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전주/서산

어린이들은 인도를 걷다가도 차에 치여 죽는다. 지난해 1월14일 오후 2시30분경,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한 보행자 도로를 걸어가던 초등학생 J양(10)이 굴착기 바퀴에 깔려 사망했다. 집 앞이었고 매일 걸어 다니던 길이었다. 가해 차량은 주유소로 진입하던 굴착기였다. 편도 4차로 중 제3차로를 따라 진행하던 굴착기는 주유소 입구 앞에서 진로를 급격히 변경해 우회전했다. 목격자 신경수씨는 “굴착기가 완전 ‘칼치기(차량이 주행 간격이 좁은 옆 차선의 차량들 사이로 칼같이 끼어들어 앞차를 추월하는 행위)’로 속도도 줄이지 않고 진입해 아이를 밟고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라고 말했다.

굴착기 운전자는 지난해 5월28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으로 금고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보도에 진입하기 전 일시정지를 한 다음 전후 및 좌우를 잘 살펴 통행하는 보행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등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죄였다. 하지만 보도 위로 굴착기가 진입한 행위 자체를 위법으로 보지는 않았다. ‘도로점용허가’를 받은 구역이기 때문이다.

도로점용(보도의 일부를 시설이나 차량이 점유·사용하는 경우)의 법률적 근거는 도로법 시행령 제55조다. 이 법에 따라, 공공시설(가로등·전봇대·우체통)이나 상업시설(구두수선대·노점·자동판매기·상품진열대)의 보도 점용이 허용된다. 그런데 차량 역시 합법적으로 보도를 점용할 수 있다. 차량이 주유소·주차장·자동차 수리소·세차장 등에 드나드는 데 필요한 진입로 및 출입로를 도로점용구역으로 허가하는 경우다. 건설사업정보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매해 전국 2000여 곳씩 도로점용허가가 승인됐다. 한번 허가받으면 10년간 점용을 유지할 수 있다.

차량이 보도를 드나들게 되면서 보행자가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빈번하자, 도로점용허가를 받은 시설의 운영권자에게 안전장치(속도저감시설, 시선유도시설, 경보장치 등)를 갖추도록 의무화한 개정 법률이 2018년 5월에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 개정법은 이미 보도 점용을 허가받은 시설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J양이 굴착기에 깔려 사망한 곳도 개정법 통과 이전에 도로점용구역으로 승인된 곳이었다. J양 사망 이후에야 안전장치들이 설치되었다.

*데이터: 경찰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 *데이터 시각화: 브이더블유엘(VWL)

주변의 도로점용허가 구역들을 둘러봤다. J양 사고 지점의 앞뒤 200m씩을 오가다 보면 도로점용허가 구역을 10곳 가까이 만난다(〈그림 13〉). 오토바이, 승용차, 화물차, 지게차 등이 보행자 앞뒤를 가로질러 주유소, 카센터, 드라이브 스루 카페·패스트푸드점, 주차장 등을 합법적으로 오간다. 그러나 여전히 보행자 안전장치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어린이보호구역도 예외가 아니다. 전북 전주시 인후동 한 초등학교 정문 바로 앞 횡단보도는 상가 건물의 주차장 진입로이기도 하다(〈그림 14〉). 자동차가 등하굣길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아이들 사이를 뚫고 보도를 가로질러도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다. 전북 정읍시 상동 어린이보호구역도 마찬가지다. 초·중·고등학교와 학원가가 마주 보고 있는 이 거리엔 인도가 잘 갖춰져 있고 보도와 차도 사이 철제 펜스도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중간중간 펜스가 비어 있는 곳들이 많다. 차량이 상가 주차장이나 세차장 등을 드나드는 도로점용허가 구역들이다. 충남 서산시 읍내동 한 어린이보호구역의 경우, 초등학교 맞은편에 대형 슈퍼마켓 주차장, 카센터, 관광버스 주차장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출입구는 도로점용허가 구역이다. 모두 보행 어린이 중상 사고 다발 지역이기도 하다(〈그림 15〉).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시사IN〉 특별기획 ‘스쿨존 너머’

1. ‘스쿨존 너머’, 어린 생명이 꺼진 자리 2. 보행 어린이 사고 지점에 점을 찍으면?

3. 길 위 아이들 눈에 블랙박스가 있었다면(통합본)   4. 보행 중 어린이 교통사고 언제 어디서 발생하나? 5. 보행 안전을 돈 주고 사야 하나요 6. 지방 소멸과 신도시가 안전에 미치는 영향 7. 민식이법 무섭다고? 사망해도 집행유예 8. “차 가게 빨리 비켜” 사람보다 차가 우선 9. 어린이 입장에서 진짜 ‘갑툭튀’는 누구일까? 10. 소달구지? 사람 살리는 5030! 11. 길 위의 아이들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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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변진경·이명익·김동인 기자, 최한솔 PD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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