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독일 최대 에너지 기업인 유니퍼의 무연탄 화력발전소가 재가동하는 모습. ⓒEPA
지난해 8월 독일 최대 에너지 기업인 유니퍼의 무연탄 화력발전소가 재가동하는 모습. ⓒEPA

3월6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연립정부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인사들과 함께 독일이 재생에너지 전환과 거대한 경제 변혁의 길로 나아갈 것임을 선언했다. 3월5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비공개 내각회의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이번 회의는 내각에 참여하는 정당 사이의 차이를 조율하고 정부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쥐트도이체 차이퉁〉 보도에 따르면, 회의에 참석한 정부 인사들은 독일이 석유·가스 등 화석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면서, 이런 도전 과제가 현실적으로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는 점을 설득하려 했다. 숄츠 총리 또한 ‘우리 앞의 과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이번 회의를 통해 성공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부총리이자 경제기후장관인 로베르트 하베크는 정부가 거대한 일자리 프로그램을 추진할 것이며 녹색에너지 산업 투자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향후 10년 동안 계속 독일이 세계경제의 중심에 서 있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립정부는 2021년 12월 “더 많은 진보를 감행하다”라는 모토로 출범했다. 새로운 정부의 연정 합의서에는 기후 보호가 정책 전체를 가로지르는 핵심 과제임이 명시되어 있었다. 녹색당은 기후 보호를 당의 중심에 두고 있다. 연정에 참여하는 다른 정당 또한 기후 보호가 독일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 중 하나임을 인정했다. 기존 기민당·사민당 연정하에서 2019년 만들어진 기후보호법을 새 정부가 실행해야 하는 의무 또한 분명히 했다.

2019년 만들어진 최초의 기후보호법은 독일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뤄야 하며 2030년까지는 1990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55% 감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기후보호법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산업 분야별로 2030년까지 감축할 탄소배출량 또한 규정하고 있었다. 여기에 유럽연합 ‘탄소배출권 거래제도(ETS)’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난방과 교통 분야 연료까지 포함해 2021년부터 이산화탄소 1t당 탄소 가격 25유로를 부과했다. 이후 가격은 점차 상승해 2025년에는 55유로, 2026년에는 최대 65유로까지 올릴 예정이었다.

‘위헌’ 판결 받은 최초의 기후보호법

하지만 2021년 4월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기후보호법의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 관련 규정은 탄소 감축의 책임을 지나치게 미래세대에 전가하고 있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최종 목표에 비해 2030년까지 정해진 감축 목표량이 적은 데다 2030년 이후의 계획은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결국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2019년 기후보호법의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는 법적으로 최소 기준치도 충족하지 못한 것이 되었다. 이에 따라 2021년 6월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개정안에 따르면 독일은 1990년 대비 2030년까지 최소 65%, 2040년까지는 88% 탄소배출량을 감축해야 한다. 그리고 2045년에는 탄소중립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이 개정안에서는 2023년부터 2030년까지 분야별 연간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상향 조정했으며 2031년부터 2040년까지의 감축 목표도 수립했다.

지난해 4월6일 녹색당의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장관은 재생에너지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약 600쪽에 달하는 내용이었다. 정책 패키지에는 재생에너지법, 해상풍력에너지법 등 총 56개 법안 변경과 조처가 담겨 있었다. 하베크는 “재생에너지 확장은 공공의 최대 관심사이며 국가의 안보 문제가 되었다”라며 재생에너지 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의해 발생한 에너지 위기가 해외 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을 가져왔다면서, 에너지 전환이 곧 국가안보라고 강조했다.

3월6일 비공개 내각회의를 마친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 올라프 숄츠 총리,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장관(왼쪽부터).ⓒREUTERS
3월6일 비공개 내각회의를 마친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 올라프 숄츠 총리,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장관(왼쪽부터).ⓒREUTERS

새 정책 패키지를 통해 2030년까지 전체 전기 사용량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던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정의 목표가 공식화되었다. 정책 패키지의 핵심은 재생에너지 확장 속도를 가속화하는 것이었다. 에너지원별로 2030년까지 발전 용량 목표치가 발표되었다. 대표적으로 육상 풍력발전의 경우 매년 10기가와트(GW) 규모 설비를 확보해 2030년까지 총 115GW의 발전설비를 갖추는 계획이 확정되었다. 재생에너지 발전 인프라의 건설 공사를 지연시키거나 어렵게 하는 각종 절차나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정책 패키지의 주요 내용 중 하나였다.

숄츠 정부의 2022년 기후 보호 정책은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공급 위기가 정책의 추진을 어렵게 만들었다. 독일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운행을 중단한 석탄발전소를 지난해 다시 가동했다. LNG 가스 공급을 위한 터미널도 처음으로 만들었다. 2022년에 완전히 중단하기로 했던, 마지막 남은 3개 원자력발전소의 운행 역시 2023년 4월15일까지 연장되면서 독일의 탈원전 계획 또한 차질을 빚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투자와 실행이 필요한 시점에 독일 정부는 기존 에너지 공급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연정 참여 정당 사이의 인식 차이 또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방해 요소였다. 특히 교통부가 정부의 기후 목표 달성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교통 부문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핵심 분야이기 때문에 녹색당은 연정 합의 과정에서 교통장관직을 가져오고자 했다. 하지만 자민당의 강력한 요구로 교통장관 자리는 자민당에 돌아갔다. 기후위기 대응보다 산업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민당의 경우 고속도로 속도제한 도입, 대중교통 강화와 자가용에 대한 불이익,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등에 부정적이다. 교통부는 기후보호법이 명시하고 있는 교통 부문 탄소 감축 정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국제 평가기관 저먼워치와 기후연구단체 뉴클라이밋 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3 기후변화 대응지수’에서 독일은 63개 국가 중 16위를 차지했다(한국 60위). 한 해 전보다 3단계 떨어졌다. 독일은 기후 정책 평가에서는 과거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재생에너지와 교통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에서 저조한 점수를 얻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며 발표했던 목표를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부딪치는 자민당과 녹색당

3월4일 독일 전역에서 청소년·청년 기후위기 대응 운동인 ‘프라이데이 포 퓨처’와 공공서비스노조 페르디의 공동 파업 시위가 있었다. 이날 독일에서는 240개 넘는 집회가 신고되었으며 페르디 소속 대중교통 노조가 파업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정부가 대중교통을 확대하고 교통 전환을 통해 기후 보호 목표를 달성할 것을 촉구했다. 또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정책 실행 계획이 부족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함부르크 프라이데이 포 퓨처의 대변인인 안니카 크루제는 개개인이 자가용을 소유하는 현재의 생활방식과 작별해야 한다고 시위 현장에서 외쳤다.

3월3일 베를린에서 대중교통 확대 및 교통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프라이데이 포 퓨처’ 시위 행렬.ⓒAFP PHOTO
3월3일 베를린에서 대중교통 확대 및 교통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프라이데이 포 퓨처’ 시위 행렬.ⓒAFP PHOTO

독일 국립과학아카데미 레오폴디나 또한 3월5~6일 진행된 비공개 정부 내각회의를 겨냥해 연립정부 참여 정당 사이의 싸움을 멈추고 기후 보호 정책 실행에 속도를 낼 것을 요청했다. 특히 레오폴디나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정부가 과감하게 실행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3월6일 마무리된 내각회의의 참석자들은 독일 정부의 기후 보호 목표 달성 의지를 분명히 표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 실행에는 여전히 분쟁의 요소가 남아 있다. 자민당이 주도하는 교통부는 고속도로망의 확장을 원하는 반면, 녹색당은 철도 중심의 대중교통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합의는 없었다. 난방시설 전환 또한 논쟁의 중심에 있다. 하베크 경제기후장관은 2024년부터 가스 또는 석유 난방시설의 신규 설치를 금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베크는 이를 위해 기존 난방시설을 히트펌프로 교체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전기로 작동하는 히트펌프는 냉매를 이용해 난방과 냉방을 같이 할 수 있는 장치다. 독일에서는 화석연료를 이용한 난방시설의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설치량이 증가 중이다. 하지만 자민당은 하베크 장관의 요구에 반대하고 있다.

독일의 기후 보호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드는 연립내각 사이 의견 차이는 시민들의 여론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자동차에 대해 독일 시민들의 의견이 나뉘는 게 대표적이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2월25일 발행된 표지 기사에서 자동차를 둘러싼 독일 시민 간의 문화투쟁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기후 보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15%인 대중교통 비중이 2030년 24%, 2045년 47%로 상승해야 하지만 자가용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분열’이 건설적 대화를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자가용을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악마화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동차를 독일 산업과 개인 자유의 상징으로 바라본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