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두 건물 사이 좁은 길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스쳐 지나간다. 변한 것은 붉은색 가벽에 붙은 추모 메시지뿐. 200일 남짓 붙어 있던 종이 쪽지들은 빛이 바랬다. 5월16일은 이태원 참사 200일이 되는 날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가족 6명을 만났다. 그들이 쓰던 방과 물건을 통해 떠난 이들의 세상을 살펴봤다. 서른 한 살 박현진씨와 정주희씨, 대학생 박가영씨와 최민석씨, 열여섯 살 이재현 군, 스물여덟 청년 조경철씨. 이들의 시간은 여전히 지난해 10월에 머물러 있다. (※희생자들의 나이는 지난해 기준으로 표기했다.)

“목요일 날 독서모임이 있네. 매주. 또 은진이(현진씨 동생)하고 호캉스를 갔었나 보네. 이런 것도 다 써놨어. 독서모임, 수영, 소설 마감일, 전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박현진씨의 어머니 이옥수씨가 딸의 달력을 보며 말했다. 일정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달력. 엄마는 남겨진 물건들로 떠나간 딸의 일상을 되짚는다.


박현진씨(31)는 ‘글’로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한테 할 얘기가 있으면 항상 글을 써서 화장대 서랍에 넣어뒀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쓴 일기장을 모아보니 한아름 안아도 모자란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7년간 글 125편을 남겼다.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독립출판사를 운영하고 책 두 권을 출간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잔소리만 한 게 너무 미안해.” 시간대별로 할 일을 빼곡히 적은 다이어리가 보여주듯, 현진씨는 하루를 세세하게 쪼개어 썼다. 그래서인지 엄마 말처럼 ‘계속 도전하고, 도전한 걸 끝까지 매듭짓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가능했다. 독서모임, 책 출간, 사진전, 록밴드 보컬, 독립영화 엑스트라, 서핑, 수영, 클라이밍, 영어·일본어·프랑스어·스페인어까지.
아이폰 상자 하나도 잘 버리지 않던 현진씨에게 필요 없는 것은 정리하라고 잔소리를 하던 엄마는, 딸이 쓰던 회색 칫솔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욕실에 남겨두었다.




※이태원 참사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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