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루트 프로젝트’의 루시아 프리슬락 디렉터가 단체에서 제작한 검은색 텀블러를 들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주 론데스카운티. 버크 할머니는 뒷마당 물웅덩이의 거북이에 관심을 두는 네 살배기 손자에게 웅덩이에서 떨어져 있으라고 경고했다. 망가진 정화조에서 새어 나온 빗물과 하수가 섞여 있는 웅덩이였다.

2022년 여름, 미국 주간지 〈타임〉의 저스틴 월랜드 기자는 위생 문제가 수십 년 동안 앨라배마의 흑인 주민들을 괴롭혔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흑인 다수가 사는 론데스카운티 주민 40% 이상은 깨끗한 위생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3년 전인 2019년 여름, 〈그리스트〉는 기후위기를 취재하는 미국 언론인들을 시애틀로 초대했다. 그 자리에 월랜드 기자도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각자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겹쳤다. 특히 백인이 아닌 인종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뉴스룸에서 부차적인 일로 취급됐다. 기후위기가 흑인 커뮤니티에 끼치는 영향을 말할 때면 ‘정말 그래?’ 하는 반응만 돌아왔다.

뉴스룸에서 고민을 나눌 ‘백인이 아닌’ 동료는 적었다. 규모가 큰 언론사부터, 작은 언론사, 지역 언론사까지 뉴스룸의 책임자들은 오히려 ‘우리는 기후위기를 보도할 비백인 기자를 찾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날 모인 기자들은 되물었다. “언론이 정말 다양한 목소리를 대표할 기자들을 찾으려고 노력했을까?”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해 비백인 기자들을 지원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단체 창립 운영위원인 월랜드 기자는 당시 〈그리스트〉에서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루시아 프리슬락을 포함한 동료들과 함께 ‘업루트 프로젝트(Uproot project)’를 출범시켰다. 이 프로젝트는 기후위기를 보도하는 유색인 언론인 네트워크다.

프리슬락 ‘업루트 프로젝트’ 디렉터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유색인들이 뉴스룸에서 과소 대표됐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모두의 삶을 위협하지만 주로 취약한 지역에 거주하는 유색인 지역사회에 더 큰 피해를 끼친다. 언론이 유색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기후위기로 유색인 지역사회가 겪는 어려움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

업루트 프로젝트의 목표는 “다양한 목소리를 기후위기 보도 최전선에 두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세미나, 교육, 자료 제공 등을 통해 멤버들의 경력 개발을 돕는다. 프리슬락 디렉터는 단순히 멤버들을 지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비백인 기자들의 네트워크를 단단히 구축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현재 CNN, 〈로스앤젤레스타임스〉 〈타임〉 〈프로퍼블리카〉 〈복스〉 소속 언론인 등 300명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언론사에서 일하지만 모두 기후위기를 취재하는 유색인 언론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업루트 프로젝트에 합류한 기자들은 프리슬락 디렉터에게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동료가 너무 적어서 외로웠다. 경험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다른 저널리스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안전한 공간이 간절하게 필요했다”라며 기뻐했다.

10월26일 미국 뉴욕에서 ‘업루트 프로젝트’ 설립 이후 첫 번째 오프라인 모임이 열렸다. 맨 왼쪽이 루시아 프리슬락 디렉터. ⓒuproot project

32개국만 기후대책에서 장애인 언급

업루트 프로젝트엔 미국에서 출발해 멕시코, 캐나다, 레바논, 짐바브웨 등지에서 활동하는 언론인들이 추가로 합류했다. 처음부터 단체를 국제적으로 운영할 계획은 아니었다. 프리슬락 디렉터는 다른 국가의 멤버들이 단체에 가입하는 걸 보면서 유색인 언론인 네트워크가 미국 언론인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뉴스룸에 다양성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국제적으로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 프로젝트의 멤버인 ‘업루터(Uprooter)’들은 기후위기가 소수자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보도하고 있다. 2022년 10월, 새뮤얼 아잘라 업루터는 미국의 온라인 매체 〈자일롬(The Xylom)〉에 나이지리아의 홍수 피해를 보도했다. 지역별로 구분해 홍수에 노출된 거주자 규모와 연간 피해 액수 데이터를 정리해 그래픽으로 보여줬다.

같은 달 또 다른 업루터 드루 코스틀리는 AP뉴스에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 서명한 195개국 중 32개국만이 공식 기후대책에서 장애인을 언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예컨대 허리케인이 발생했을 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어떤 동선으로 피난하며, 어떻게 피난처를 확보할 거냐는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프리슬락 디렉터는 이전보다 기후위기가 소수자 커뮤니티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더 적극 보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에 대해 말하는 유색인 기자들이 많아졌고, 이전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보도하는 유색인 기자들이 아예 없다가, 극소수로 바뀐 정도다. 여전히 성장할 여지가 있다.”

업루트 프로젝트는 새로운 유색인 기자들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프로젝트의 멤버 중에는 현직 언론인뿐만 아니라 언론인을 꿈꾸는 유색인 학생들도 있다. 저스틴 월랜드 기자는 “우리는 유색인 기자 지망생들이 직업의 기회를 찾고 그들의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라고 말했다. 업루트 프로젝트는 기자가 되고 싶은 지원자들에게 구직 정보를 전달한다. 현직 언론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멘토나 전문가를 찾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언론인을 소개하기도 한다.

월랜드 기자는 기후위기 보도에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면, 언론인들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며 전체 보도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석탄재로 지역사회가 오염된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광부, 외부에 홍수가 날 때마다 (정화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집으로 하수도를 밀어 넣어야 하는 앨라배마주의 할머니, (기후위기로) 마을을 떠난 피지의 지역공동체 지도자 등 이들과 나눴던 대화가 마음에 남는다. 나에겐 기후위기를 다룰 때 이러한 마주침과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 SJC 2022 : 기후위기 시대, 언론의 역할을 묻다 https://sjc.sisain.co.kr/

기자명 시애틀·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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