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 ⓒ연합뉴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이런 산아제한 ‘표어’가 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요즘 아이들은 ‘이해 불가’ 표정을 짓는다. 한 반에 60명이 넘고 과밀학급 때문에 오전반·오후반으로 나누던 내 세대의 기억은 너무 먼 과거가 되어버렸다.

0.72명. 2월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합계출산율이다. 저출생 문제를 다룬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는 이 수치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숫자인지를 간단한 계산으로 보여준다. 인구가 총 100명이라고 가정해보자. 합계출산율이 0.72명이면, 자녀 세대는 총 36명으로 줄어든다. 이 합계출산율이 그대로 유지되면 손자 세대는 13명이 된다. 드라마틱하다 못해 공포스러운 감소다.

저출생 문제가 주택·교육·노동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그 안에서 비싼 집값과 과도한 경쟁으로 먹고살기에 너무 지쳐 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도, 저출생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는 정책을 동시에 내놓는다. 선거를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민생토론회’가 대표적이다. 신도시 재정비, 수도권 철도·도로 지하화, 수도권 남부지역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지원과 일자리 300만 개 창출 등. 현실화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대통령의 약속대로 된다고 치자. 이렇게 ‘수도권 시대’가 더 만개하면, 저출생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오늘만 생각하며 사는 대통령인 걸까.

말의 앞뒤가 다르면 불편함을 느낀다. 지난 2월3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편입을 추진하는 경기 김포를 찾아 “목련이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을 때도 위화감이 들었다. 수도권 부동산값 상승 기대심리를 자극하는 ‘김포 서울 편입론’과 ‘목련 피는 봄’이라니. 2월27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기후위기 관련 총선 정책을 발표하면서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알면 어떻고, 또 모르면 어떤가”라고 반문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세계 1위 반도체 장비기업인 네덜란드 ASML이 “2040년까지 고객 업체들을 포함한 모든 생산·유통과정에서 ‘넷제로(탄소배출량 0)’를 달성하겠다”라며 고객사도 이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하는 판인데, 여당의 최고 책임자가 시조 읽듯이 ‘알면 어떻고, 또 모르면 어떤가’라니? 답하자면 ‘알아야 한다, 적어도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기자명 차형석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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