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아 설명을 듣는 우상호 국조위 위원장(가운데)과 의원들.ⓒ국회사진취재단

지난해 11월24일 시작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여야가 국정조사 기간을 열흘 연장하기로 합의한 1월5일까지 현장조사와 기관보고가 두 번씩, 그리고 청문회가 한 번 진행됐다. 남은 것은 두 차례 청문회와 전문가 재발방지 대책 공청회, 결과보고서 채택이다. 진통 끝에 출범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위)는 그동안 어떤 소득을 거뒀을까. 40여 일간 진행된 국정조사의 주요 쟁점을 정리했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는 참사와 관련 있는 기관 책임자들이 출석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때로 증언이 엇갈리거나, 각 기관에서 제출한 자료가 상반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참사 이전 기동대 요청 여부에 대해 서로 다른 말을 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진 진실 공방이다. 이임재 전 서장은 참사 이전 인파 관리를 위해 서울경찰청에 경비기동대(기동대)를 두 차례 이상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광호 청장은 교통기동대 1개 대대(정원 20명) 이외에 경력 요청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김 청장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1월25일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의 발언 말고는 기동대 요청 자료나 진술을 찾을 수 없었다고 브리핑했다. 이 전 서장이 지시를 내렸다고 지목한 정현욱 용산경찰서 112운영지원팀장 역시 기동대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참사 이전인 지난해 10월27일 용산경찰서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제시하며 꼬리 자르기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해당 보도자료는 “교통 등 관련 기능에 추가로 경찰기동대를 지원받아 총 200여 명 이상을 이태원 현장에 배치”할 것임을 명시했다. 문서 담당자는 청문회에서 이임재 전 서장의 기동대 요청 지시를 부인한 정현욱 팀장이었다. YTN이 지난해 11월4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기동대를) 보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러면 조금이라도 도와줄까 싶어 보도자료에 ‘경찰기동대 투입’을 못 박았다”라고 말했다. 인터뷰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정 팀장은 “제가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서울시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명단에 대한 증언이 엇갈렸다. 1차 기관보고에서 이상민 장관은 서울시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며 행안부에 유가족 명단을 넘겨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참사 이후 유족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왜 제공하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 장관은 지난해 11월1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행안부의 유가족 명단 보유 여부를 추궁하는 의원들에게 “국무위원이 하는 말을 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자꾸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27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참석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시사IN 이명익

반면 참사 직후 유가족 지원을 담당한 서울시의 말은 달랐다. 2차 기관조사에서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유가족 연락처, 사망자 현황자료를 정리해 행안부에 공유했다. 10월31일부터 세 번에 걸쳐서 자료를 제공했다”라고 말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김 팀장의 발언은 사실로 확인됐다. 이메일 전송 내역에 따르면 서울시 안전총괄과는 지난해 10월31일, 11월1일, 11월2일 세 차례에 걸쳐 행안부에 유가족 연락처가 포함된 희생자 명단을 보냈다. 세 번째 이메일의 경우 발신 다음 날인 11월3일 21시께 행안부에서 메일을 열어본 것도 확인됐다.

유가족 명단 “못 받았다” “넘겼다”

서울시는 유가족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메일에 첨부한 문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공개한 문서 양식에 따르면 세 문서 모두 ‘유가족 연락 여부’와 ‘유가족 연락처’를 포함하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당시 보낸 문서에 유가족 연락처가 전부 적혀 있진 않았지만, 연락처가 기록되지 않은 유족이 많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참사 사실을 최초로 인지한 시각에 대해서 용산구청과 119 상황실은 모순된 답변을 내놓았다. 용산구청은 10월29일 22시53분 행정안전부로부터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전달받아 최초 인지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용산구청은 이미 22시29분 119 상황실로부터 참사 사실을 전파받았다. 119 상황실 관계자가 “핼러윈 축제 때문에 인파가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압사당하겠다는 신고가”라고 말하자 전화를 받은 용산구청 상황실 관계자는 “네, 맞아요. 이태원역 해밀톤 말씀하시는 거죠?”라고 대답했다. 심지어 119 상황실에서 해밀톤호텔을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용산구청 상황실은 이미 상황을 인지한 듯 “해밀톤”이라며 구체적 위치를 언급했다. 용 의원이 최초 인지 시점을 다시 묻자 참사 당일 당직사령이었던 조원재 용산구청 주무관은 “당직실에는 다른 당직자와 제가 있었다. 저는 통화한 적이 없고, 다른 당직자분은 그런 내용으로 통화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라고 답했다.

기관보고와 청문회에서 국조위 의원들은 각 기관의 책임자들에게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참사를 예방하지 못한 배경과 구조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하지 못한 이유였다.

참사 예방 실패와 관련해 최대 쟁점이 된 것은 서울경찰청이 기동대를 배치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기동대 배치 권한을 가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핼러윈 축제와 관련해 인파 밀집 안전사고 위험이 제기된 적이 없었고, 그로 인해 참사 당일 이태원 지역에 인파 관리 목적으로 기동대를 배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이임재 전 용산서장이 참사 당일 오전 ‘전날 대비가 잘됐다’라고 보고했기에 더욱더 위험을 인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경찰이 인파 사고 위험을 인식한 바 있다고 반박했다. 장 의원은 그 근거로 용산경찰서의 ‘2020년 핼러윈데이 종합치안대책’ 문서를 들었다. 해당 문서는 “인구 밀집으로 인한 압사 및 추락 등 안전사고 상황 대비”가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실제로 같은 문서의 경력 운영 현황에 따르면 2020년 핼러윈 기간인 10월30일 금요일과 10월31일 토요일에는 각 70명의 기동대가 배치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청장은 2020년에는 코로나 방역을 위해 기동대가 배치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야는 참사 직후 구조가 원활하지 못했던 이유를 서로 다른 기관에서 찾았다. 야당 의원들은 유관기관 사이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한 혼란을 주로 지적했다. 각 기관 사이 무전 기록 등에 따르면 필요한 인력 및 자원이 제때 공급되지 않고, 기관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현장에서 참사에 직접 대응한 인원들이 답답함을 호소했다. 참사 당일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대원 중 한 명인 유해진 용산소방서 현장대응단 팀원은 1차 청문회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외로웠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정부 컨트롤타워에 혼란의 책임을 물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은 대규모 재난의 대응·복구 등에 관한 사항을 총괄·조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둔다고 명시해놓았다. 이태원 참사 중대본은 참사로부터 4시간이 넘게 흐른 지난해 10월30일 새벽 2시30분쯤에 가동됐다. 이를 두고 야당 의원들은 중대본이 총괄 및 조정 업무를 하지 않아 기관 간 공조 체계 마비를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대통령 훈령인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에 ‘국가위기관리의 컨트롤타워’로 명시된 국가안보실과 대통령비서실에도 비슷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행안부와 대통령실이 개별 기관 사이 불통과 혼란을 막지 못해 참사의 규모를 키웠다고 비판한 것이다.

“외로웠다”는 현장 소방대원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긴급구조가 중대본의 역할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 장관 역시 그 근거로 재난안전법을 들었다. 재난안전법은 소방청 및 시도 소방본부에 긴급구조통제단을 두고, 이 통제단이 재난 현장에서 지휘 및 통제를 담당한다고 명시한다. 이 장관은 긴급구조 상황에 중대본이 직접 지휘나 감독을 맡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중대본의 역할은 긴급구조가 끝난 이후 수습 및 복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월4일 이태원 참사 국조위 청문회에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여당 의원들은 주로 용산경찰서장과 용산소방서장의 초동 대처 실패를 지적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 대해선 참사를 최초로 인지한 시점이 논란이 됐다. 이 전 서장은 이태원 참사를 사고 발생 45분 후인 10월29일 23시께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22시32분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과 전화가 연결됐지만 통신 불량으로 통화에 실패하고, 23시경 무전 내용을 들어 이태원 참사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서장은 “상황을 인지했다면 당연히 무전으로 지시하든가 현장에 뛰어가 지휘를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여당 의원들은 이임재 전 서장이 위증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찰 무전 기록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은 참사 당일 22시36분, 가용 경찰력을 모두 이태원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이 전 서장이 주장한 참사 인지 시점보다 24분 전이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 전 서장의 최초 무전 지시(22시36분)와 최초 인지 주장 시점(23시) 사이에도 ‘구급차 여러 대 지원 요청’ ‘압사 관련 우선 조치’ 등의 단어가 무전망에 등장한다며 무전을 계속 듣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 전 서장이 밤 11시까지 참사를 인지하지 못한 게 납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여당 의원들은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의 초동 대처도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참사 당일 22시29분 현장에 도착한 최성범 서장이 14분 뒤인 22시43분에 소방 1단계를 발령한 것이 너무 늦었으며, 처음부터 바로 소방 2단계를 발령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 서장이 이미 사망한 희생자를 가장 가까운 병원인 순천향대병원으로 보내 응급환자가 제때 의료 처치를 받지 못했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 서장은 CPR 과정에서 옷이 벗겨진 희생자들을 행인들이 촬영하고 있었고 이것이 통제되지 않아 사망자 이송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한 사망자는 응급실이 아닌 영안실로 곧바로 향했으며, 그 시점에는 구급차가 충분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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