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30일 ‘CCNow’ 파트너사인 CBS, 〈타임스 오브 인디아〉 〈엘파이스〉가 함께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을 인터뷰했다. ⓒCCNow

2018년 10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에서 195개 회원국은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시기 이전보다 1.5℃ 이상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겠다는 합의다.

〈더 네이션〉의 마크 허츠가드 환경 전문기자도 그해 ‘1.5℃ 보고서’를 취재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재정·건설·운송·농업 영역 등 각 분야에서 전례 없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시 ‘언론’을 언급하는 과학자는 없었다.

그때 허츠가드 기자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언론이 변하지 않으면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기 어렵다.” 시민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다른 영역에서 변화를 이끌 정부나 기업을 압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을 언론이 할 수 있다. 전 세계 언론사 500여 개가 참여하는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Covering Climate Now, CCNow)’ 구상은 그렇게 시작됐다.

10월14일 CCNow 공동 설립자인 마크 허츠가드 기자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초인종을 누르자 계단을 내려와 취재진을 맞이한 그는 ‘팔꿈치 인사’를 건넸다. 허츠가드 기자가 입은 니트의 팔꿈치가 해져 안에 입은 셔츠가 다 드러나 보였다. 그는 낡은 옷을 버리지 않고 입는다며 웃었다.

“‘기후 침묵(climate silence)’을 깨기 위해 CCNow를 설립했다.” 기후 침묵은 세계적으로 많은 언론사가 기후위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미온적으로 반응했던 걸 가리킨다. “특히 유럽에 비해 미국의 기후위기 보도는 10년 정도 뒤져 있었다. 미국의 주요 매체는 기후위기 보도를 잘 다루지 않았다.”

2019년 4월 설립된 CCNow는 파트너사들과 기후위기 보도를 위한 자료, 가이드, 아이디어 등을 나눈다. 주기적으로 기후 전문가, 동료 언론인 등과 함께 기후위기 보도의 어려움을 공유하며, 좋은 보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는다. 파트너사끼리 협업해 보도하기도 한다. 허츠가드 기자는 “동료 언론인들은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지 잘 안다. 그들이 모르는 건 어떻게 기후위기를 보도해야 하는지다. CCNow는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돕는다”라고 말했다.

현재 CCNow와 함께하는 언론은 전 세계 500개 정도다. 기후위기가 없다고 주장하는 ‘기후위기 부정론자’가 아니라면 CCNow의 파트너가 되기 위한 문턱은 높지 않다. 별다른 가입비도 없고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기사도 없다. 한국에선 ‘뉴스트리’ ‘동아사이언스’ ‘조선비즈’와 TBS가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2022년 10월 기준). CCNow는 각 파트너사의 보도가 도달하는 구독자 수를 합계 20억명으로 추산한다.

‘단독 경쟁’에 익숙한 한국 언론인들에게 언론사 간 협업은 낯선 얘기다. 2020년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한국 언론인 31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88.4%가 타사와 협업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고 답했다. 언론사 간 경쟁의식(40.6%), 언론사 간 이해관계 충돌(31.3%) 등이 협업을 막는다는 의견이 나왔다.

허츠가드 기자는 “현실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우리는 경쟁을 멈추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을 이용해 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CCNow 파트너사들은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알로크 샤르마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의장, 제이미 래스킨 미국 하원의원 등을 함께 인터뷰했다.

툰베리 인터뷰 때 세 언론사가 협업

그레타 툰베리 인터뷰는 2021년 10월 〈NBC 뉴스〉 〈더 네이션〉, 로이터가 협업했다. 세 언론사가 20분씩 나눠 질문하는 방식으로 1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후 각자 기사를 쓰고, 보도 시간을 정해 동시에 공개했다. 허츠가드 기자는 “우리는 최고의 기후위기 보도를 하기 위해 경쟁한다”라며 기후위기 보도를 잘하면 각 뉴스룸에서 경쟁 우위에 설 수 있다고 말했다.

CCNow 설립 2개월이 뒤인 2019년 6월, 허츠가드 기자는 미국 뉴욕에서 〈CBS 뉴스〉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우리는 기후위기 보도가 유망하고 이걸 다뤄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10년 전과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데스크들은 기후위기 보도가 중요한 걸 알면서도 독자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젠 낡은 이야기다.”

2021년 ‘예일 기후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Yale program on climate communication)’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는 지구온난화를 우려한다. 특히 35세 미만 응답자 중에선 72%가 지구온난화를 걱정한다고 답했다. 허츠가드 기자는 35세 미만의 응답에 주목한다. “젊은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더 많이 걱정한다. 기후위기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그 해결책을 원한다. 기후위기 보도는 상업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다.”

지난해부터 CCNow는 ‘저널리즘 어워즈’를 시작했다. 2회째인 올해 65개국에서 900여 개 보도가 출품됐고 그중 23팀이 상을 받았다. 왜 좋은 보도와 언론인을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할까. 허츠가드 기자는 “중요한 건 더 좋은 기후위기 보도를 더 많이 하는 것이다”라며 저널리즘 어워즈가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좋은 보도를 하고 싶다면, 〈가디언〉(라디오 팟캐스트 부문), AFP(단편영상 부문), 〈타임〉의 저스틴 월랜드의 보도를 봐라. 그리고 좋든 나쁘든 그런 종류의 저널리즘을 시도해라.” 10월25일(현지 시각) CCNow는 세네갈, 사모아, 그린란드, 영국 글래스고 등을 다니며 2022년 CCNow 저널리즘 어워즈 수상작들의 이야기를 모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당면한 문제(Burning questions)’를 방영했다.

마크 기자는 어두운 면을 다뤄야 하는 기후위기 보도가 힘들고 외로운 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함께하자. CCNow에 합류하면 기후위기 보도에 헌신하면서도 도울 준비가 돼 있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와 함께 당신은 더 좋은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좋은 기후위기 보도를 하는 건 지금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2022 저널리즘 콘퍼런스 - 기후위기 시대, 언론의 대안을 묻다’ 참가 신청: https://sjc.sisain.co.kr

기자명 샌프란시스코·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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