇼크와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여파 등으로 석탄발전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2일에 걸친 토론 끝에 지구정상회의에서는 행동강령인 ‘리우선언’과 ‘의제21’ 그리고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채택됐다. 부시 대통령은 UNFCCC 채택에 협조했지만 당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의 삶의 방식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나는 이곳에 사과하러 온 것이 아니다. (중략) 리우로 가는 길은 환경보호와 경제성장, 환경과 발전 모두를 향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후 앨 고어 미국 부통령은 미국 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1997년 COP3에 참석해 교토의정서가 채택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교토의정서에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55%를 차지하는 38개 선진국들이 2008~2012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5.2% 감축해야 한다는 의무사항이 포함됐다. 하지만 앨 고어가 들고 간 교토의정서 합의안은 미국 상원에 상정되지도 못했다. 주요 개도국들이 탄소 감축을 하지 않는다면 미국 역시 기후협약상의 감축 의무를 질 수 없다고 규정한 ‘버드헤이글 결의안’ 때문이었다. 결국 교토의정서는 2001년 취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공식적으로 비준이 거부된다. 취임 첫해 9·11 테러가 터지자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경기침체를 극복해야 한다는 이유로 공약으로 내세운 온실가스 감축마저 철회했다.

2015년 COP21이 열린 프랑스 르부르제 회의장 주변에서 기후위기 활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2020년에 만료될 교토의정서를 뒤이을 후속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사국총회는 포스트 교토 체제, 즉 ‘신(新)기후체제’를 준비해야 했다. 2009년, 기후변화 대응을 핵심 의제로 내세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기대가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코펜하겐을 호펜하겐(Hope+Copenhagen)으로 만들자’던 목표는 결국 무산됐다. 중국과 미국이 핵심 요구인 ‘개발도상국의 의무감축’과 ‘검증 및 협약의 구속력 부여’를 두고 완강히 맞섰기 때문이다. 당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화를 내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교토의정서의 후속 대처가 마련된 것은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회 당사국총회다. 여기서 파리협정이 채택되었다. 교토의정서와 달리 ‘1.5~2℃’라는 지구온도 상승 제한 수치를 명확히 정하고, 선진국과 개도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자발적으로 정하되 5년마다 실제 이행 여부를 점검하도록 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유엔기후변화협약은 최악의 순간을 맞이한다.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파리협정을 비준한 2016년 9월로부터 9개월이 지난 2017년 6월1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파리협정 탈퇴를 발표해버렸다. 대선후보 때부터 ‘기후위기는 사기이며 기후변화협약은 중국에만 유리하다’고 주장해왔기에 어느 정도 예견된 행동이었다. 미국과 유럽 간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됐다.

2. 승리 혹은 타협, 파리협정

그렇다면 파리협정은 ‘승리’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코펜하겐(2009)·칸쿤(2010)·파리(2015)에서 열린 당사국총회에 참석한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승리와 작은 환호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처럼 협상 테이블에서 뛰쳐나가는 선진국이 더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보수적인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졌다. 그 결과가 법적 구속력 없이 각자 자신들의 여건에 맞게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정하는 협정이었다.” 각국이 스스로 공표한 감축 목표치를 지키지 않거나 이행지침을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자발적 약속만으로도 변화가 있었을까? 국제과학자그룹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가 발표한 2022년 탄소 예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화석연료 사용에 의한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66억t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심지어 파리협정이 체결된 2015년보다 5% 이상 높다. 이대로 가면 지구온도 상승을 1.5℃ 이하로 억제할 수 있는 시간이 7년밖에 남지 않는다. 자발적 감축 체제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김 위원은 당시 파리협정이 지구온도 상승 제한 목표를 두 가지로 언급한 것 역시 파리협정의 ‘애매한’ 수준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파리협정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기본 목표)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하고, 온도상승을 1.5℃(최대 목표)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한다”라고 정했다. 김 위원은 2℃와 1.5℃ 사이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이 같은 목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상한 합의 사항’이라고 말했다.

반면 2050탄소중립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한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파리협정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온도 상승 제한 목표를 합의한 협정’으로 평가했다. “국제사회의 합의라는 건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모두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합의 자체가 가지는 상징적인 힘, 간접적인 강제력을 무시할 수 없다. 국제사회를 향한 선언은 공식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이 쌓여서 더 진전된 합의를 이끄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파리협정 이후 UNFCCC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로 제한했을 때와 1.5℃로 제한했을 때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 과학적 보고서를 IPCC에 요청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승인·채택된 ‘1.5℃ 특별보고서’다. 보고서는 지구온도 상승을 2℃가 아닌 1.5℃로 제한해야 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이를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해야 한다는 구체적 지침이 나오기도 했다. 윤순진 교수는 “강제력이 없어서 더 나은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평가”라고 본다. “RE100(기업의 재생에너지 전력 100% 사용), 유럽의 탄소국경세, ESG 경영을 감시하는 ‘지속가능성 실사법’ 등은 모두 파리협정 같은 토대가 있기에 가능했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조치 역시 이 같은 국제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1월9일 COP27 회의에서 나경원 기후환경대사가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3. ‘개도국 코스프레’를 멈춰라

올해 당사국총회에는 나경원 기후환경대사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이집트를 찾아 수석대표 특별연설을 했다. 지난 10월18일 임명된 이후 첫 활동이었다. 11월11일 나경원 대사가 귀국 소감과 현장 영상을 SNS에 올리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 등이 그가 영어로 연설한 점과 해당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나의 대통령’으로 호명한 점을 강조한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그의 연설 내용에 대한 보도는 찾기 어려웠다. 나 대사의 연설 내용과 의미를 짚은 보도는 〈한겨레〉가 유일했다.

국내 언론의 관심을 기준으로 본다면 당사국총회 앞에 붙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후회의’라는 수식은 민망하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조선·중앙·동아 세 곳은 COP27 개막식 날에도 조간신문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았고, 총회가 진행되는 동안 경제지와 보수지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전달하기보다 ‘피해보상’ ‘녹색 항로 경쟁’처럼 대부분 경제·외교적 관점의 보도에 힘을 주었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올해 이집트를 찾았다. 그는 “한국 정부와 기업은 감시와 비판으로부터 너무 자유롭다”라는 말로 총회에 참석하는 한국 측 분위기를 전했다.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역할을 하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글로벌 이슈인 기후위기 대응 회의에 직접 참석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 특사로 대신 연설한 나경원 기후환경대사 역시 특사란 말이 무색하게 한국의 특별한 노력이나 약속을 국제사회에 제시하지 않았다. 기후위기에 대한 한국의 책임과 역할에 관한 언론의 관심도 높지 않기 때문에 한국 정부와 기업이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기후위기 대응 ‘무임승차자’로서 무책임한 행동을 계속할 수 있는 거다.”

이번 COP27이 열리는 동안 기획재정부는 개도국이 변화된 기후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2023년부터 3년간 총 36억원, 즉 연간 12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녹색연합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14~2019년 공적 금융기관을 통해 해외 화석연료 사업에 연평균 17조원(약 127억 달러)을 지원한 바 있다. 1년에 서울시내 아파트 한 채 값을 개도국을 위해 쓰겠다는 발표는 지나치게 미흡한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은 UNFCCC가 채택될 때 개도국으로 분류됐지만 이 협약 채택 4년 뒤인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유엔의 개도국 협상그룹인 ‘G77’에서 탈퇴한 뒤 환경건전성그룹(EIG)에 들어갔다. EIG는 개도국과 선진국이 함께 들어가 있어 자칭 ‘중재자 역할’을 하는 그룹이지만, 실제 협상 과정에서는 선진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낸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 태도는 이번 COP27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개도국들은 COP27에서 ‘손실과 보상’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선진국들은 내년 COP28에서 논의하자는 의견을 냈다. EIG는 선진국과 같이 내년에 논의하자는 데 손을 들었다. 하지만 장다울 위원은 더 이상 한국이 뒷짐 지고 지켜볼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은 산업화 이후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200여 개국 중 17위다. 하위 129개국의 누적 배출량을 합친 양과 같다. 누적 1인당 배출량 역시 중국에 비해 두 배 많을 뿐 아니라 선진국으로 기후위기에 책임을 지고 있는 스위스·스페인·포르투갈보다 많아졌다. ‘개도국 코스프레’를 멈추고 한국 역시 보상책임국이 되어야 한다는 국제 여론이 더 거세질 것이다.”

유럽의 독립 평가기관인 저먼워치, 뉴클라이밋연구소 등 해외 연구단체가 발표한 올해의 기후변화대응지수(CCPI)에 따르면, 한국은 60개국(유럽연합 포함) 중 57위로 최하위권 성적이다. 한국보다 뒤처진 국가는 이란, 카자흐스탄, 사우디아라비아뿐이다(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90%를 차지하는 59개 국가와 유럽연합을 대상으로 조사함).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