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기후단체 ‘마지막 세대’가 11월15일 레오폴드 미술관에 걸린 클림트의 작품 ‘죽음과 삶’에 검은 기름을 들이부었다. ⓒ'마지막 세대' 트위터

2018년 11월22일, 스위스 서부 도시 로잔에서 있었던 일이다. 스위스 양대 은행 중 하나인 크레디스위스의 로잔 지점에 20대 초반의 청년 12명이 들어왔다. 테니스복을 입고 손에는 테니스공과 라켓을 든, 은행 고객으로는 보이지 않는 차림이었다. 이들은 간이 테니스 네트를 은행 로비에 설치하더니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 진지한 경기는 아니었다. 한동안 놀던 청년들은 로비에 앉아 준비해온 현수막을 펼쳤다. ‘크레디스위스는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로저, 당신은 그것을 아는가?’

로저는 얼마 전 은퇴한 스위스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를 의미한다. 스위스 은행과 테니스 선수, 그리고 환경이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이런 문구가 쓰였을까. 거대 은행 크레디스위스는 화석연료 채굴 기업에 꾸준히 투자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로저 페더러는 당시 크레디스위스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었다. 페더러 같은 스타가 반환경적 기업인 크레디스위스의 광고 모델을 맡고 있으니 페더러 역시 환경파괴에 대한 간접적 책임이 있다며, ‘환경을 생각한다면 스폰서 계약을 끊으라’는 것이 이들 ‘가짜 테니스 선수들’의 요구사항이었다. 청년 12명은 로잔기후행동(LAC) 소속 활동가들이었다. 기이한 방식의 시위 직후 이들은 무단 점거에 대해 총 2만1600스위스프랑(약 30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만약 LAC 액티비스트들이 순순히 벌금을 냈다면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벌금 납부를 거부하고 사건을 재판으로 끌고 간다. 이들을 위해 변호사 13명이 무료 변호를 자원했다. 가짜 테니스 경기는 은행의 환경파괴 행위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이므로 정당하다는 게 변호팀의 주장이었다. 1심 법원 선고를 얼마 앞둔 2020년 1월 초, 더 흥미로운 일이 일어난다. 한 기후운동 그룹(‘350유럽’)이 트윗을 올린다. “2016년 이후 크레디스위스는 화석연료 발굴 기업에 570억 달러를 지원했다. 로잔에서는 로저 페더러에게 크레디스위스의 기후 범죄를 알리려 한 젊은 시위자 12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로저 페더러, 당신은 이것을 지지하는가?”라는 내용이었다. 이 트윗은 800회 넘게 리트윗되었는데, 거기 참여한 사람 중 하나가 스웨덴의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였다.

로저 페더러는 평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레타 툰베리라는, 전 세계 기후운동의 상징적 인물의 트윗에 이름이 언급되고도 그냥 넘어가기는 민망했던 모양이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를 앞두고 멜버른에 가 있던 페더러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입장을 밝힌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기후변화의 위협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가족과 오스트레일리아 산불 파괴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더 그렇다. 네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보편 교육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저 청년들의 기후운동에 대단한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도록 압박하는 것에 감사한다. 개인으로서, 운동선수로서, 기업가로서 내 책임을 일깨워준 것이 고맙다. 이 특권적 지위를 이용해 나의 스폰서들과 중요한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하겠다.”

2심과 3심의 다른 판결

얼마의 벌금을 부과받았든, 툰베리와 페더러의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액티비스트 12명은 의도했던 목적을 초과 달성한 셈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스위스 언론이 ‘케이크 위의 아이싱(설탕 장식)’이라고 이름 붙인 일이 일어난다. 2020년 1월13일 이 사건에 대한 1심 판결 결과가 무죄로 나온 것이다. 로잔 지방법원의 단독 재판부에서 나온 무죄선고 취지를 보면 이렇다. “기후위기가 임박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동은 필수적이고 적절하다. (이런 방식의 시위는) 은행의 응답을 기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효과적 방식이며, 미디어와 대중의 주목을 끌 유일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의 관심을 끈다는 목적을 달성했는데(케이크), 심지어 변호사들도 기대하지 않았던 무죄판결까지 나오면서(아이싱), 이 테니스 시위는 ‘더블 빅토리(이중의 승리)’로 불렸다.

스위스 일간 〈NZZ〉는 테니스 경기를 중계하듯 “기후 청년과 크레디스위스 간의 첫 게임은 두말할 여지 없이 6대 0으로 청년들의 압승”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판결을 “스위스 법학 교과서에 기록될 역사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기후위기 관련 시민운동이 시작된 이래 스위스 법원이 시위자들의 손을 들어준 건 최초였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판결이 나온 당일 사설에서 “(이 판결은) 기후위기라는 상황의 긴급성을 고려할 때 시민불복종이 더 이상 부적절한 수단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판결은 앞으로 시민불복종이 다뤄지는 방식을 영원히 바꿔놓을 수 있다”라고 썼다. 놀란 건 스위스 언론만이 아니었다. 〈뉴욕타임스〉, BBC, 도이체벨레 등 관련 시위가 활발한 국가들의 주요 언론이 판결 직후 이 소식을 보도했다.

예상 밖의 1심 판결은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지만 2심과 3심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로잔시가 속한 칸톤(州)인 보(Vaud) 고등법원은 “기후변화가 당면한 위기인 것은 맞으나 피고들이 다른 시위 방식을 택할 수 있었다”라며 시위자 12명 각각에게 100~150스위스프랑씩 벌금을 부과했다. 그리고 스위스 최고법원인 연방법원은 한발 더 나아가 “시위 당시 임박한 기후위기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라며 상고를 기각해 유죄판결이 확정됐다. 흥미로운 점은 재판 전 과정에 걸쳐 두 가지 주요 쟁점, 즉 ‘기후변화를 임박한 위기라 볼 수 있나’, 그리고 ‘다른 시위 방식으로 목적을 이룰 수 있었나’에 대한 판단이 재판부마다 달랐다는 점이다. 1심은 ‘임박한 위기이고 이것이 유일한 방식이었다’라고, 2심은 ‘임박한 위기지만 다른 방식을 택할 수 있었다’라고, 3심은 ‘임박한 위기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시위 과정에서 미디어나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위의 테니스 시위 사례를 보면 특이한 방식이 화제가 되고 유명 인사의 참여까지 유도함으로써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건 맞다. 하지만 화석연료 채굴 기업에 대한 은행의 지원이 앞으로 실제 얼마나 줄어들지는 알 수 없다. 여론의 관심과 실질적 목적 달성률이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둘째, 시위의 필요성이나 적법성의 판단 기준은 어때야 할까. 기후위기처럼 과학적 근거가 있음에도 여러 해석이 난무하고 대중의 지지와 무관심이 뚜렷이 갈리는 사안일 경우, ‘임박한 위기’인지 아닌지조차 판사들의 판단이 엇갈린다.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현상 앞에서 낯선 방식으로 시위를 벌일 때, 그 필요성이나 적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때야 할까. 쉽게 답하기 어렵다.

이미 3심 판결까지 끝난 한 별난 시위에 대해 길게 따져본 것은 최근 유럽과 미국 등에서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시위 방식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2019년 9월10일, 스위스 취리히 도심을 관통하는 리마트강이 형광 녹색으로 변했다.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이라는 기후단체가 우라닌이라는 염료를 강에 풀어서다. 무독성 물질로 인체에 무해하다는 전문가 의견이 있었고 단체 회원 30여 명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초록 강에 뛰어들기도 했으나, 비현실적인 강 색깔을 보며 많은 시민이 우려를 나타냈다. 이 단체는 나중에 ‘우리 생태계의 임박한 붕괴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고 밝혔다.

10월24일 월요일 오전 8시에는 ‘스위스를 개조하라(Renovate Switzerland)’라는 단체 소속 액티비스트 3명이 취리히 외곽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고속도로 위에 자신들의 손을 접착제로 붙여 차량 통행을 막았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정부가 당장 40억 스위스프랑의 예산을 배정해 건물 100만 채의 단열 시스템을 개조함으로써 에너지 및 기후위기에 대처하라는 것이다. 출근길 도로가 막혀 화난 시민들은 차에서 내려 시위자들이 내건 현수막을 찢는 등 격렬히 항의했다.

2019년 ‘멸종 저항’이 기후위기를 경고하기 위해 취리히의 리마트강에 녹색 염료를 풀었다. ⓒ취리히시 경찰청

엇갈리는 지지와 비판

11월5일에는 스페인에서 ‘식물 미래(Futuro Vegetal)’라는 환경단체 소속 액티비스트 2명이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두 작품 ‘옷 입은 마하’와 ‘벌거벗은 마하’ 액자에 각각 손을 접착제로 붙이고 두 작품 사이의 벽에 ‘1.5℃’라고 썼다. ‘1.5℃’는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합의된 평균기온 상승 제한치다. 그 목표를 위해 식용 가축 사육을 줄이고 대신 곡물, 과일, 야채, 식물을 재배하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11월15일에는 오스트리아의 기후단체 ‘마지막 세대(Letzte Generation Österreich)’가 빈의 레오폴드 미술관에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1915년 작품 ‘죽음과 삶’에 검은 기름을 들이부은 뒤 유리 액자에 접착제로 손을 붙였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더 나열할 수 있다. 공통점은 ‘비폭력’과 ‘관심 끌기’다.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시민무질서(civil disorder), 시민방해(civil disturbance) 등으로 불리는 이 방식에 대한 비판이 만만찮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교통을 방해받는 사람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짜증만 느낀다”라고 했고, 스위스국민당 마이크 에거 의원(환경위)은 “시민불복종 운동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극도의 경제손실을 야기하므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지 의견도 있다. 스위스 역사학자 크리스티안 콜러는 “주목은 사회운동의 성공에서 꼭 필요하다. 과거에도 새로운 방식을 통해 성공한 사회운동이 많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엄중한 당면 과제이고 사회운동의 성공에 주목이 필수적이라는 점에도 동의한다. 동시에 그 주목이 문제의 핵심을 향하기 바란다. 12명 테니스 선수에 대해 쓰면서 오래된 SF 영화 〈12 몽키즈〉(1996)를 떠올렸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류의 99%가 멸종한 미래세계로부터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주인공은 ‘12 몽키즈’라는 액티비스트 그룹을 의심해 따라다닌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들은 동물원의 동물을 거리에 풀어놓는 장난을 쳤을 뿐이고, 치명적 바이러스를 확산시킨 인물은 따로 있었다. 시끄러운 소동에 주목하다 핵심을 놓친 것이다. 논란을 일으키는 시위 방식, 그것에 대한 시민과 정치인·사법부의 반응 등을 보면서 의문이 더 커진다. 사회운동에 필요한 에너지에도 한계가 있을 텐데, 우리는 그것을 잘 쓰고 있는 걸까.

기자명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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