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두 건물 사이 좁은 길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스쳐 지나간다. 변한 것은 붉은색 가벽에 붙은 추모 메시지뿐. 200일 남짓 붙어 있던 종이쪽지들은 빛이 바랬다. 5월16일은 이태원 참사 200일이 되는 날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가족 6명을 만났다. 그들이 쓰던 방과 물건을 통해 떠난 이들의 세상을 살펴봤다. 서른한 살 박현진씨와 정주희씨, 대학생 박가영씨와 최민석씨, 열여섯 살 이재현 군, 스물여덟 청년 조경철씨. 이들의 시간은 여전히 지난해 10월에 머물러 있다. (※희생자들의 나이는 지난해 기준으로 표기했다.)

“재현이가 찾아올 수 있겠다 싶어서, 여기로 이사를 왔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재현 군(16)의 어머니 송해진씨가 말했다. 방 4개 있던 집에서 방 3개 있는 집으로 옮겼다. 2019년에 재현 군과 함께 살던 아파트다. 거실에는 아들이 쓰던 컴퓨터 책상을 그대로 놔뒀다. 재현 군은 이 자리에 앉아서 〈오버워치〉 게임을 했다. 엄마는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아들과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음악 취향이 넓은 재현 군 덕분에 새로 알게 된 노래가 많아졌다.

“좋아하는 것은 4시간이고 5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어요.” 한때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OST 피아노곡을 하루 종일 쳤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파쿠르를 하겠다고 서울에 몇 안 되는 학원을 직접 알아봤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연습을 하다 다쳐 머리를 꿰매기도 했다. 파쿠르는 도심 건물과 건물 사이로 장애물들을 뛰어다니는 스포츠다. 중학생 땐 아빠와 만화 〈슬램덩크〉를 함께 본 후, 강백호 캐릭터를 5시간이고 앉아서 그렸다. ‘뭐 하나에 꽂히면 굉장히 깊게 빠지는 편’이었던 재현 군이 고등학생이 되자 몰두했던 것은 수학이었다.

“방에 들어가서 수학 문제를 풀어도 되는데, 굳이 식탁에 나와서 풀더라고요. 제가 불안해하니까 저를 안심시키려고 제 눈앞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친구 두 명을 이태원 참사로 먼저 떠나보낸 후 한참 힘들어했던 지난해 11월. 기운 내라고 선물 받았던 전복으로 버터구이를 해주자 ‘음~’ 하고 맛있게 먹었다. 아들이 잘 먹던 기억에 엄마는 지난 4월17일 재현이의 생일에도 전복 버터구이를 생일상으로 차려줬다. 그리고 카톡을 남겼다. “재현아 엄마가 낼 저녁에 우리 재현이 생일상 차려줄 테니까 집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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