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어린이에게는 위험의 시작 지점과 해제 지점이 따로 없다. 위는 7월12일 제주시 한 초등학교 앞 사거리 횡단보도. ⓒ시사IN 이명익

아산/목포/김해/화순

2014년 6월13일 저녁 7시, 충남 아산시 용화동의 한 무신호등 횡단보도를 건너던 7세 남자아이가 40세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에 치였다. 다행히 경상에 그쳤다. 5년 뒤인 2019년 9월11일 오후 5시, 같은 나이의 남자아이가 바로 그 자리에서 42세 운전자가 몰던 소형 화물 트럭에 치여 숨을 거두었다. 아이 이름은 김민식이다.

사고는 반복되다 기어코 한 생명이 사라지고 나서야 변화로 이어진다. 7월3일 주말 오후 1시경 찾은 김민식 군 사고 지점에는 어린이보호구역을 알리는 형형색색의 안전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방 소도시의 2차선 도로로서는 흔치 않게 CCTV, 노란 신호등, 중앙차선 규제봉, 인도 펜스 등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 보행 신호등도 생겼다. 불법 주정차된 차량 하나 없이 깨끗이 비워진 사고 지점 횡단보도 앞에서, 오가는 차들은 유난히 속력을 낮추어 달렸다.   

다만 거기까지였다. 사고 지점에서 한두 블록 떨어진 곳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초등학교 정문 앞까지는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있지만 바로 옆 어린이공원 앞에는 없다. 인근 아파트 입구와 주택가로 향하는 사거리 교차로도 아무 신호가 없는 비보호 체계다. 차와 보행자들은 서로가 엉키며 눈치껏 이동했다. 불법 주정차가 가득한 인도 없는 이면도로를 동네 어린이들이 지그재그로 걸어가고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와 배드민턴을 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초등학교 6학년 김지우 군(가명)은 말했다. “개인적으로 (사망사고 지점에서 200m 떨어진) 저기 사거리 쪽도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거기도 신호등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예산이 부족하니 안 해주겠죠?”

*데이터: 경찰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
*데이터 시각화: 브이더블유엘(VWL)

전남 목포시 용해동(〈그림 16〉), 경남 김해시 외동(〈그림 17〉), 전남 화순군 화순읍(〈그림 18〉)도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 다발 지점이다. 이 지점들에 서면 공통점으로 보이는 시설이 있다. 어린이보호구역 시작과 끝을 동시에 알리는 표지판이다. 스쿨존 밖에서 안으로 바라보면 “여기부터 속도를 줄이시오”라고 쓰여 있다. 반대로 스쿨존 안에서 밖으로 바라보면 파란색 어린이보호 그림 위에 사선 네 줄이 그어져 있다. 어린이보호구역 ‘해제’ 표시다.

문제는 어린이보호구역 밖에서도 교통사고가 빈발하다는 것이다. 현행 어린이보호구역 지정 범위는 초등학교 주출입문에서 300m 내로 설정되어 있다. 2016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아동의 생활환경 안전연구’는 초등학교와 거리에 따른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 건수를 분석했다. 교통사고는 학교에서 400m 떨어진 지점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당시 연구를 진행한 고주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략기획실장은 “어린이보호구역을 벗어나는 순간 운전자들은 상대적으로 가속페달을 밟게 된다. 현행 300m 범위는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한 최소한의 장소에 불과하다. 아이들의 활동 반경과 사고 데이터를 고려해 300m를 400~500m 범위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도로 위 어린이 보호에 관한 논의는 최근 몇 년 사이 과거와 비교하면 급속도로 발전해왔다. 사고 건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34~37쪽 딸린 기사 참조). 하지만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논의하고 대안을 만드는 방식엔 큰 한계가 존재한다. 역설적이지만 그 한계는 ‘어린이보호구역’ 그 자체다.

걷던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른들은 가장 먼저 묻는다. ‘그곳은 스쿨존인가 아닌가.’ 처벌과 관련된 법률 조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스쿨존이면 기존보다 형량이 더 높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을, 스쿨존이 아니면 형량이 비교적 낮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적용받는다. 이 기준에 따라 도로 위 어린이 보호에 대한 언론과 시민의 관심도가 달라진다. 지자체와 국가의 대응에도 온도차가 생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어린이보호구역 외의 도로’에서 어떻게 어린이를 보호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보기 힘들다. 관련 제도를 정비하려는 정치권과 국가의 움직임도 미미하다.

몇 구역에 스쿨존이란 이름만 붙여놓은 채 유명무실하게 방치했던 과거에 비하면 분명 발전된 모습이다. 하지만 스쿨존을 중심으로 도로 위 어린이 보호를 모색하는 관점은 상식적이지 않다. 어린이의 안전과 위험이 스쿨존이라는 한정된 구역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스쿨존 여부는 처벌의 경중을 가늠하는 운전자와 성인의 관점에서 중요한 기준일 뿐이다. 아이들 처지에선 스쿨존 안에서든 밖에서든, 차에 받히면 몸과 마음이 손상되며 심지어 목숨까지 잃게 된다.

길 위의 어린이에게는 위험의 시작 지점과 해제 지점이 따로 없다. 아이들이 자동차로부터 안전을 위협받는 공간, 따라서 어른들이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줘야 할 공간은 스쿨존을 넘어선다. 집-학교, 학원-놀이터, 공원-도서관 등을 오가는 아이들의 ‘길’ 내지는 ‘동선’이 모두 위험한 공간이고 보호받아야 할 범위이다.

〈시사IN〉은 보행 교통사고로 어린이가 죽거나 다친 장소들을 3개월간 찾아다니며 여러 공통점을 발견했다. 동시에 서로 다른 차이점들도 발견했다. 위험한 장소가 따로 있지 않았다. 완벽히 안전한 길도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안전과 위험은 중첩되고 연결되었다. 결국 모든 길이었다. 모든 길에서 주인은 사람보다 자동차였다. 사람들 가운데서도 어린이를 포함한 보행 약자들은 가장 허약한 지위로 내쳐져 있었다. 그들은 모든 길에서 목숨과 안전을 위협받는다.

이제 막 첫발을 뗐다. 민식이법 제정 같은 제도 정비를 한국 사회는 최근에야 시작했다. 이조차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제한된 구역 안에서만이라도 어린이가 죽거나 다칠 확률을 낮추려는 노력의 가치가 끊임없이 의심받고 비판받는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이제 막 어린이보호구역 지정과 관리에 돈과 관심을 쓰기 시작했다. 예산을 배정하고 정책을 집행할 때 가장 뒷순위였던 어린이 보호 업무가 이제야 조금씩 앞으로 당겨지고 있다.

모든 길에서 보행 어린이의 안전이 위협받았으니 모든 길에서 보행 어린이의 안전을 점검해야 한다. 개선해야 한다. 그 일은 국가와 지자체, 그리고 어린이를 둘러싼 주변 모든 어른들의 몫이다. 궁극적으로는 어린이들 앞에 연속성 있는 안전한 길을 이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초저출산 사회 대한민국에서 힘겹게 태어난 귀한 어린이들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비극들을 막는 하나의 방법이다. 어린이에게는 스쿨존 안과 밖, 모든 길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을 권리가 있다.

 

※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시사IN〉 특별기획 ‘스쿨존 너머’

1. ‘스쿨존 너머’, 어린 생명이 꺼진 자리
2. 보행 어린이 사고 지점에 점을 찍으면?
3. 길 위 아이들 눈에 블랙박스가 있었다면(통합본)
4. 보행 중 어린이 교통사고 언제 어디서 발생하나?
5. 보행 안전을 돈 주고 사야 하나요
6. 지방 소멸과 신도시가 안전에 미치는 영향
7. 민식이법 무섭다고? 사망해도 집행유예
8. “차 가게 빨리 비켜” 사람보다 차가 우선
9. 어린이 입장에서 진짜 ‘갑툭튀’는 누구일까?
10. 소달구지? 사람 살리는 5030!
11. 길 위의 아이들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들

※ ‘스쿨존 너머’ 특별 웹페이지 beyondschoolzone.sisain.co.kr
※ ‘모든 곳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캠페인 참여하기 makeschoolzone.sisain.co.kr

 

기자명 변진경·이명익·김동인 기자, 최한솔 PD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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