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두 건물 사이 좁은 길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스쳐 지나간다. 변한 것은 붉은색 가벽에 붙은 추모 메시지뿐. 200일 남짓 붙어 있던 종이쪽지들은 빛이 바랬다. 5월16일은 이태원 참사 200일이 되는 날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가족 6명을 만났다. 그들이 쓰던 방과 물건을 통해 떠난 이들의 세상을 살펴봤다. 서른한 살 박현진씨와 정주희씨, 대학생 박가영씨와 최민석씨, 열여섯 살 이재현 군, 스물여덟 청년 조경철씨. 이들의 시간은 여전히 지난해 10월에 머물러 있다. (※희생자들의 나이는 지난해 기준으로 표기했다.)

오로라 조명이 켜진 조경철씨의 방. ⓒ시사IN 박미소
오로라 조명이 켜진 조경철씨의 방. ⓒ시사IN 박미소

우주의 별빛으로 채워진 듯한 조경철씨(28)의 방. 경철씨의 누나 조경미씨는 외출할 때마다 오로라 조명을 켠다. 홀로 남겨져 있을 동생이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해서다. 가족 한 명 한 명, 외롭지 않게 살뜰히 챙겼던 경철씨에게서 배운 태도다. 7남매 중 둘째로 애교도 많았다. 엄마에게 팔베개를 자주 해줬다. 귀찮다며 떨어지라고 해도 계속 엄마 옆을 파고드는 아들이었다. 엄마 박미화씨는 그래서 경철씨를 ‘껌딱지 아들’이라고 불렀다.

분홍색을 좋아했던 조경철씨는 '핑크 왕자'라고 불렸다. 사고 당시 분홍색 후드티를 입었다. 옷에 묻은 검정색 얼룩은 아무리 세탁을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시사IN 박미소

“나보다 어리지만 더 오빠 같았어요.” 경미씨가 일을 그만두려고 할 때, ‘포기하면 누나가 후회할 수 있지 않겠냐’며 누나 마음을 돌린 것도 경철씨다. 그가 남긴 조언처럼 경철씨는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을 살았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시도했다.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게임 제작을 배웠다. 때로는 웹드라마 촬영 보조 일을 했고, 컴퓨터 책상에 앉아 작사를 하기도 했다. 낮에는 카페를 하고 밤에는 와인바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최근 그가 꾼 꿈이었다. 사업이 잘되면 엄마의 노후자금을 마련해줄 거라고 동생들에게 말했다.

조경철씨의 방에 남겨진 사진과 유품들. ⓒ시사IN 박미소
조경철씨의 방에 남겨진 사진과 유품들. ⓒ시사IN 박미소

꿈이 많았던 경철씨의 생일은 5월15일. 이태원 참사 200일 하루 전날이다. 생일날 엄마는 경철씨가 좋아하던 떡볶이와 닭볶음탕을 했다. 요리들로 가득 채운 상에 7남매와 경철씨의 친구들이 둘러앉았다. 그렇게 북적였던 집은 이제 조용하다.

노래 부르기를 즐겼던 조경철씨가 구입한 마이크. 가족들과 노래를 부르고 녹음파일을 만들자고 했다. 한 번도 쓰지 못하고 새것으로 남아 있다. ⓒ시사IN 박미소
노래 부르기를 즐겼던 조경철씨가 구입한 마이크. 가족들과 노래를 부르고 녹음파일을 만들자고 했다. 한 번도 쓰지 못하고 새것으로 남아 있다. ⓒ시사IN 박미소
조경철씨의 책장. 미용사 자격증 관련 책과 용품들, 좋아하던 인형들이 있다. ⓒ시사IN 박미소
조경철씨의 책장. 미용사 자격증 관련 책과 용품들, 좋아하던 인형들이 있다. ⓒ시사IN 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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