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탄핵 심판대에 올랐다. 국무위원이 탄핵 심판을 받는 건 헌정 사상 최초다. 헌법은 공직자가 직무집행 과정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파면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씨(최서원)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해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배했다는 등의 이유로 파면됐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희생자 이주영씨의 아버지 이정민씨는 5월23일 이상민 장관 탄핵 심판 2차 변론기일을 앞두고 물었다. “참사 직후 현장에서 ‘여기가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극심한 혼란을 목격했다. 경찰, 소방, 의료팀은 지휘 혼선으로 갈팡질팡하고 있었고 인명구조를 위한 통제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 이상민 장관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국회(청구인)와 이상민 장관(피청구인) 측 주장을 종합해 참사 당일 이상민 장관의 행적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해 10월29일 밤 10시15분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다는 119 최초 신고가 있었다. 이상민 장관은 밤 11시20분 상황을 처음 인지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는 기사가 자택(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오기까지 기다린 다음, 참사 인지 85분이 지난 10월30일 0시45분 현장 부근에 도착했다. 이후 오전 1시50분 국무총리 주재 긴급대책회의, 2시30분 대통령 주재 2차 긴급상황점검회의에 참석했다.
헌법재판소는 이상민 장관의 탄핵 소추 이유를 3가지로 추리고, 사건의 쟁점을 크게 10가지(오른쪽 그림 참조)로 정리했다. 이번 탄핵 심판에서 재판부는 이태원 참사를 전후로 이 장관이 △재난 예방조치 의무를 위반했는지 △재난 대응조치 의무를 위반했는지 △부적절한 언행을 했는지를 심리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장관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위반했다면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지 등을 따진다.
국회 측 대리인 노희범 변호사는 국회가 이상민 장관의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국회는 피청구인에게 정치적 책임이나 도의적 책임을 묻는 게 결코 아니다. 피청구인의 무능력이나 무책임한 발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다. 이번 탄핵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자신에게 부여된 직무를 태만히 하고 방임한 피청구인의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거다(5월9일 1차 변론기일).”
1차(5월9일)‧2차(5월23일) 변론기일에서 양측은 주로 이태원 참사 직후 이상민 장관의 대응‧조치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다퉜다. 국회 측은 이상민 장관이 재난의 초동조치·지휘를 담당할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신속하게 설치하는 등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아 참사 피해가 확대됐다고 말한다. 이상민 장관 측은 참사 현장으로 가는 도중에도, 현장에 도착해서도 상황을 파악하는 동시에 필요한 조치를 했다고 주장한다.
초점은 크게 두 가지로, '이상민 장관이 왜 중수본을 설치하지 않았는지' '이상민 장관이 참사 현장을 직접 지휘‧감독할 권한이 있는지'에 맞춰졌다. 국회 측은 이상민 장관이 신속하게 중수본을 설치하지 않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을 위반했다고 본다. 이태원 참사 당시 중수본은 설치되지 않았다.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재난관리 주관기관의 장’은 중수본을 신속하게 설치하고 운영해야 한다(제15조의 2). 국회 측은 참사 초기 중수본이 총괄 및 조정 업무를 하지 않아서 기관 간 공조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본다.

중수본이 설치되지 않은 이유
이상민 장관 측은 참사 이후 ‘재난관리 주관기관’의 지정이 늦어지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중수본의 역할이 중첩돼 행정안전부 훈령에 따라 중수본을 중대본으로 확대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중대본은 참사 발생 4시간여 후인 10월30일 오전 2시30분 대통령 주재 긴급상황점검회의 직후 가동됐다. 이상민 장관 측 대리인 윤용섭 변호사는 “이 사건에서 (중대본 설치는)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긴급구조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중대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 이후의 복구‧수습‧장례 절차‧유족에 대한 위문 등이 남은 거다(5월9일 1차 변론기일)”라며 중대본의 역할을 긴급 구조가 끝난 이후 수습 및 복구 차원으로 한정했다.
이상민 장관 측은 재난 현장의 지휘‧감독권이 피청구인에게 없고, ‘긴급구조 통제단장’에게만 있다고 판단한다. 재난안전법에 피청구인이 긴급구조 통제단장에게 개입하고 지시할 근거 규정이 없다는 이유다. 국회 측은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현장 지휘‧감독권이 있다고 본다. “긴급구조 통제단장은 현장에서 구급‧구조활동을 지휘한다. 전체적으로 현장 상황을 보면서 어떤 기관의 인력과 장비가 필요할지 판단하고 (중앙정부 단위의) 지원과 협력을 요청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행정안전부 장관이 재난 현장을 총괄‧조정하는 게 재난안전법의 취지다(5월9일 1차 변론기일 장주영 변호사).”

중수본 설치를 위한 재난관리 주관기관 지정 여부를 두고 이상민 장관의 위증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상민 장관은 이태원 참사 재난관리 주관기관이 ‘없다(2022년 12월27일)→정하지 않았다(2023년 1월6일)→참사 이후 바로 행안부로 정해졌다(1월6일)’라고 세 차례 말을 바꿨다. 이 밖에도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던 문제는 아니다(2022년 10월30일)” “유가족의 명단과 연락처를 가지고 있지 않다(2022년 11월16일)” “서울시가 유가족 명단을 제공하지 않았다(2022년 12월27일)” 등의 장관 발언이 문제가 됐다.
법률상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하면 위증이다. 이상민 장관 측은 “진술 당시 기억하고 있던 그대로를 진술했던 거지, 기억에 반하는 허위 진술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태원참사 TF 소속 천윤석 변호사는 “이상민 장관이 발언할 당시에 정확히 파악이 안 됐으면 파악이 안 됐다고 말해야 한다. 유족 명단이 있건 없건 장관이 파악된 것처럼 이야기하면 그건 위증이다. 재판부가 이 쟁점을 더 주의 깊게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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