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흥/인천
6월16일 오전 8시40분 경기 부천시 도당동의 한 주택가 골목길. 학부모 이 아무개씨는 함께 손잡고 걸어가던 여섯 살 유치원생 딸을 길가 쪽으로 급히 끌어당겼다. 담벼락에 바짝 붙어 있는 사이 1t 트럭이 이씨 모녀 앞을 지나갔다. 차도와 인도가 따로 구분되지 않은 이런 좁은 이면도로를 130m쯤 걸어가야 겨우 안전지대가 나온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인도는 이씨 자녀들이 다니는 병설유치원과 초등학교 정문 앞의 한 블록에만 깔려 있다. “엄마 차 와!” “피해 피해~” 뒤에서 다가오는 차를 발견하고 경고를 하는 딸과 담벼락 쪽으로 아이를 끌어당기는 엄마의 행동이 등원길 내내 반복되었다. 초1 아들은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이씨는 “셋이 손잡고 걸어가면 이런 길은 더 위험해서 차라리 큰아이는 먼저 앞세워 걷게 한다”라고 말했다. 아들은 앞, 뒤, 옆을 번갈아 확인하느라 고개를 수십 번 움직이며 인도 없는 등굣길을 걸었다.
인구가 밀집한 구도심에 이런 길이 많다. 주택과 상가 필지가 차도 바로 앞까지 바싹 붙어 있다. 차가 지나갈 길을 그대로 둔 채 인도를 따로 내기가 여의치 않다. 임시방편으로 줄 하나를 긋고 ‘보행로’ 글자를 써놓는 곳도 있지만 별 효과가 없다. 주정차된 차량이나 상가 좌판들이 보행로 줄을 이미 밟고 있는 상태라서 동네 주민들도 ‘보행로’란 글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자동차, 오토바이, 어른, 아이 등이 뒤섞여 좁은 차도를 오가다가 크고 작은 사고들이 한 골목길 안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경기 시흥시 정왕동(〈그림 11〉)과 인천 남동구 간석동(〈그림 12〉) 같은 주택 밀집 지역이 대표적이다. 시흥 정왕동은 초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어린이공원 등이 다수 분포돼 있는 주택가 이면도로 곳곳이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 발생 지점이다. 인천 간석동의 초등학교·중학교와 행정복지센터를 잇는 이면도로 50m에도 사고 지점들이 촘촘히 기록돼 있다.
“차가 빵빵거려요, 맨날. 근데 안 멈춰요, 절대” “완전 닿을 듯 말 듯해야 차가 멈춰요” “길이 너무 좁아요” “자전거 타다 사고 난 애가 있어요. 서서 타다가 차랑 부딪쳤는데 안장이 날아갔대요” “저도 등 쪽을 차랑 부딪친 적 있어요. 근데 부모님한텐 말 안 했어요”. 사고 다발 지점 인근 편의점과 분식집 앞 등지에서 만난 하굣길 초등학생들에게 아찔했던 경험을 묻자 아이들은 다양한 사례들을 쏟아내었다.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며 수다를 떨던 어린이들은 인도 없는 길 위로 아찔하게 뛰어가며 해맑게 결론 내렸다. “괜찮아요, 우리가 잘 피해 다니면 되죠, 뭐.”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시사IN〉 특별기획 ‘스쿨존 너머’
1. ‘스쿨존 너머’, 어린 생명이 꺼진 자리 2. 보행 어린이 사고 지점에 점을 찍으면?
※ ‘스쿨존 너머’ 특별 웹페이지 beyondschoolzone.sisain.co.kr ※ ‘모든 곳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캠페인 참여하기 makeschoolzon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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