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호 박사는 사람들의 선함에 기댈 게 아니라 시스템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대기과학자 조천호 박사(전 국립기상과학원 원장)는 무서운 이야기를 무심하게 했다. 1초에 원자폭탄 다섯 개가 터지는 수준의 에너지가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거나, 내일 당장 지구가 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들이었다. 절망의 증거를 오래, 많이 봐온 사람의 달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말은 비관적 지표를 나열하는 와중에도 희망적인 상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달관하는 태도가 아니라 선명한 의지가 읽혔다. 조천호 박사는 “자연은 타협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두려운 문장일 테지만, 그는 오히려 지구의 유한함이 기후위기라는 난제를 풀 수 있는 열쇠임을 믿었다. 결국 살려면 인간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열리고 있던 11월10일, 서울역에 있는 제로웨이스트 숍 ‘알맹상점’에서 조천호 박사를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기후회의인 COP27을 두고 ‘그린워싱’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던 때였다. “요란스럽게 행사를 해도 결국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시민들이 알게 된 거다. 주최국인 이집트는 정치범 인권 문제에 침묵하고, 기후활동가들을 배척하고 있다. ‘친환경’을 내건다고 무조건 환영하지 않는다는 건 시민들의 달라진 기후 감수성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천호 박사는 민주주의의 수준이 기후위기 대응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또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물었다.

윤석열 정부의 기후위기 대책은 어떻게 보나?

대표적인 게 원자력발전소를 늘리겠다는 거다. 핵발전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정말 독특할 만큼 시대착오적인 접근이다. 특이한 건 국내에서 하는 말과 해외에서 하는 말이 다르다는 점이다. 지난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원자력 (늘리는) 이야길 하려나 했는데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언급하더라. 10월26일에는 윤 대통령이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해 문재인 정부에서 정했던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치인 40%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감축 폭이 너무 크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COP27에 참석한 나경원 기후환경 대사는 40% 감축 목표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왜 말이 다를까?

국내에서 하는 말을 해외에 나가서 똑같이 하면 창피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후위기 대응은 공공복지의 일인데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 정파적으로 다루면 자기모순이 생긴다. 그나마 정치 지도자들이 국외에서라도 저렇게 말을 하니 ‘그때 했던 말을 지키라’고 요구할 근거는 갖게 됐다. 앞으로 시민들은 지켜야 할 걸 스스로 지켜내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11월19일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한 기후 활동가가 시위를 하고 있다. ⓒEPA

신재생에너지 육성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2021년에 발표된 제6차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태양광발전 단가는 85%, 풍력발전 단가는 55% 하락했다. 미래 선진기술이 이 분야에 몰리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가격은 급속도로 낮아지는 중이다. 한국 역시 발 빠르게 주류 흐름에 맞춰가야 한다. 그런데 지난 8월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을 보면 에너지믹스 비율이 세계적 추세와는 반대로 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2030년까지 목표했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30.2%에서 21.5%로 줄어들고, 원전은 23.9%에서 32.8%로 늘어났다. 아직도 지리적 조건이 좋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주저한다. 전력 생산 에너지원의 40%가 재생에너지인 독일과 비교해보자. 독일에 비하면 한국은 태양광발전을 하기에 천국이나 다름없다. 독일이 우리보다 위도가 15° 높은데, 태양광은 저위도일수록 효율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풍력은 독일보다 낮지만 한반도에는 제트기류가 흐르기 때문에 입지 조건이 결코 나쁘지 않다.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RE100 협약에 가입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시장을 키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같은 국내 글로벌 대기업들이 RE100 가입을 선언했다. ‘재생에너지로 만든 물건 아니면 수입하지 않겠다’는 유럽이나 북미 등의 시장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결정이다. RE100에 가입하는 기업이 많아진다는 것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 수요량이 늘어난다는 걸 뜻한다. 지금 한국 정부는 정신없이 이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오히려 기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마저 줄이겠다고 한다. RE100 가입을 선언한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서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구하지 못해 철수하면 그제야 준비할 건가? 2023년부터는 유럽연합(EU)에서 철강, 시멘트 등 탄소 집약 제품에 관세를 물리는 탄소국경세를 시범 도입할 예정이다. RE100, 탄소국경세 모두 변화하지 않으면 세계 주류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신호다.

기후위기 대응이 정책 우선순위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환경오염과 기후위기에는 차이가 있다. 환경오염은 사건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피해를 경험한 다음, 조사를 거쳐 사건의 원인을 밝힌다. 반면 기후위기는 숱한 예고가 나온 다음, 뒤늦게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사건이 발생한다. 즉 과학자들의 예고와 언론의 보도를 통해 시민들이 노력해서 깨닫고, 지성으로 인식해야 하는 독특한 성격의 위험인 거다.

지금 기후위기 심각성은 어느 정도일까?

기후위기와 관련해 가장 신빙성 있는 과학적 결과물은 IPCC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모든 기후과학자들이 합의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보수적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자연의 특성 중 하나인 ‘급변성’을 제외하고 계산했다. 예를 들어 빙하가 겉면부터 천천히 녹는 건 과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빙하가 언제나 그렇게 녹는 건 아니다. 위성으로 빙하지대를 관찰하면 이미 여기저기 금이 가 있다. 사탕을 입 안에 넣고 굴리면서 녹이면 오래가지만 깨트려 먹으면 표면적이 늘어나 금방 녹아버리듯이, 빙하도 깨지기 시작하면 더 빠르게 녹는다. 빙하가 깨지는 건 비선형적 사건이라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깨질지 예측할 수 없다. 이런 급변 가능성을 고려하면 내일 당장 기후위기로 지구가 망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26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 온도가 1.5℃ 상승하는 걸 막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인가?

1.5℃, 2℃ 상승은 지구가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는 마지막 범위다. 그 범위 안에서는 사람이 약을 먹으면서 혈압을 관리하듯 어떻게든 문명을 지켜나갈 수 있다. 그 범위 밖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작은 충격에도 전체 균형이 무너져 복원력이 작동하지 않는 ‘고위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주목할 현상 중 하나는 바다의 변화다. 지구는 폐쇄계다.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에너지는 햇빛 하나뿐인데, 그 빛에너지로 지구에 사는 생명들이 생존해나간다. 그런데 온실가스가 햇빛이 지구에서 방출되지 않게 잡고 있으니 지구가 지글지글 끓는다. 그게 1초에 원자폭탄 5개가 터지는 수준의 에너지다. 온실가스는 한번 배출되고 나면 수만 년간 없어지지 않고 계속 누적된다.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약 31억 개의 원폭 에너지가 지구에 갇혀 기후위기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원폭 31억 개가 터진 것치고는 지구가 잠잠해 보일 거다. 왜냐하면 공기보다 열용량이 1000배 높은 바다가 90%의 열을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바다에 명백한 변화가 보인다? 그럼 정말 끝난 거다.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시민들에게 뭔가를 요구하기보다는 시민들이 움직이도록 정치가 해야 할 게 많다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면 프랑스 파리는 상점, 학교, 의료시설을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내에 갈 수 있도록 도시를 재구성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다고 느끼는 ‘15분의 감각’을 기후위기 대책에 적용한 거다. 자전거의 교통 분담률이 50%가 넘는 코펜하겐에서 시민들에게 ‘왜 자전거를 타느냐’는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많이 나온 답은 환경이나 기후위기 때문이 아니고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사람들의 선함에 기댈 게 아니라 시스템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런 시스템을 약속하는 정치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지금처럼 욕망을 극단으로 부추기는 정치는 공동체를 더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우리가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

우리가 10m 높이에서 낙하한다고 가정해보자. 너무 위험하다고 중력가속도를 절반으로 줄일 순 없다. 자연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이 명확한 전제 앞에서 우리가 바뀌어야 다 같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배우고 알게 되리라고 믿는다. 경제성장이란 건 지구로부터 에너지와 자원을 빼서 쓰고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을 내뿜어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 무한 욕망이 지구라는 유한함을 넘어서면 결국 이 비극은 파국이 될 거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해방적 파국’을 말했다. 우리 앞의 파국은 지금 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선명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기후위기라는 계기가 지구적 공론과 연대의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를 내 손으로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달라지기 위해 다 같이 되돌아보고,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게 중요하다. 성공을 확신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에 하자는 거다.

※대기과학자 조천호 박사의 강연은 12월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제6회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sjc.sisain.co.kr)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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