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초등학교 앞 사거리 횡단보도 풍경. 초록색 보행자 신호에도 차가 횡단보도를 지나가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대구/정읍/인천/제주/경주

지난 6월6일 대구 북구 매천동의 한 6차선 삼거리. 보행 초록불 신호가 떨어지자 사람들이 30m 길이의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다. 이 길을 건너면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나온다. 보행자들이 횡단보도 절반을 채 건너기 전, 자동차 5대가 모두 횡단보도 흰색 칠을 밟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서행하는 승용차, 잠깐 섰다 슬슬 움직이는 화물차,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는 승합차 등 양상은 다양하지만 경로는 똑같다. 우회전 후 바로 이 횡단보도를 만난 자동차들이다.

2007년 이후 이 길을 걸어가던 어린이 6명이 차에 받혀 숨지거나 다쳤다. 2009년 6월3일(가해 차종 화물차, 피해 아동 7·남), 2009년 7월13일(승합차, 7·남), 2014년 11월29일(승용차, 12·남), 2015년 3월6일(승용차, 11·여), 2015년 7월14일(승용차, 8·남), 2019년 5월24일(승용차, 7·남). 2009년 6월 사고만 경상이고 나머지는 모두 중상 사고다. 2015년 7월14일 사고는 피해 어린이의 사망으로 이어졌다(〈그림 1〉 참조).

그날 죽은 아이는 화요일 아침 등교하던 초등학교 2학년 A군이었다. “높은 SUV 차였는데 애가 작아서 안 보였대요. 바퀴 밑에 빨려 들어갔다더라고요.” 교차로 인근에 위치한 가구점 사장이 말했다. 근처 보습학원 원장은 2년 전 바로 그 자리에서 강아지가 차에 치여 죽는 사고를 목격했다. “강아지가 주인과 같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우회전하던 차가 순식간에 탁 치고 지나가더라고요. 거기가 살짝 오르막에서 바로 우회전해서 만나는 횡단보도인데 차들이 거의 안 서요. 강아지든 아이들이든 작아서 운전자 시야에서 잘 안 보이잖아요. 이런 데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안전장치를 하고 우회전하는 운전자에게 경고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망사고 후 다소의 변화는 있었다. 신호체계가 바뀌고 바닥에 노란 발자국 스티커가 붙었다. 횡단보도 앞에 볼라드가 박히고 신호등에 노란 테두리가 씌워졌다. 하지만 4년 뒤(2019년 5월24일)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유형의 어린이 중상 사고가 일어났다. 〈시사IN〉이 찾아간 2021년 7월에도 여전히 우회전하는 차들은 보행자 횡단 신호 여부와 상관없이 횡단보도 앞 일시 멈춤을 실행하지 않고 지나갔다.

7월7일 전북 정읍시 장명동(〈그림 2〉), 7월12일 인천 미추홀구 도화동(〈그림 3〉), 7월13일 제주시 노형동(〈그림 4〉) 등 사고 다발지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목격했다. 우회전 차선 혹은 우측 1차선을 지나는 자동차들은 유독 횡단보도 신호를 지키지 않았다. 간혹 서는 차가 있으면 금세 뒤차의 경적음이 울렸다. 어린이보호구역이어도, 교통안전 도우미가 ‘STOP’ 깃발을 들고 있어도, 보행자 초록불에 어린이들이 걸어가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 5월11~12일 서울 시내 교차로 6곳에서 우회전하는 차량 823대를 조사해보았다.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을 때 완전히 멈춘 차는 19.3%(159대)뿐이었다. 이 중 45대는 정지선이 아닌 횡단보도 위를 침범한 상태에서 차를 세웠다. 26.9%(221대)는 보행자에게 양보는 했지만 슬금슬금 계속 횡단보도에 접근했다. 53.8%(443대)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나아갔다.

비슷한 사고는 계속 반복된다. 8월30일 경북 경주시 동천동에서 여름방학을 마치고 2학기 첫 등교를 하던 초등학생 B양(12)이 우회전 후 그대로 진입하는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B양 역시 보행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이었다. 지난 3월18일에는 인천 중구 신흥동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하교하던 초등학생 C양(10)이 횡단보도 위에서 화물차에 치여 사망했다. 직진차로인 2차로에서 불법 우회전하던 25t 화물차가 아이를 치고도 곧바로 멈추지 못하고 20m 가까이 끌고 갔다. 당시 1학년 외손주를 데리러 나왔다가 사고를 목격한 조영숙씨는 “여기는 횡단보도 위치 구조상 늘 위태위태했다. 교문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곳에 횡단보도가 있으니 아이들은 초록불 뜨는 걸 보고 곧장 달려버리는데, 우회전하는 차 운전자 시야에서는 달려 나오는 아이들이 잘 안 보인다. 사고 당일에도 교통지도 도우미와 경찰관이 나와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데이터: 경찰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 *데이터 시각화: 브이더블유엘(VWL)

인천항으로 이어지는 이 6차선 도로에는 하루 종일 대형 화물차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인데도 불구하고 사고 이전까진 제한속도가 시속 50㎞였다. 아이가 사망한 뒤에야 제한 속도를 시속 30㎞로 낮추고 횡단보도 위치를 옮겼으며 인도를 펜스로 막았다. 직진 차선과 우회전 차선 사이 안전봉을 심고, 시야를 가리던 가로수와 전봇대도 뽑았다.

그러던 와중 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7월10일 우회전하던 덤프트럭 운전자가 자전거를 타고 가던 60대 피해자를 친 것이다. C양이 사망한 곳에서 불과 15m 떨어진 지점이었다. 7월12일 오후 사고 현장에 나와 조사하던 경찰 관계자는 “여기가 워낙 화물차 통행량이 많은데 교차로 모양까지 복잡해서 사고를 막기가 쉽지 않은 지점이다”라고 말했다. 그 위태로운 찻길 바로 앞에 전교생 736명 규모의 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그림 5〉 참조).

어린이들이 자주 다니는 동선에 화물차 등 대형 차량이 지나가는 경우 특히 안전을 위협받는다. 위는 인천의 한 초등학교 인근 도로.ⓒ시사IN 신선영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시사IN〉 특별기획 ‘스쿨존 너머’

1. ‘스쿨존 너머’, 어린 생명이 꺼진 자리

2. 보행 어린이 사고 지점에 점을 찍으면? 3. 길 위 아이들 눈에 블랙박스가 있었다면(통합본)   4. 보행 중 어린이 교통사고 언제 어디서 발생하나? 5. 보행 안전을 돈 주고 사야 하나요 6. 지방 소멸과 신도시가 안전에 미치는 영향 7. 민식이법 무섭다고? 사망해도 집행유예 8. “차 가게 빨리 비켜” 사람보다 차가 우선 9. 어린이 입장에서 진짜 ‘갑툭튀’는 누구일까? 10. 소달구지? 사람 살리는 5030! 11. 길 위의 아이들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들

※ ‘스쿨존 너머’ 특별 웹페이지 beyondschoolzone.sisain.co.kr ※ ‘모든 곳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캠페인 참여하기 makeschoolzone.sisain.co.kr

기자명 변진경·이명익·김동인 기자, 최한솔 PD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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