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왼쪽)은 6월22일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했다. ⓒ연합뉴스

최근 한국의 재생에너지 정책을 두고 두 가지 중요하면서도 상반된 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삼성전자의 RE100(Renewable Energy 100%) 선언, 또 하나는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태양광 사업 비리를 대대적으로 적발했다는 소식이었다.

기업에서 쓰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삼성의 선언은, 실은 한발 늦은 것이었다. 이미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은 물론 국내 20여 개 기업이 RE100을 선언했다. 전 세계 IT 제조기업 중에서 가장 많은 전기를 쓰는 삼성전자가 언제쯤 RE100을 선언할지 몇 해 전부터 큰 관심사였다.

삼성전자가 RE100 선언을 주저한 이유는 한국의 현실 때문이다. 지난 4월 영국의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가 국내 11개 기업의 전력 사용량(2020년 기준)을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의 전력 소비량이 26.95TWh(테라와트시)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2020년 한국의 풍력·태양광 발전량은 21.5TWh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전력 사용량의 80% 수준이다. 삼성전자 하나도 감당 못하는 여건에서 RE100 선언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가 RE100 달성 시점을 28년 뒤인 2050년으로 잡은 이유다. 삼성전자는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여건도 불리한 상황이지만 환경위기 해결에 기여하기 위해 ‘도전’에 나선다”라고 밝혔다. 

현 정부는 삼성과 정반대 방향을 걷고 있다. 원전 확대와 재생에너지 축소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두고 “5년간 바보 같은 짓을 했다”라고 표현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8월30일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윤석열 정부의 방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번 계획에서는 2030년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을 32.8%로 끌어올리고 재생에너지는 21.5%로 낮췄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비교해 원전은 8.9%포인트 높아졌고, 재생에너지는 8.7%포인트 줄어들었다. 원전이 국내 최대 전력원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다시 RE100이다. RE100은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산업계를 중심으로 RE100이 아닌 CF100을 선언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CF(Carbon Free)는 원자력까지 포함하는 무탄소 전원을 사용하자는 뜻이다.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주차타워에 설치된 총 3600장, 1500㎾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 ⓒ삼성전자 제공

“독일 정부, 국토의 2%를 풍력발전에 할당”

그러나 CF100은 한국 측의 희망사항에 가깝다. 재생에너지에서 훨씬 앞서 있는 북미와 유럽이 이미 RE100을 ‘글로벌 표준’으로 삼고 ‘압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14.7%가 글로벌 협력기업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았다.

이 추세는 더욱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국제 신용평가·투자기관들이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을 주요 평가 잣대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RE100은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권필석 소장은 “독일 정부는 국토의 2%를 풍력발전 시설에 할당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향해 나아가는데 윤석열 정부는 마치 떼를 쓰듯 원전 확대에 몰두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한 재생에너지 사업도 파헤치고 있다. 9월13일 국무조정실(국조실)은 전국 기초단체 중 12곳을 표본조사한 결과, 태양광 사업 불법·부당 집행 사례가 총 2267건, 액수는 2616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에 따르면 이 발표는 전국 12곳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전국 226개 기초단체를 따로 전수조사한 결과도 포함된 것이었다. 전체 2616억원 가운데 70%에 달하는 1847억원이 전국 전수조사 결과 적발된 금액이었다. 발표는 12곳 표본조사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전국 전수조사 결과를 합쳐 내놓았다. 국조실은 보도자료에서 “12곳 실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써서 의심을 더욱 키웠다. 태양광 비리를 엄벌하는 것과 별개로, 문재인 정부 시절 태양광 비리 규모를 부풀리기 위해 발표 내용을 왜곡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해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RE100은 서막에 불과하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2023년부터 시행되는 유럽의 탄소국경세는 아주 실체적인 위협이다. 기후위기 대응 NGO인 푸른아시아의 오기출 상임이사는 “해일이 밀려오고 있는데 현 정부는 ‘돈룩업(Don’t look up)’만 외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넷플릭스 상영작 〈돈룩업〉은 위기를 외면하는 정치적 현실을 풍자한 영화로, 섬뜩한 결말이 화제를 모았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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