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5일(현지 시각) 독일 뮌헨에서 환경단체들이 탈원전 환영 행사를 열었다. ⓒEPA
4월15일(현지 시각) 독일 뮌헨에서 환경단체들이 탈원전 환영 행사를 열었다. ⓒEPA

4월15일 23시59분 독일 네카베스트하임 원자력발전소가 전력 공급을 중단했다. 독일에서 전력망에 전기를 공급하던 마지막 원자력발전소였다. 2023년까지 남아 있던 원전 3기 중 엠스란트와 이자르 2호 원전은 이날 23시27분과 23시52분에 몇 분 앞서 운행을 중단했다. 1961년 6월17일 칼 원자력발전소가 처음으로 전기 공급을 시작한 이후 61년 9개월 29일 만에 독일의 모든 원자력발전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원전을 실제 가동했던 나라 가운데에서는 1987년 이탈리아가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 국가가 된 이후 두 번째다.

독일에서 원자력발전소가 처음 건설되었을 때 사람들은 원자력의 시대가 이렇게 끝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1956년 영국이 처음으로 원자력발전소 운행을 시작한 이후 독일은 기술력에서 다른 나라에 뒤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서독은 1955년에야 원자력에 관한 연구와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칼 원자력발전소 건립부터 운행을 최종 중단한 1985년까지 그곳에서 일한 알프레드 라이제르트 씨는 시사주간지 〈슈피겔〉과 한 인터뷰에서 원자력발전소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새로운 기술에 열광했다며 그 시기 사람들의 기대감을 회상했다. 1961년 〈슈피겔〉은 “이번 크리스마스 거위는 원전에서 만든 전기로 구울 수 있다”라며 첫 번째 원자력발전소의 탄생을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그 후 서독은 야심차게 원자력발전소를 늘려갔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는 원자력발전소가 에너지 주권을 위한 상징이 되었다. 1974년 서독 경제부는 1985년까지 원자력발전소 50기를 새로 짓고, 1990년까지 독일 전체 전력의 50%를 원자력으로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당시만 해도 기성 정당 모두 원자력발전의 확대에 찬성했으며 시민들도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경제부의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61년 동안 독일에서는 원전이 총 36기 운행되었다. 전체 독일 전력 중 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든 전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1997년에도 원전 전력 비율은 30.8%에 불과했다. 2022년, 마지막 남은 원전 3기가 만든 전기는 독일 전체 전력량의 6%를 차지했다. 반면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비율은 46.3%였다.

도입 당시 ‘새 기술’로 각광받았던 원전

서독 정부가 원자력발전소를 야심차게 늘려가던 1970년대 중반은 독일 반핵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1974년 프라이부르크 인근 뷜 지역의 새로운 원전 부지 주변 주민들은 원전에 반대하며 이곳을 점거했다. 주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주민들을 연행했는데 이는 곧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반핵 시위에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독일 북부 브로크도르프 원전 부지에서 있었던 일련의 시위가 대표적이다. 1976년 브로크도르프에서는 약 3만명이 원전 건설 반대 시위를 벌였다. 1977년 지역 고등행정법원은 핵폐기물 처리에 관한 충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무기한 건설 중단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1981년 1월 법원은 건설 중단 명령을 취소했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다시 한번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1981년 2월28일, 독일 브로크도르프에서 약 10만명의 시위대가 원자력발전소 반대 시위를 벌였다. ⓒEPA
1981년 2월28일, 독일 브로크도르프에서 약 10만명의 시위대가 원자력발전소 반대 시위를 벌였다. ⓒEPA

1981년 2월 반핵운동 진영은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법원은 시위 금지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시위대 10만명이 브로크도르프 원전 부지로 몰려왔다. 서독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다. 투입된 경찰 병력도 1만명에 달했다. 역시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 시위는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되었지만 일부 시위대는 경찰이 지키고 있는 건설 부지 안까지 밀고 들어갔고,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당시 경찰의 보고에 따르면, 경찰 128명과 시위대 45명이 부상당했다.

이 시기 반핵운동의 의제는 원전 건설 반대에서 핵폐기물 처리 문제로 확장되었다. 에너지 소비 효율화와 재생에너지 개발 등 핵에너지의 대안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반핵운동은 다양한 정치적 구호 및 의제들과 결합했으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던 시민조직은 선거연합으로 발전해갔다. 1977년 니더작센주의 핵발전소 건설 예정 지역에서는 선거를 위한 연합인 ‘환경보호 녹색 명단(GLU)’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한 최소 조건인 5% 득표에는 실패했지만 3.7%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인 독일 사회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곧이어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선거 연합이 만들어졌다. 1979년에는 유럽의회 선거를 위해 독일 각 지역의 조직이 참여한 ‘또 다른 정치적 연합·녹색당’이 만들어졌다. 이들 역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 기준 5%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3.2%를 득표하며 정부의 선거 보조금 450만 마르크를 받았다. 이 돈은 1980년 녹색당 창당을 위한 자금이 되었다. 녹색당은 1983년 5.6%를 득표해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했고, 점차 독일 탈핵의 역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해갔다.

1981년 10월10일 본에서 벌어진 시위는 당시 반핵운동이 단순히 발전소 건설 반대를 넘어 시대적 위기와 결합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날 시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무기가 독일에 배치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함이었다. 1979년 나토는 한편에서 소련과 핵무기 감축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다른 한편에서 협상이 결과를 내지 못하면 중유럽에도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소련이 동유럽 국가에 배치한 중거리 핵무기에 공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독일 총리인 사회민주당의 헬무트 슈미트는 이를 적극 지지했다. 결국 미국은 평화 협상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고 핵무기 배치는 가시화되었다.

동독과 대치 중인 서독 시민들에게 핵전쟁은 현실적인 위협이었다. 서독의 원전 반대운동은 핵무기 반대운동, 평화운동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핵발전소와 핵무기 개발을 가능하게 만든 근본구조로서 산업문명에 의한 자연 착취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녹색당의 대표적 정치인이자 독일 평화운동을 상징하는 페트라 켈리는 시위 연설을 통해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핵무기 개발과 연결되어 있다며, 독일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로 두 가지 모두를 강하게 규탄했다. 이날 시위에는 약 30만명이 참석했다.

탈원전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던 녹색당은 1998년 처음으로 연방정부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2000년 6월 정부와 원전 운영사들 사이에 원전 폐쇄에 관한 ‘원자력 합의’가 이루어졌다. 녹색당이 거둔 역사적 성과였다. 2002년에는 원자력법 개정과 함께 원전 폐쇄가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과 자민당으로 구성된 메르켈 2기 정부는 2010년 원전 폐쇄 정책을 철회했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구상’에는 온실가스 감축 달성과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위한 원전 사용기한 연장이 강조되어 있었다.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를 줄이는 대신 원전의 사용을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전국적인 반핵 시위를 촉발했다. 그리고 2011년 3월11일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자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다.

기민당 지지율은 떨어졌고 탈핵을 지지해온 녹색당의 지지율이 전례 없이 높아졌다. 녹색당은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최초로 20% 이상을 기록했다. 베를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사민당을 누르고 지지율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 직후인 2011년 3월27일 치러진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선거에서 녹색당은 과거보다 두 배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녹색당은 다수당이 되었고 당 역사상 최초로 주지사를 배출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오랫동안 보수정당인 기민당의 텃밭이었다.

결국 정치적 압박을 받은 메르켈 2기 정부는 같은 해 5월 다시 탈핵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탈핵 안은 600명 중 513명 찬성을 얻으며 연방의회를 통과했다. 집권당이던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자민당뿐만 아니라 사민당과 녹색당까지 정부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법안 통과 직후 원전 8기에 대한 운영 허가가 취소되었다. 2022년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원전 3기는 2022년이 아닌 2023년에 와서야 운행을 중단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때문이었다. 2022년 12월 출범한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립정부는 2030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의 운영을 중단하고 전체 전기 사용량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에서 받는 가스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결국 독일 정부는 에너지 안보를 위해 운행을 중단하고 대기 상태에 있던 석탄발전소를 다시 가동하게 되었다.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석탄발전소 가동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원자력발전소 운행 연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2021년 12월7일 녹색당 대표(오른쪽)는 자유민주당·사회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EPA
2021년 12월7일 녹색당 대표(오른쪽)는 자유민주당·사회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EPA

야당인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여러 정치인이 에너지 안보와 높아진 에너지 비용 등을 이유로 재생에너지 전환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때까지 기존 원자력발전소의 운행을 무기한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바이에른주 총리인 기사당의 마르쿠스 쇠더가 대표적이다. 정부 여당 내에서는 자민당이 원자력발전소 운행 연장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자민당 소속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은 최소한 2024년까지는 원전 운행을 연장해야 에너지 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오랫동안 탈원전을 주장해온 녹색당은 달랐다. 경제기후장관 로베르트 하베크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겨울 동안 3개월 한시적으로 원전 운행을 연장할 것을 주장했지만, 녹색당 내에서는 원래 통과된 법안을 지켜 2022년 연말까지 모든 원전의 운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강했다.

일반 여론 또한 원자력발전소 운행 연장에 우호적이었다. 2022년 8월 독일 공영방송 ARD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1%는 두세 달 정도 단기간 운행 연장에 찬성했으며, 마찬가지로 41%가 무기한 사용 연장에 찬성했다. 2022년 말 운행 중단에 찬성한 사람은 15%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녹색당과 자민당은 내각 내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총리가 법률이 정한 총리 권한으로 내각의 의견을 확정했다. 숄츠는 2023년 4월15일까지 원자력발전소 운행을 연장하기로 했다. 숄츠 총리의 안은 연방의회를 통과했다.

독일에서 마지막으로 가동을 중단한 원전 3기 중 하나인 엠스란트. 4월10일 반핵 활동가들이 '다시는 원전 금지'라는 슬로건을 냉각탑에 띄웠다. ⓒAFP PHOTO
독일에서 마지막으로 가동을 중단한 원전 3기 중 하나인 엠스란트. 4월10일 반핵 활동가들이 '다시는 원전 금지'라는 슬로건을 냉각탑에 띄웠다. ⓒAFP PHOTO

환경단체는 환호, 한편에선 반대 시위

4월15일, 마지막 남은 원전 3기의 가동이 완전히 중단되자 그린피스나 분트 같은 환경단체들은 여러 도시에서 탈원전 행사를 열었다. 행사장에는 과거 반핵운동의 구호가 전시되었다. 녹색당 정치인들도 적극적으로 환영을 표했다. 환경장관인 슈테피 렘케는 DPA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원자력발전소는 불의의 사고가 났을 때 위험을 통제할 수 없다며, 탈원전으로 독일이 더 안전해졌다고 말했다. 녹색당 대표 리카르다 랑은 트위터를 통해 탈원전이 재생에너지 시대로 최종 진입함을 의미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베를린에서는 원전 운행 중단에 반대하는 소규모 시위도 있었다. 시위대는 원전이 독일의 번영을 지키고 자연과 기후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외쳤다. 자민당의 린드너 재무장관은 원전 가동은 중단되었지만, 원전을 해체할 것이 아니라 비상시를 위해 대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티안 뒤르 자민당 원내대표는, 독일은 탈원전이 아니라 핵융합 에너지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풍케 미디어그룹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률안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독일 연방의회 연구위원회 대표를 맡은 녹색당 카이 게링 의원은 핵융합 에너지에 대한 자민당의 발언을 '꿈같은 소리'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분야 전문가라면 핵융합 발전이 단기간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며, 기후를 구하고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하는 시점은 바로 지금이라고 주장했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