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두 건물 사이 좁은 길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스쳐 지나간다. 변한 것은 붉은색 가벽에 붙은 추모 메시지뿐. 200일 남짓 붙어 있던 종이쪽지들은 빛이 바랬다. 5월16일은 이태원 참사 200일이 되는 날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가족 6명을 만났다. 그들이 쓰던 방과 물건을 통해 떠난 이들의 세상을 살펴봤다. 서른한 살 박현진씨와 정주희씨, 대학생 박가영씨와 최민석씨, 열여섯 살 이재현 군, 스물여덟 청년 조경철씨. 이들의 시간은 여전히 지난해 10월에 머물러 있다. (※희생자들의 나이는 지난해 기준으로 표기했다.)
“금이야 옥이야, 불면 날아갈까. 꽉 잡으면 깨질까.” 1.92㎏으로 태어난 민석씨를 키울 때 엄마는 하나만 바랐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라는 것. 이태원 참사 희생자 최민석씨(20)의 어머니 김희정씨는 민석씨가 다섯 살 때부터 아들딸을 혼자 키웠다.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해서 학원을 많이 보냈다. 공부 빼고 안 시켜본 게 없다. 발레, 수영, 바둑, 체스, 음악, 미술, 하모니카, 피아노까지. 그렇게 많은 걸 시켜도 아들은 싫증을 내지 않았다.
민석씨는 ‘중간에 그만두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여덟 살 때, 체육 시간에 신체 활동 평가를 하는데 윗몸일으키기를 54회 했다. 배가 너무 아팠지만, 선생님이 그만하라는 말이 없어서 힘들어도 참고 했다. 색종이 책 한 권을 주면 혼자 힘으로 익히고는, 엄마에게 튤립·카네이션·장수풍뎅이 접는 법을 가르쳐줬다. 대학교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섯 번의 시도 끝에 원하던 간호학과에 들어갔다.
공부도, 사람도 잘 챙기는 아들이었다. 학과에 편입생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살갑게 챙겼다. 어떤 친구가 시무룩해 있으면 웃기려고 마술도 보여주고, 못 추는 춤도 추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래서인지 학과 내에선 인기쟁이로 불렸다. 그런 민석씨가 친구들이 불러도 약속을 절대 안 잡을 때가 있었다. 시험 기간이다.
“공부할 게 너무너무 많고 어려운데, 엄마 나 너무 재밌어.” 기본 간호학, 인체해부학, 간호학 개론 등 책으로 빽빽하게 둘러싸인 책상. 아직 보내지 못한 아들을 앞에 두고, 이젠 그 책상에 엄마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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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형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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