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신도시를 설계할 때 어린이 보행 안전은 결코 우선순위가 아니다. 위는 인천 서구 한 신도시 건설 현장. ⓒ시사IN 이명익

지난 3월25일, 경북 영주시 ㅅ초등학교 인근 1차선 도로에서 초등학생(11·남) 한 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가해 차량은 하굣길에 피해 아동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태워 나르던 학원 차였다. 운전자는 좁은 길에 불법주차가 되어 있어 길을 건너는 피해 아동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밀집한 주택과 상점 사이 일방통행로로 들어선 이 길은 평소에도 불법 주정차와 역주행이 빈발했던 곳이다.

사고 후 4개월이 지난 7월20일, 사고 현장 주변 인도에 방호용 울타리(안전 펜스)가 새로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위험 요소인 불법 주정차나 역주행은 여전했다. 등교 시간대에는 아이들을 학교 앞에 내려주는 학부모들의 차량이, 하교 시간대에는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태우는 학원 차량들이 통학길 곳곳에 주정차했다. 학생들은 안전 펜스의 여기저기 뚫린 공간을 통과한 뒤 위태롭게 자동차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학교 앞으로 지나가는 200m 길이의 도로 위에서만 2015년 이후 7건의 중·경상 교통사고가 일어난 전북 정읍시 ㅎ초등학교 앞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취재팀이 7월7일 방문한 이 학교 앞 도로는 인구가 많은 수도권 도심 못지않게 혼잡했다.

경북 영주의 ㅅ초등학교와 전북 정읍의 ㅎ초등학교는 최근 몇 년 사이 학생 수가 많이 늘었다. 지역 소도시들을 덮친 ‘지방 소멸’에서 예외인 곳이기 때문일까? 반대다. 오히려 지방 소멸 현상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면 지역에서 다니던 학교가 폐교되면 읍 지역으로 통학해야 한다. 읍내 학교가 폐교되면 시내 학교로 옮겨가야 한다.

구도심에 살던 아이들이 신도심으로 옮겨가는 현상도 대도시와 비슷하게 벌어진다. 영주시 같은 경우 최근 시가지 서쪽에 조성된 신축 아파트 단지의 초등학교 몇 곳에 인근 지역 아이들이 몰리는 추세다. 그런 가운데 시내에서 벗어나 있던 위치로 당초 전교생 수가 적던 ㅅ학교가 최근 북적이게 되었다. 정읍시도 구시가지 쪽 초등학교들에서는 점점 학생 수가 빠지는 반면 신축 아파트 단지들과 가까운 일부 초등학교만 학생 수가 늘고 있다. ‘소멸 속 과밀’의 역설이다.

지역 곳곳의 작은 행정구역들은 대도시와 사뭇 다른 어린이 보행 안전 문제에 부닥친다. 대도시 어린이들은 대부분 도보로 통학할 수 있는 위치의 초등학교에 배정받는다. 그러나 인구가 급감 중인 작은 행정구역 어린이들은 학교를 걸어서 다닐 수 없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진다. 대중교통도 발달해 있지 않다. 등하교의 대안은 부모 자동차 아니면 학원 셔틀버스밖에 없다. 그 때문에 ‘스쿨존 내 주정차 금지’ 규정도 지방 도시의 학교 앞에서는 유명무실하다.

이렇게 조성되어버린 지리적 구조 속에서 어린이 안전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는 매우 어렵다. 우충무 영주시의원(무소속)은 지난 3년간 ㅅ초등학교를 비롯한 영주시 내 초등학교 주변 교통환경 개선 사업을 추진해왔다. 매번 난관에 부딪쳤다. “길이 좁고 상가와 주택이 밀집한 채 살아가던 동네에서 어린이 안전을 위해 환경을 바꾸자고 하면 늘 누군가의 이해관계와 상충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 안전에 불법 주정차가 분명히 위협이 되지만 학교가 들어서기 전부터 상가를 하신 분들 입장에선 그곳에 차를 못 대게 하면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로 들리는 거다.”

보행 안전 고려는 도시개발 설계 단계부터

기존 재산권과 관습이 거미줄처럼 얽힌 구도심에서 문제해결이 어렵다면, 혹시 흰 도화지에 줄을 긋듯 조성할 수 있는 신도시에서는 어린이 안전이 그 어떤 이해관계와도 충돌 없이 수월하게 보장되지 않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2017년 영주시 내에 ㄱ초등학교가 개교했다. 도시 남서쪽 반듯하게 정리된 구획 내에 신축 아파트들과 함께 들어선 학교다. 아동의 통학 안전을 고려한 도시 공간을 모범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기회 역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신도시 택지 조성 당시 분양의 사업성을 따지는 사이 학교 부지가 애매한 위치로 밀려나고 만 것이다. 사람과 차의 동선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학교 주변 도로가 놓였다. 아이들이 통학 시 걸어 다닐 인도조차 조성되지 않았다.

우 의원은 ㅅ초등학교 주변에 인도 한 면을 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 과정에서 첫 단추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도시계획을 입안하는 단계에서부터 이 모든 문제들이 시작된다. 개발업자들은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기반시설이나 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다. 교통 전문가들, 학교, 학부모, 지방의회 등 여러 주체가 어린이 안전을 우선순위로 두고 도시개발 설계 단계에서부터 의견을 모으고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 순간이 지난 뒤엔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들이 닥치게 된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우석 경기연구원 북부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교통계획학 박사)은 “3기 신도시 사업 같은 LH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의 가장 최신판 도로망 계획만 봐도 우리 사회의 수준과 인식이 그대로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천편일률적으로 학교 주변 아이들이 횡단해야 하는 도로의 폭을 넓혀놓았다. 차량 흐름에 병목이 생기지 말라고 기존 4차로에 좌회전, 우회전, 진입 가감속 차로 3개까지 따로 추가해 7차로를 만들어버리는 식이다. 아이들은 길 한번 건널 때마다 최소 7번 자동차와 마주칠 위험에 노출되는 거다. 우리나라 주거와 교통 문화를 선도해야 하는 LH나 대형 건설사들조차 아직까지 차량 중심의 1970~1980년대식 도시계획 설계를 그대로 반성 없이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설계를 개선할 기회는 없을까? “도시계획위원회, 교통영향평가위원회를 거치지만 열에 아홉은 자동차의 소통을 먼저 본다. 마지막에 교육환경영향평가위원회가 열리지만 이미 다른 위원회들에서 통과되어버린 방안을 감히 뒤집긴 힘들다. 결국 공사 중 안전대책 정도만 보고 넘어간다. 어린이 보행 안전에 관심이 있는 소수의 전문가가 위원회에 들어가 목소리를 내면 그나마 반영이 되지만 이건 시스템이 아니다. 그때그때 다른, 복불복일 뿐이다.”

지 연구위원은 어느 정도 강제력이 있는 제도를 통해 어린이 보호를 고려한 도시설계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의 교통영향평가 지침 안에 ‘최소 초·중학교 앞으로는 4차로 이상의 도로가 위치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같은 문구 한두 줄만 들어가도 아이들이 훨씬 안전해질 수 있다. 안 되면 LH의 내부 설계지침으로라도 만들어놓으면 나머지 건설사들도 따라갈 것이다.”

 

※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시사IN〉 특별기획 ‘스쿨존 너머’

1. ‘스쿨존 너머’, 어린 생명이 꺼진 자리
2. 보행 어린이 사고 지점에 점을 찍으면?
3. 길 위 아이들 눈에 블랙박스가 있었다면(통합본)  
4. 보행 중 어린이 교통사고 언제 어디서 발생하나?
5. 보행 안전을 돈 주고 사야 하나요
6. 지방 소멸과 신도시가 안전에 미치는 영향
7. 민식이법 무섭다고? 사망해도 집행유예
8. “차 가게 빨리 비켜” 사람보다 차가 우선
9. 어린이 입장에서 진짜 ‘갑툭튀’는 누구일까?
10. 소달구지? 사람 살리는 5030!
11. 길 위의 아이들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들

※ ‘스쿨존 너머’ 특별 웹페이지 beyondschoolzone.sisain.co.kr
※ ‘모든 곳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캠페인 참여하기 makeschoolzone.sisain.co.kr

기자명 변진경 기자·최한솔 PD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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