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2일 탄소중립기본계획 공청회에서 활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단상에 있는 이가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김흥구
3월22일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공청회에서 활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단상에 있는 이가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김흥구

순간 귀를 의심했다. 환경부 주요 관계자가 기자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처가 최전선에 있지 않습니다.” 3월21일 공개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안)’(이하 탄소중립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기자가 “환경부가 최전선에 있지 않다고요?”라고 되묻자, 그는 “각 부처의 입장이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조율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는 이슈가 어떻게 조율됐는지 그 경위와 함의를 모른다고도 했다.

뜻밖의 반응이었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래 환경부는 탄소중립 실천의 핵심 부처다. 정부의 각종 공식 문서에도 여러 차례 적시된다. 그런데 환경부가 최전선에 있지 않다고?

어쩌면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국가계획을 수립하는 데 환경부가 그저 ‘one of them(여럿 중 하나)’일 뿐이라는 관계자의 ‘고백’은 지난 몇 주간 시민사회, 경제계 그리고 정치권을 달군 논란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쇳말 같은 것이었다.

3월21일 마침내 제1차 탄소중립계획(안)이 공개됐다. ‘마침내’라는 부사를 쓴 이유가 있다. 지난해 3월25일 시행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은 1년 안에 그 실행 계획을 마련하도록 명시했다. 올해 3월25일이 기한이다. 공개 시점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무성한 뒷말을 낳더니 법정 시한을 겨우 나흘 남겨놓고서야 ‘초안’이 발표된 것이다. 기한 내 계획 수립은 이미 무산됐다. 그리고 이 초안을 발표하자마자 후폭풍이 일었다.

시작은 공청회였다. 3월22일 열린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공청회’는 시위로 얼룩졌다. 기후환경단체 활동가 10여 명이 “국가 계획이 애들 장난인가?” “탄녹위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항의하며 단상 앞을 점거했다. 한 활동가는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하는 대책을 국가위원회가 만든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소리쳤다.

■ 시점·절차·내용 모두 문제

이들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었다. 시점, 절차, 내용 모두 문제였다. 정부의 탄소중립계획(안)은 공청회 하루 전날인 3월21일 〈조선일보〉를 통해 먼저 알려졌다. 공청회 하루 전날 정부안을 덜컥 흘려놓고 부랴부랴 공청회를 진행하는 꼴이었다. 정부안 공개 전날엔 기후위기 대응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6차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인류가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파국적 결말을 돌이킬 수 없다는 국제 보고서가 발표된 때 하필이면 한국 정부의 탄소감축 계획이 공개된 것이다.

3월22일 탄소중립기본계획 공청회장 앞에서 활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흥구
3월22일 탄소중립기본계획 공청회장 앞에서 활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흥구

가장 큰 문제는 내용이었다. 쟁점이 많고도 많지만 핵심 논란은 한 가지로 모인다.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크게 줄여줬다는 점이다.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발표했을 때에는 2030년 산업부문 감축 목표가 2018년 대비 14.5%였다. 이번 계획에서는 11.4%로 3.1%포인트 줄었다.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산업부문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발전부문과 함께 국내 배출량의 절대량을 차지한다. 2018년 기준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6000만t으로 수송(9800만t), 농축수산(2400만t) 부문에 비해 압도적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가장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분야에 대해 오히려 편의를 봐준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산업부문 감축 목표가 크게 후퇴했음에도 전체 NDC는 문재인 정부 때와 같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연도별로 보면 매우 기형적인 모양이 된다(〈그림 1〉 참조). 현 정부 임기 안에선 매년 1000만t 안팎 완만하게 줄어나가던 배출량이 임기 이후부터 가팔라진다. 특히 2029년에서 2030년 사이에 1년 동안 1억t 가깝게 줄어든다. 마법 같은 추이다. “현 정부 임기 내에는 느슨하게 하다가, 그 뒤로는 나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목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나라의 탄소중립계획은 왜 중요한가. 2015년 파리협정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세계적인 약속, 즉 ‘신기후체제’가 본격 가동됐기 때문이다. 말로만 탄소감축을 선언했던 과거와 달리 일정한 ‘강제성’이 부과됐다. 내년인 2024년부터 파리협정 당사국들은 ‘격년투명성보고서’라는 것을 2년마다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한 나라가 탄소감축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다른 나라에 얼마나 돈을 투자하고 기술을 이전했는지 등을 유엔이 검증한다. 국가 탄소중립계획은 국제사회의 검증에 대비하는 ‘뼈대’나 마찬가지다. 뼈대가 어떻게 세워지느냐에 따라 신기후체제에서 한국의 위상이 달라진다.

국가 탄소중립계획을 최종적으로 수립하는 곳은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다. 문재인 정부 때는 ‘탄소중립위원회’라는 이름이었으나 윤석열 정부 때 ‘녹색성장’ 네 글자를 추가했다. 위원회에는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기획재정부, 기상청 등 20개 부처가 참여한다.

현재 위원장은 김상협 카이스트 부총장이다. 〈매일경제〉, SBS에서 일했던 언론인 출신으로 원희룡 제주도지사 시절 제주연구원장에 임명됐다. 탄소중립계획 공개 이후 기후환경단체 쪽에서 ‘공공의 적’이라며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그리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실 녹색성장환경 비서관을 맡아 녹색성장 계획을 지휘하는 등 기후·에너지 분야에서 꾸준히 중책을 맡아왔다.

다시 3월22일 공청회장으로 돌아가보자. 김상협 위원장은 기후환경단체 활동가들의 시위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렇게 입을 뗐다. “제가 딸 둘, 아들 한 명을 둔 부모입니다. 제가 위원장이 아니었다면 젊은 분들이 외치는 함성, 분노, 좌절에 공감을 표시했을 겁니다. 여러분의 함성은 정당하나 정부안이 밀실에서가 아닌 오랜 진통 끝에 도출된 것만은 알아주십시오.”

■ 3분의 1 수준으로 후퇴한 산업부

김상협 위원장이 말한 ‘오랜 진통’이란 무엇일까. 결국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두고 벌어진 진통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 부처로 따지면 환경부와 산업부 사이에서 불거진 진통이다. 탄소중립계획이 공개되기 겨우 8일 전인 3월13일 이런 소식이 알려졌다. 산업부가 2030년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기존 14.5%에서 5%로 대폭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탄녹위와 환경부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기존 목표치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철강, 석유화학 등 관련 업계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5%밖에 감축할 수 없다는 것이 산업부의 입장이었다. 감축 목표가 너무 낮아 탄녹위도 골머리를 앓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니까 탄녹위가 공개해 논란이 불거진 산업부문 감축 목표(11.4%)는 애초 산업부의 의견(5%)보다는 훨씬 나아간 셈이다. 물론 2021년 목표치보다 크게 후퇴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대응에서 낙제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환경부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산업부의 역주행을 막기보다는 결과적으로 수수방관한 꼴이 됐다. 앞서 “우리 부처가 최전선에 있지 않다”라는 환경부 주요 관계자의 말은 그런 점에서 자조에 가깝다. 환경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와서 보면 문재인 정부 때 제시한 14.5% 목표치가 너무 무리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은 산업계에서 줄기차게 주장해온 말이지만, 적어도 환경부가 할 말은 아니다. 이쯤 되면 현 정부 탄소중립계획에서 환경부가 정말로 핵심 부처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탄녹위와 환경부의 무기력함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메시지를 줬다. 지난해 10월 윤 대통령은 탄녹위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탄소중립이라는 것이 우리 산업의 부담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다음 달인 11월17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한국을 방문해 9조원이 넘는 투자를 결정한다. 이른바 ‘샤힌 프로젝트(Shaheen, 아랍어로 ‘매’를 의미)’다. S-OIL(에쓰오일)이 울산광역시 온산국가산업단지에 대규모 석유화학제품 공장을 짓는 사업이다. S-OIL은 국내 기업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에너지 회사인 아람코(Aramco)가 최대주주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9일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에 직접 참여했을 만큼 공을 들인 사업이다. 실제 울산 지역에서는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언론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문제는 샤힌 프로젝트가 어마어마한 탄소배출 사업이라는 점이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에 따르면, 샤힌 프로젝트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간 300만t으로 추산된다. 탄소중립계획에 따라 윤석열 정부가 2023~2024년에 감축해야 하는 전체 배출량이 800만t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결국 현 정부의 산업부문 감축 목표가 크게 줄어든 배경에 샤힌 프로젝트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해 9월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기업의 탄소중립을 위해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산업계가 이 계획을 마냥 반길까

정작 궁금한 것은 지금부터다. 산업계는 이번 탄소중립계획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탄소감축 목표를 줄여줬으니 마냥 좋아할까? 물론 철강, 석유화학 같은 탄소 다배출 업계는 당장 숨을 돌릴 수 있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하다.

사실 산업계는 어느 누구보다 더 탄소감축에 민감하다. 5년마다 바뀌는 정부보다 더 절박하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유럽과 미국이 각각 탄소국경세(CBAM),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무기로 ‘세계경제의 질서’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타국의 탄소배출 산업에 과거 존재하지 않았던 페널티를 주고 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곳은 철강업계다. 당장 올해 10월부터 시행되는 CBAM의 직격탄을 맞는다. 에너지 및 환경정책 싱크탱크인 사단법인 넥스트의 추산에 따르면, 2032년에 한국 철강업계는 유럽연합(EU)에 5억5000만 달러(약 7200억원)를 탄소국경세로 지불해야 한다. 이는 한국 철강산업의 탄소배출량과 EU 탄소배출권 가격을 바탕으로 계산한 수치다.

더욱 심각한 것은 CBAM이 수입품의 탄소배출량 계산에서 간접 배출도 포함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간접 배출’은 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 직접 배출 외에 그 과정에서 사용한 열과 전력으로 인한 배출량까지 계산에 넣겠다는 것이다. 포스코가 독일 폭스바겐에 자동차용 강판을 수출했다고 치자. 이 강판을 만들 때 쓴 전력이 탄소배출이 많은 화력발전인지,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인지 따지겠다는 것이다. 아직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한국으로서는 날벼락 같은 일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축으로 세계경제의 질서가 뒤바뀌면서 국내 산업계는 나름대로 발 빠르게 움직여왔다. 포스코의 경우 이미 2020년 12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바로 다음 날 같이 발을 맞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2030년 10%, 2040년 50% 감축을 목표로 ‘탄소중립 담당 상무’직을 신설하고 탄소를 덜 배출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해왔다.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다. SK케미칼의 경우 2030년까지 50%, 한화솔루션은 35%, 금호석유화학과 롯데케미칼도 20% 이상 탄소감축을 선언하며 관련 기술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해왔다. 결국 현 정부의 탄소중립계획이 기업에 헷갈리는 ‘신호’를 준 셈이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의 박지혜 변호사는 “기업의 탄소감축 행동에 찬물을 끼얹었다”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의 ‘신호’는 예기치 못한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국내 대기업 대다수는 그룹의 계열사로 속해 있다. 한 그룹 안에 탄소 다배출 기업이 있는가 하면 기후위기 대응 기업도 있다. 예컨대 SK그룹에는 정유회사인 SK에너지와 함께 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SK E&S가 있다. LG그룹에는 LG화학과 함께 친환경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LG에너지솔루션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현 정부가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탄소감축 목표치를 낮춰줬는지 모르겠지만, 그룹 차원에서는 솔직히 혼란스럽다. 목표치를 줄여주면 그룹의 어떤 계열사에게는 좋겠지만, 재생에너지 쪽을 개발하는 다른 계열사는 정부가 다른 비전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하게 된다. 결국 그룹 차원의 탄소감축 플랜을 짜는 것이 어려워진다.”

■ “저탄소로 가면 편익 2347조원”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4월5일 주목할 만한 자료가 발표됐다. 국내 대표적인 경제단체에서 발표한 자료다. 대한상공회의소 임진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은 시민단체인 에너지전환포럼 5주년 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놀라운 수치를 공개했다. 한국이 ‘저탄소 사회’로 전환할 경우 그에 따른 편익이 2100년까지 무려 2347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태양광·풍력 발전, 배터리 등 신기후체제 아래서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데 따른 편익이다.

천문학적 수치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굴지의 경제단체에서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수치를 통해 촉구하고 나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월2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4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8.8%가 탄소중립 추진이 기업 경쟁력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는 긍정적 평가가 34.8%에 불과했으나 1년 새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그림 2〉 참조).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1년 사이 탄소중립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인식하는 기업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탄소중립계획 공개 이후 각계 비판이 이어지자 탄녹위는 의견수렴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법정 시한을 한 달 넘겨 4월 하순께나 계획이 수립될 전망이다. 탄소중립과 녹색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던 탄녹위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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