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다. 전방위적이고 가속화하는 기후 재난으로 저널리즘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프랑스에서는 2015년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열린 이후 기후위기 관련 보도가 꾸준히 증가해왔다. 지난해 기후위기 보도의 위상이 달라지는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탄소 저감을 의무화한 ‘기후법’이 프랑스 의회를 통과한 것이다. 기후위기 보도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눈에 띄게 높아졌고, 주류 언론들은 뉴스룸을 재편하며 관련 보도를 강화했다. 솔루션 저널리즘·참여 저널리즘이 화두로 떠올랐다. 올해 9월에는 프랑스 최초로 ‘환경 및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저널리즘 헌장’이 언론인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시사IN〉은 프랑스의 비영리 환경 전문 매체 〈르포르테르(Reporterre)〉, 브르타뉴 환경 탐사언론 〈스플란!(Splann!)〉, 청소년을 위한 생태기후 잡지 〈위 드맹 100% 아도(We demain 100% ado)〉를 현지 취재했다. 12월6일에는 ‘기후위기 시대,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제6회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sjc.sisain.co.kr)가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위 드맹 100% 아도〉의 편집장 다비드 그루아종이 사무실 벽에 붙은 10대 독자들의 편지 앞에 섰다.ⓒ시사IN 김다은

2019년 12월, 프랑스 최초로 ‘그레타 툰베리 세대’를 위한 생태기후 잡지 〈위 드맹 100% 아도(We demain 100% ado)〉가 출간됐다.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실험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작된 〈위 드맹 100% 아도〉 다섯 권은 모두 평균 5만 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창간호와 제2호는 시민들의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했는데 후속 잡지를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을 만큼 모금되었다.

10월5일, 프랑스 파리 14구 인근에 위치한 바야르 출판사(Bayard Presse) 본사를 찾았다. 건물 1층 로비에는 알록달록한 어린이책과 잡지들이 가득 꽂힌 책장, 크고 푹신한 소파가 방문객을 맞았다. 〈위 드맹 100% 아도〉 사무실에는 자연광이 조명을 대신했다. 실내등을 켜지 않은 이유를 묻자 바야르는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곳에서 출간되는 모든 잡지는 재활용이 가능한 한 종이봉투에 담겨 배송된다. 잡지를 인쇄할 때는 식물성 잉크를 사용하고 표지를 무광으로 만들어 재활용을 수월하게 한다. 구독자에게 제공하는 특별 사은품 역시 프랑스에서 만든 제품을 골라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있다.

바야르 출판사는 1870년에 설립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 중 하나다. 여기서 만든 청소년 브랜드가 ‘바야르 죄네스(Bayard Jeunesse)’다. 바야르 죄네스는 1세부터 18세 사이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잡지를 발행한다. 1966년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난청 어린이를 위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잡지를 만들자는 목표로 어린이 잡지 〈폼다피(Pomme d’Api)〉(3~7세용)를 출간하며 바야르 죄네스가 시작됐다. 이후 〈아스트라피(Astrapi)〉(7~11세용), 〈오카피(Okapi)〉(10~14세용), 〈포스포르(Phosphore)〉(14~18세용) 등을 출간했다. 종류만 30여 종. 독자 73만1000여 명을 확보하고 있다.

〈위 드맹 100% 아도〉의 공동편집자 다비드 그루아종은 바야르 죄네스의 10세 이상 청소년 잡지 〈오카피〉와 〈포스포르〉의 책임편집장이다. 그는 20년 이상 어린이·청소년 잡지를 제작해왔다. 또 다른 공동편집자는 환경 전문 계간지 〈위 드맹(We Demain)〉의 설립자 장도미니크 시겔과 프랑수아 시겔 형제다. 〈위 드맹 100% 아도〉는 두 매체를 대표하는 세 사람이 협력해 만든 ‘유례없는’ 잡지다.

‘위 드맹(We Demain)’은 ‘우리는 내일’라는 뜻이다. 2012년에 만들어진 언론사 〈위 드맹〉은 생태환경에 대한 이슈뿐만 아니라 산업 분야의 최신 테크기술을 함께 소개하는 계간지다. 매호 2만8000부 이상 판매되고 온라인 뉴스사이트 방문자 수는 매월 50만명 이상이다.

2019년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청소년 기후 파업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전 세계로 퍼지자 〈위 드맹〉의 공동설립자 시겔 형제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청소년 언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위 드맹 100% 아도〉 창간호가 발매된 2019년 12월18일, 언론사 〈유로1〉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수아 시겔은 이렇게 말했다. “청소년을 위한 〈위 드맹〉 잡지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청소년 언론 자체가 매우 특수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우리는 그들과의 소통방식에 무지하고 그들을 위한 매체를 만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작업을 해온 바야르 죄네스와 협업을 하는 게 당연했다.”

다비드 그루아종은 매체 간 협력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바야르 죄네스는 모든 잡지에서 생태·기후위기를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출판사의 편집 방침에도 이에 관한 명확한 방향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바야르 죄네스의 출판 부문 목표에는 ‘기업으로서 탄소발자국을 줄일 것’ ‘아동의 연령대에 맞게 기후위기에 대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고, 불안을 조성하지 않도록 개인의 실천 방안을 함께 제안할 것’ 등의 내용이 명시돼 있다.

다비드 그루아종은 주류 언론이 기후위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청소년들의 생각을 이렇게 전했다. “그들은 세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기후위기 이야기를 할 때 마치 ‘경적을 울리면서 벽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주로 불안을 유발하며 두려움을 확대시키는 이야기만을 나열한 뒤 어떠한 대책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성인들과 달리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습득되지 않은 입장에서 어떤 정보는 지나치게 불친절하다는 것. 셋째, ‘이 정보는 정말 믿을 수 있을까?’ 계속 되묻는다는 것. 그들은 정보의 출처나 정확성에 대해 거듭 궁금해하며 언론의 오류나 거짓말을 경계한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청소년들은 사회 뉴스에 관심이 많고 자신만의 의견을 형성할 수 있길 바란다. 2019년 실시한 프랑스 전국학교제도평가협의회(CNESCO) 조사 결과를 보면 만 18세 중 68%는 정치·경제·사회 등 시사문제에 대한 정보를 적극 찾아본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도 답했다. 다비드 그루아종은 “청소년 독자에게 ‘이 매체는 믿을 수 있어, 이곳에서 정보를 찾으면 돼’라는 신뢰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뉴스를 외면한다고 답한 32% 청소년 역시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책을 펼치고, 우리 잡지를 볼 수 있게끔 만드는 방법은 뭘까? 청소년 잡지는 도구가 많다. 청소년이 좋아하는 만화·일러스트·그래픽 등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레타 툰베리 세대를 위한 생태기후 잡지 〈위 드맹 100% 아도〉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청소년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낸다.

지금까지 나온 〈위 드맹 100% 아도〉 다섯 권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18세가 되기 전에 지구를 구하는 방법(1호)’ ‘지구를 위해 행동하는 50명의 인물들(2호)’ ‘여름, 제로 플라스틱 실천을 위한 50가지 아이디어(3호)’ ‘50년 후면 사라질 멸종위기 동물들(4호)’ ‘투표하지 않지만 힘이 있잖아, 세상을 바꾸는 10대 영웅(5호)’ 등. 이 중 가장 호응이 좋았던 잡지는 창간호다. 프랑스인들에게 친숙한 만화 캐릭터인 열네 살 소녀 ‘에스더’가 잡지에 등장했다. 환경문제에 큰 관심이 없는 평범한 에스더의 등장은 오히려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에스더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욕실에서, 식탁에서, 방에서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자원을 아낄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배우고, 실험하고, 소개한다. 예를 들어 운동장에 텃밭을 꾸미기 위해 토론회를 열고, 남은 음식물을 퇴비로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다. 자전거를 타고 파리를 누비고 부모에게 카풀을 하도록 제안하기도 한다. 에스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다비드 그루아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잡지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하는 잡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장을 볼 때도, 휴가 장소를 정할 때도 선택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실제로 행동하는 또래를 보여주면 이들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사무실 한편에서는 오는 12월에 나올 여섯 번째 잡지를 만드는 중이었다. 목수·판사·패션디자이너·항공우주 과학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인물이 눈길을 사로잡는 일러스트와 다채로운 글씨체로 소개돼 있었다. 다음 호의 주제는 ‘어른이 되어서도 생태적 삶을 살 수 있을까?’이다. “청소년들은 앞으로 직장을 다니고, 일을 하면서도 생태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한다.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 중인 직업인들의 이야기로 지면을 채워나가고 있다. 우리가 다 같이 숲에 들어가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구체적 사례로 전달하는 거다.” 다비드 그루아종이 말했다.

벽면에 붙은 지면 샘플 중에 커다란 사과 인형 탈을 쓴 청소년들의 사진도 보였다. 올해 ‘에코델레게 활동상’을 수상한 청소년들이었다. 에코델레게(éco-déléguée)는 ‘환경 대표’라는 뜻이다. 프랑스에는 ‘환경 대표’로 활동하는 청소년이 25만명이나 된다.

2020년부터 시행된 ‘환경 대표’는 프랑스 교육부가 주관하는 제도다. 중·고등학교의 한 학급마다 한 명씩 환경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환경 지식과 실천 방법을 친구들과 공유한다. 교직원들과 함께하는 토론 자리에서 학교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방법을 제안하고 관철하는 권한도 가진다. 실제로 건물에 단열이 잘 되는 바닥재를 쓰도록 건의해 바꾸거나, 놀이터에 태양광을 이용한 무선 충전기를 설치하도록 한 사례가 있다.

〈위 드맹 100% 아도〉 편집팀은 환경 대표의 활동을 장려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위해 교육부와 함께 ‘에코델레게 활동상’을 만들었다. 지난 6월 두 번째 시상식이 열렸고 총 네 팀이 수상했다. 다비드 그루아종은 벽에 붙은 지면 샘플에 실린 사과 탈 인형 사진을 보며 덧붙였다. “과수원을 지나가다 못생긴 과일이 그냥 버려진다는 것을 알게 된 안 보트(Anne Veaute) 직업고등학교의 환경 대표들이다. 음식물쓰레기의 탄소배출량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고민 끝에 누군가 버려지는 사과를 주스로 만들어 팔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교내 환경 대표들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시장과 박람회에서 3주간 사과주스 1200병을 팔았다. 그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했다.”

벽을 채운 지면마다 이야기가 가득했다. 다비드 그루아종은 영상이나 모바일 콘텐츠가 아니라 종이 잡지로 청소년을 만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바야르 죄네스는 50년이 넘도록 청소년 잡지를 만든 곳이다. 〈위 드맹 100% 아도〉는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새 매체다. 청소년들은 스마트폰과 TV에 익숙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전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종이 잡지를 선택했다. 거실에 아무렇게나 잡지가 놓여 있으면 누군가는 그걸 집어 들고 들춰본다. 그리고 그 안에 나오는 내용에 대해 가족이나 친구들과 이야기하게 된다.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곳에 읽을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가정은 변화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 SJC 2022 : 기후위기 시대, 언론의 역할을 묻다 https://sjc.sisain.co.kr

기자명 파리·갱강/김다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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