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김흥구

2022년 12월14일, 이태원 참사 발생지에서 약 400m 떨어진 녹사평역 광장에 흰 천막이 설치됐다. 참사가 발생한 지 47일 만에 합동분향소가 다시 세워졌다. 참사 직후 정부가 운영한 분향소와 달리, 유족들이 직접 세운 분향소에는 영정과 위패가 놓였다. 유족들이 머물며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임시 텐트도 분향소 한편에 설치됐다. 그동안 유족들이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제대로 된 추모 공간과 유족들이 만날 수 있는 물리적인 거점이 드디어 마련된 것이다.

마침 서울 거리에는 한파가 찾아왔다. 한낮에도 영하를 밑도는 추운 날씨가 계속됐지만 유족들은 분향소를 지키며 직접 추모객을 맞이했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에게 국화꽃을 나누어주고, 진실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서명에 동참해달라고 부탁했다. 분향소 인근을 지나치던 시민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영정 앞에 국화꽃을 내려놓으며 묵념했다.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부터 회사원, 노인과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이 분향소를 찾았다. 몇몇 시민들은 유족의 손을 잡거나 유족을 안으며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조의금을 내고자 하는 시민들도 더러 있었지만 유가족들은 마음만 받겠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지난 12월19일 조경철씨의 어머니 박미화씨는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이어지는 식당 야간근무를 끝내고 바로 분향소로 향했다. 일터와 분향소를 오가느라 하루 2~3시간밖에 못 자고 있음에도 그는 거의 매일 분향소를 찾았다. 점심 무렵, 추모객들에게 서명을 부탁하던 박미화씨는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구입해 제단에 놓았다. 커피를 좋아하던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박씨는 “아들이 커피를 좋아해서, 3년 뒤에 동생하고 같이 카페를 차릴 계획까지 세워놨었다”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강추위에 커피는 통째로 얼어버렸다.

유족들은 함께 모여 소식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했다. 때로는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12월20일 박현진씨의 어머니 이옥수씨는 분향소 인근에 상주하고 있는 경찰을 향해 “애들은 다 죽여놓고, 이제 와서 누굴 지키고 있는 것이냐”라며 항변했다. 49재 당시에도 경찰들을 향해 비슷한 말을 외쳤다는 이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을 보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키워놓으면 죽이고, 이제 꽃필 만하면 죽이는 이런 나라에서 누가 애를 키우겠냐. 누구 하나 그곳을 통제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분향소에 찾아온 이들 중엔 불청객들도 있었다. 예고 없이 분향소를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도 그중 하나였다. 지난 12월19일 오후 2시20분께 갑자기 분향소 주변이 분주해졌다. 원래 4~5명가량 상주하던 경찰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유족들은 무슨 일이 있느냐며 서로 물었다. 그러던 중 한 유족이 “한덕수 총리가 온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추모객을 맞이하던 유족에게 경찰이 “총리께서 오셨냐”라고 묻는 바람에 알게 된 정보였다.

지난 12월19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 앞을 막아서고 있다. ⓒ시사IN 주하은

“분향을 하려고 했더니 못하게 하시네요”

이번엔 유족들이 분주해졌다. 유족들은 총리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총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급히 의논하기 시작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한덕수 국무총리가 걸어왔다. 입장을 채 정하지 못한 유족들은 일단 두 팔을 벌려 한덕수 국무총리의 앞길을 막았다. 유족들은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가지고 와달라. 저희는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아니면 받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한 총리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윽고 다른 유족들이 “(사과가 없으면) 돌아가세요” “정중히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자 한덕수 총리는 곧바로 “잘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남긴 채 분향소를 떠났다. 한 총리가 합동분향소 앞에 머문 시간은 약 30초에 불과했다. 한덕수 총리는 합동분향소 맞은편에 주차돼 있는 차량으로 이동하며 악수를 청하는 한 시민에게 “분향을 좀 하려고 했더니 못하게 하시네요”라며 유족을 탓하는 듯한 말도 남겼다.

한 총리가 떠난 자리에서 유족들은 울분을 토했다. 사과도 하지 못할 것이면 왜 찾아왔는지, ‘유가족이 분향을 거절했다’는 말을 남기기 위해 찾아온 것은 아닌지 의문을 표했다. 한 총리 방문 당시 분향소 현장을 지키고 있던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잠시라도 조문 예의를 표할 줄 알았는데 바로 등 돌려서 떠났다. 사과할 의지가 없이 형식적으로 들른 것 같아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녹사평역 인근에 미리 집회 신고를 해둔 보수단체 ‘신자유연대’ 회원들은 이따금씩 분향소를 지키는 유족들을 도발했다. 확성기를 이용해 “49재까지만 분향소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왜 우리가 집회 신고한 곳에 분향소를 차리냐”라고 외쳤다. 유족들은 “도발에 넘어가는 게 저들이 바라는 것이다”라며 서로를 진정시켰다.

12월19일 오후 4시30분께 결국 사달이 났다. 자신을 이태원 인근 주민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이 “어딜 이태원에서 시체팔이를 하느냐. 대통령이 인간답게 대해주니까 상투 끝까지 올라서려고 ××한다”라고 유족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 과정에서 “탤런트 ××”라며 배우였던 이지한씨를 지칭해 모욕하기도 했다. 유족들과 시민대책위 자원봉사자들의 거센 항의에도 이 여성은 막말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이씨의 어머니 조미은씨가 호흡곤란으로 구급차에 실려가는 일도 벌어졌다.

분향소 현장에서 유족들과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경찰에 왜 2차 가해를 막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경찰은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면 경찰이 바로 저지할 것이다. (집회의) 폴리스라인 안쪽에서 하는 말을 막을 방법은 없다”라며 사실상 취할 수 있는 조처가 없다고 답했다.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은 “막말을 시작하면 최소한 말소리가 안 들리는 곳까지만이라도 이동시켜달라”고 경찰에 부탁했다.

유족들은 분향소를 지키면서도 기자회견과 간담회 등으로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12월20일 오후에는 국회에서 국민의힘 소속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위) 위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유족들은 12월1일 국조위 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지만, 이 자리에 국민의힘 위원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후 유가족협의회가 다시금 국민의힘에 공식적으로 면담을 요청해 간담회가 성사됐다. 이날 간담회에서 유족들은 특히 2차 가해 방지책을 강하게 요구했다. 전날 수차례 분향소에서 모욕적인 발언에 시달린 탓이었다. 유가족협의회 이종철 대표는 “녹사평역에 경찰은 없다. 서 있기만 하고, 확성기로 (막말을) 떠들어대는데 말리지도 않는다”라고 호소했다.

이종철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지난 12월20일 열린 국민의힘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간담회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를 보며 발언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간담회를 마치고 국회에서 녹사평 합동분향소로 돌아오는 길, 이민아씨의 아버지 이종관씨와 어머니 이진희씨는 분통을 터트렸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을 지나던 중이었다. “49재에 우리는 추위에 떨면서 추모제 하는데 대통령은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하러 갔다고 들었다. 일부러 염장을 지르는 건가 생각했다. 추모제에 못 온다면 적어도 가만히라도 있었어야 하지 않나.” 경기도 여주시에 거주하는 이종관씨는 아침까지 당직 근무를 하고 식사도 거른 채 국회로 향한 터였다. 피곤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씨는 “저는 서울에 살지 않아서 매일 못 오니까, 이런 날이라도 제가 지켜야죠”라고 말했다.

이민아씨의 어머니 이진희씨는 분향소에 도착해 한참 동안 딸의 영정을 바라봤다. 뒤돌아 가려가다도, 다른 영정을 보다가도 다시금 시선은 딸에게로 향했다. “너무 예뻐서 계속 보고 있었어요. 오늘은 안 울 줄 알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예쁜 아이들이 세상을 떠났나 싶어서 결국 눈물이 났네요.” 이태원 참사 이후 이진희씨는 건강이 악화됐다. 병원 두 곳을 다니고 있다. 병원에서는 이씨에게 입원을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이씨는 “오늘처럼 국회의원이라도 만나면 우리 뜻을 전달해야 하는데, 입원하면 아예 못 오니까 입원을 못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정확히 따져 물어야 한다”

12월20일 저녁 8시께 분향소 인근 식당에서 몇몇 유족이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같은 테이블에 모인 세 사람 모두 그날 첫 끼니였다. 평소에는 배가 고프지 않아 밥을 챙겨먹지 않게 된다고 유족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식사를 기다리며 유족들은 떠나보낸 자녀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자녀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 꿈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었는지 이야기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최민석씨의 어머니 김희정씨는 다른 유족들에게 “우리부터 아이들의 죽음을 직면해야 한다. 울어도, 소리 질러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 앞으론 우리가 정확히 따져 물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함께 마음을 다잡았다.

어렵게 다잡은 김희정씨의 마음은 다음 날인 12월21일 바로 무너졌다. 이날 국조위는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 해밀톤호텔 골목과 이태원파출소 현장조사를 나왔다. 국조위 위원들의 동선을 따라 유족들도 함께 움직였다. 국조위 위원들이 이태원파출소 안으로 들어가자 김희정씨는 파출소 안으로 함께 들어가려 시도했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를 제지하고 파출소 문을 걸어 잠갔다. 그가 “들여보내 달라”며 소리를 질렀고, 파출소 안에 있던 국조위 위원들이 그 목소리에 반응하고 나서야 파출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김씨는 “조사는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의 말을 모두 들어야 한다. 유족은 피해자인 동시에 그날 이태원에 도착해 현장 상황을 지켜본 목격자이기도 하다. 그런 유족을 배제하고 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들이 지난 12월21일 이태원파출소를 찾아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12월21일 오후 3시께 유족 10여 명은 다시금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에 놓여 있는 추모 물품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를 중심으로 인근 상인들도 동참했다. 시든 국화꽃은 폐기하고, 메시지와 물품들은 따로 모아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정리에 앞서 최유진씨의 아버지 최정주씨가 유가족을 대표해 상인들에게 “열심히 구조활동 해주신 것 잘 알고 있다. 우리 아이들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더 많이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라고 답했다.

수많은 꽃과 포스트잇을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몇몇 유족은 물품들을 정리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추모객들이 놓고 간 추모 물품들은 예상보다 많았다. 연합회 측은 물품을 수거하기 위해 종이상자 60개를 준비했지만 모자랐다. 박스가 없어서 한편에 모으기 시작한 국화는 사람 키 높이까지 쌓였다. 유족과 상인들은 참사가 일어난 골목에 붙어 있는 추모 메시지들은 당분간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이 치워질 무렵, 또 다른 유족들은 한국프레스센터로 향했다. 참사 이후의 소식을 외국으로도 전달하기 위해 유가족협의회는 외신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국조위 현장조사를 따라가고, 이후 분향소를 지키다 다시 길을 나서는 최민석씨의 어머니 김희정씨가 말했다. “저는 인정도 빠르고 체념도 빨라요.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민석이를 되살릴 수 없다는 것 알아요. 그래도 진상조사만은 포기할 수 없어요. 사과도 이젠 필요 없어요. 제대로 된 조사가 제 최고의 바람이에요.”

※이태원 참사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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