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문. 이 사건 심판 청구를 기각한다.” 7월25일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이었다. 선고 직후, 눈을 질끈 감은 이정민(고 이주영씨 아버지)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직무대행은 한동안 방청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박미화씨(고 조경철씨 어머니)는 눈물을 터뜨리며 “이게 법이냐, 이게 말이 되냐”라고 소리쳤다. 다른 유가족들도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심판정을 빠져나왔다.
탄핵 심판은 고위공직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부터 공동체와 헌법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재판이다. 지난 2월8일 국회는 이상민 장관이 이태원 참사 예방‧대응‧수습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고 이 장관 탄핵 소추안을 가결(179명 찬성)했다. 국회 측 대리인 노희범 변호사는 이번 탄핵 심판에 대해 “형사상 유무죄 여부를 다투거나 양형을 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생명과 신체‧재산을 보호할 국가의 책임을 다했는지 묻는 것(6월27일 4차 변론기일)”이라고 설명했다.
국회는 이상민 장관이 “재난 발생을 인지하고서도 늑장 대응을 하며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 총괄자로서 어떠한 실질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이상민 장관 탄핵 소추안)”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10월29일 밤 10시15분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다는 119 최초 신고가 있었다. 이상민 장관은 밤 11시20분 참사를 처음 인지했다. 이후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운전기사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 오기까지 기다린 다음, 참사 인지 1시간45분이 지난 10월30일 새벽 1시5분 현장지휘소에 도착했다. 재난의 초동 조치·지휘를 담당할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설치되지 않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참사 발생 4시간여 후인 10월30일 오전 2시30분 대통령 주재 긴급상황점검회의 직후 가동됐다.

참사 발생 직후부터 나온 이상민 장관의 발언도 문제가 됐다. 이상민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지난해 10월30일)”, “이미 골든타임을 지난 시간이었다(지난해 12월27일)”라는 등 참사 원인을 섣부르게 단정하고, 국가 책임을 회피하는 말을 했다. ‘재난관리 주관기관’ 지정 여부, 유가족 명단 확보 등을 두고 이상민 장관의 위증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애초 야당은 이상민 장관에게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 장관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지난해 11월8일)”라며 자리를 지켰다. 지난해 11월1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그건 국민에 대한 도리도, 고위공직자의 책임 있는 자세도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해 12월11일 국회는 이상민 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182명 찬성)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해임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국회가 2월8일 이상민 장관 탄핵 소추안을 의결하면서, 헌법재판소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상민 장관의 책임을 따지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이상민 장관의 탄핵 소추를 의결한 지 167일 만에 이렇게 판단했다. “이 참사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하고 확대된 것이 아니라 (…)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 피청구인이 재난관리 주무 부처의 장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재난 대응 과정에서 최적의 판단과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재난 대응의 미흡함을 이유로 그 책임을 묻는 것은 규범적 심판 절차인 탄핵 심판 절차의 본질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이상민 장관을 탄핵하려면 더 명백한 법 위반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헌법재판소 다수의견 중 일부다. “참사 발생 전 핼러윈 기간 이태원의 인파 밀집을 예상한 언론 보도가 있었으나, 다중밀집사고 자체를 예상하거나 우려했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 이런 상황에서 피청구인(이상민 장관)에게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 (…) 조치를 미리 취할 것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피청구인이 구체적인 지원 요청을 받은 바 없고, 특별한 협력 요청을 받은 바 없는 이상, 피청구인이 현장에서 보다 적극적‧구체적인 현장 지휘‧감독에 나아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곧바로 재난안전법에 따른 총괄·조정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국회가 이상민 장관을 탄핵 소추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중수본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이상민 장관 측은 행정안전부 훈령에 따라 중수본을 중대본으로 확대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재난관리 주관기관의 장(이태원 참사의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은 중수본을 신속하게 설치하고 운영해야 한다(제15조의2). 국회 측은 참사 초기 중수본이 총괄 및 조정 업무를 하지 않아서 기관 간 공조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봤다.
헌법재판소는 중수본 미설치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다. “당시에는 긴급구조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여전히 재난 원인과 유형, 피해 상황 및 규모가 명확히 파악되지 않아, 피청구인이 다른 대응조치에 우선해 중대본과 중수본의 설치‧운영을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이태원 참사 TF 소속 천윤석 변호사는 “재난안전법은 재난 상황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의 의무를 규정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상민 장관이 의무를 위반했느냐가 아니라 이 장관의 판단이 옳았냐, 수긍할 만하냐를 따졌다. 굉장히 무리한 논리구조”라고 반박했다.
국회 측은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장관 탄핵 심판을 졸속으로 진행했다고 의심한다. 이번 탄핵 심판은 변론기일 4회, 총 10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증인 4명(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박용수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장, 엄준욱 당시 소방청 112 상황실장, 황창선 경찰청 치안관리관)이 출석했다. 참사 당일 현장에 있던 이정민씨에게 유가족 대표로 10분간 법정에서 진술할 기회가 주어졌다. 국회 측 대리인 장주영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는 희생자들의 사망 시각과 현장 소방관들의 진술 자료 등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의 수사기록 일부 미제출을 용인하고 생존자 및 유가족 증인 채택, 현장 검증 등을 거부했다. 헌법재판소가 충실한 사실심리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대응 TF’ 단장인 진선미 의원은 “김도읍 탄핵소추위원(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우리가 소추위원으로 적극 개입하고자 하는 것도 차단했고, 변호인을 선임하는 데도 제한을 두었다”라고 말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국회 측 소추‧대리인단은 68명이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때는 국회 측 소추위원단 9명, 대리인단 16명이 탄핵 심판을 준비했다. 이번 이상민 장관 탄핵 심판에서 국회 측 대리인은 총 4명(국민의힘 추천 김종민·최창호 변호사, 민주당 추천 노희범·장주영 변호사)이었다. 국회 소추위원은 김도읍 위원장(국민의힘) 혼자였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의 요구에도 “민주당은 탄핵 소추의 이유가 차고 넘친다고 했다”라며 별도의 소추위원단을 구성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거야는 국민의 심판 받게 될 것”
국회 측 한 관계자는 “헌법재판소는 증인신문이 끝나고 곧바로 변론을 종결했다. 개인 형사재판 때도 최종 변론기일을 별도로 잡지 이렇게는 안 한다. 대리인들이 방대한 수사 자료를 분석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법리나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졸속으로 결정문을 작성해서 발표한 걸 보면, 서둘러 결정하려고 작정한 거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소장 유남석, 주심 재판관 이종석, 재판관 김형두·이영진·이은애)은 이상민 장관이 어떤 헌법상 의무나 법률(재난안전법‧국가공무원법)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다. 탄핵 청구 ‘기각’이라는 결론은 동일하지만 결론에 이르는 이유가 다른 ‘별개 의견’도 있었다. 3명(재판관 김기영‧문형배‧이미선)은 이상민 장관의 사후 재난대응이 국가공무원법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별개 의견을 낸 재판관 3명과 함께 정정미 재판관은 이상민 장관의 ‘참사 원인, 골든타임, 재난관리 주관기관’에 대한 발언이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별개 의견을 낸 재판관들 모두 법 위반 행위가 이상민 장관을 파면할 만큼 중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이상민 장관은 선고 직후 “이번 기각 결정을 계기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라는 입장을 내고, 복귀 첫 일정으로 충남 청양군 수해 현장을 찾았다. 대통령실은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은 거야의 탄핵소추권 남용이다. 이 같은 반헌법적 행태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 대한 대통령실의 별도 언급은 없었다.
그 시각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유가족들은 ‘이상민 장관 업무 복귀 환영’ ‘탄핵 기각! 국민 승리’ 등의 피켓을 든 보수 단체 회원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울고 난리 났네” “다 집에나 가”라며 유가족들을 조롱했다. 유가족이 기자회견을 시작하자 한 보수 단체 회원이 유가족 앞에서 “이태원 참사는 북한 소행”이라고 소리쳤다. 이에 항의하는 유가족들이 달려 나가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때 보수 단체의 확성기에서는 ‘이렇게 좋은 날에’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경찰이 충돌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유가족 한 명이 실신해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됐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직무대행 이정민씨는 실신한 유가족을 구급차에 실어 보냈던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 여러분이 목격했듯 유족들이나 같은 국민으로서 아픔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희생자와 유가족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리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잘못된 권력을 응징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이런 사람들이 나타날 거고 불행한 국민에게 더 불행을 강요하는 행태가 계속될 거다. 이제는 탄핵이 아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통해 이태원 참사 재난 책임자들의 책임을 묻겠다.”


※이태원 참사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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