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2월25일 성탄절, 김원준씨의 큰누나 김선아씨(가명)는 오랜만에 녹사평역 인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12월14일 합동분향소를 설치할 때 김원준씨의 영정 사진을 놓으러 온 이후 첫 방문이었다.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바쁜 일상에도 김씨의 머릿속에서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 너무 고통스럽게 가진 않았는지, 언제까지 이 참사를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지…. 풀리지 않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도 분향소에 오니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고 그는 말했다. “혼자 있으면 동생에게 못 해준 것들이 계속 생각난다. 혹시나 분향소 주변에서 누군가 내 동생에게, 다른 유족들에게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와서 직접 보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낫다.”
성탄절 저녁, 합동분향소 앞에서 진행된 성탄 미사에서 김선아씨의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미사를 진행하자 합동분향소 옆에서 집회 중이던 보수단체 신자유연대 소속 회원들이 노골적으로 미사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미사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크게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고,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제들을 비난했다. 김씨에 따르면, 한 여성은 희생자 영정을 향해 “너희들은 좋겠다. 천국에 갔잖니. 아줌마도 천국에 가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주희씨의 어머니 이효숙씨 역시 이 광경을 목격했다. 천주교 신자인 그에게 이 미사는 의미가 남달랐다. 이씨는 미사 때 딸에게 쓴 편지를 읽으려 했다. 미사 시간에 편지를 읽는다면 하느님을 통해 딸에게 닿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보수단체의 시위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결국 미사 인파가 이태원역 인근 참사 현장으로 이동하고 나서야 이효숙씨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을 수 있었다. 원래 이씨는 크리스마스에 딸 주희씨와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핀란드에 살고 있는 큰딸의 집으로 가 오로라를 보고 성탄절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로 여행은 취소되고, 이씨는 핀란드 대신 주희씨가 숨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 맞은편에 섰다.
생전 마지막 통화에서 딸 주희씨는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며 일을 그만두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씨는 “돈 많이 벌어서 너 결혼할 때 엄마가 금송아지 사줄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것 필요 없으니 엄마 일 그만두고 몸 먼저 챙기라”던 딸의 당부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씨는 사업을 병행하면서도 이틀에 한 번꼴로 녹사평에 와서 추위를 버티며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탄식만 터져 나온 국정조사
분향소를 지키는 유족들은 국정조사가 진행되는 현장에도 빠지지 않고 찾아갔다. 제대로 국정조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다. 12월23일에는 합동분향소 인근에 위치한 용산구청에서 현장조사가 진행됐다. 유족들은 용산구청 지하 2층에 있는 통합관제센터에서 함께 그날의 CCTV 영상들을 살펴봤다.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위) 소속 국회의원들과 용산구청 직원들 간의 질의응답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용산구청 관계자들의 답변은 유족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상황을 제일 잘 알기 마련인 참사 당일 용산구청 당직사령은 ‘그날의 충격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안전업무 담당자인 재난안전과장은 ‘구속영장 청구로 심신이 힘들어서’ 현장조사에 불출석했다. 용산구청은 참사 발생 직후 어떻게 상황을 인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답변하지 못했다. 유승재 용산구 부구청장은 “22시29분에 (소방에서) 당직실에 연락이 온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당직실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보고를 안 했던 것으로 본다. 그 직원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직실 직원을 불러달라고 요청하자, 구청 측은 “해당 직원이 지금 구청에 없다”라고 답했다.
용산구청의 불충분한 대응과 답변에 유족들은 이따금 소리를 치기도 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하는 외침이 유족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용산구청 현장조사가 끝나고 분향소로 돌아온 이종철씨(이지한씨의 아버지)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우리 유가족들도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국조 현장까지) 나왔는데 심신이 힘들어서 못 나왔단다. 재난에 앞서서, 재난을 맞닥뜨려서 스스로 행동한 사람도 하나 없다. 저런 사람들이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걸 꼭 국민들께서 아셨으면 좋겠다.”

12월27일 국회에서 진행된 1차 기관보고 때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날 국회의사당 4층에서 진행된 국정조사 회의실이 협소해 대부분의 유족은 2층에 있는 빈 회의장에서 TV를 통해 국정조사를 지켜봤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질의가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닥터카’ 사용 논란에 집중될 때마다 유족들의 탄식이 터졌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개인정보 문제로 서울시로부터 유가족 연락처를 전달받지 못했다”라고 답하자 유족들은 허탈하다는 듯 웃기도 했다. 몇몇 유족들은 “국정조사가 저렇게 진행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거냐. 올라가서 항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오후 4시쯤 기관보고가 정회되자 유족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국조위 위원들을 직접 만나 제대로 국정조사를 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유족들이 회의장을 나서자마자 국회 직원들이 앞길을 막아섰다. 길을 막는 직원들 앞에서 유족들은 “우리를 제발 내버려두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국회 직원들은 국회청사관리규정 제5조를 인쇄해 가져와서 유족들의 행동이 ‘점거, 농성’에 해당할 수 있다고 고지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층으로 내려와 “유족 여섯 분을 대표로 더 모시고 올라가겠다”라고 중재한 뒤에야 소란이 가라앉았다.
진선미 의원과 함께 올라간 유족들은 다시 한번 회의장 앞에서 국회 직원들에게 가로막혔다. 유족들이 회의장으로 향하는 사이 기관보고가 재개됐기 때문이다. 잠시 뒤, 국조위 위원이 유족을 피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회의장 내부에 있던 유족들의 항의와 여야 위원 사이의 언쟁으로 기관보고가 다시 정회되자 조수진 의원(국민의힘)은 회의장을 나갔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회의실로 향하는 조 의원의 뒤를 이지한씨의 아버지 이종철씨가 쫓았다. 이씨는 조 의원에게 “비겁하게 도망가지 말고 대화를 좀 하자”라며 소리쳤다. 그러나 조 의원은 응답하지 않은 채 법사위 소위원회 회의실로 들어갔고, 이종철씨는 다시 한번 국회 직원들에게 가로막혔다. 함께 조 의원을 쫓아간 한 유족은 회의실 앞에서 “국회 벽이 이렇게 높았냐. 그러니까 이렇게 귀 닫고 눈 감고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파행된 국정조사를 지켜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유족들은 다시 녹사평 합동분향소로 돌아왔다. 함께 식사를 하며 조금이라도 더 먹으라고, 먹어야 힘내서 버틸 수 있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국정조사를 현장에서 지켜본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에게 송은지씨 아버지 송후봉씨는 “감정을 잘 추슬러야 한다. 그래야 오래도록 똑똑히 지켜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요”
그날 밤 합동분향소에 오랜만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김연희씨의 아버지 김상민씨와 손님들 사이에서 들려온 웃음이었다. 국정조사를 참관하기 위해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김씨를 만나러 딸 김연희씨의 직장 동료들이 찾아왔다. 아버지 김씨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딸의 어릴 적 사진을 보여주자 직장 동료들이 웃었다. 한참 사진을 보며 웃던 그들에게 김상민씨가 말했다. “건강이 최고예요. 돈 못 벌어도 상관없어요. 자신 몸을 건강하게 지키는 게 부모에게 제일 효도하는 거예요. 위험한 것들 항상 조심하세요.” 그 말을 들은 한 직장 동료가 말했다. “며칠 전에도 연희 생각이 나서 한 시간 동안 울었어요. 저희도 이렇게 힘든데, 부모님께서는 얼마나 힘드실까요. 이제 저희를 서울에 사는 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김씨는 딸의 직장 동료들과 함께 다시 한번 분향을 하고, 합동분향소를 떠나는 이들을 배웅했다. 홀로 남은 김씨가 멀리서 합동분향소를 지켜보며 말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두고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요. 유족들이 덜덜 떨며 분향소를 지키는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거예요.”
12월28일 아침, 서울 서초구에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건물에서 ‘추모 물품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재’가 열렸다. 일주일 전 유족들은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에 놓였던 추모 물품을 정리해 민변 사무실에 임시로 맡겼다. 유족들은 시든 국화를 태우려 했으나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불교식 재를 치른 후 치악산에 있는 사찰 인근에 묻기로 결정했다. 재를 앞두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종철씨가 국민들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국민들께서 저희의 슬픔에 공감해주시며 주신 물품들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까지 진행된 국정조사는 저희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어디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들의 말씀 한마디가 저희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이태원 참사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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