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다씨(가명)를 비롯한 시민 30여 명은 자원봉사팀을 꾸려 두 달 가까이 이태원 참사 현장의 추모공간을 돌봐오고 있다. ⓒ김흥구

〈시사IN〉이 선정한 2022년 ‘올해의 인물’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2022년 10월29일, 158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는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자와 그 주변 사람들, 일반 시민들의 삶까지 뒤흔들었다. 대형 참사 앞에서 정치와 관료제는 무능했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것인지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참사를 추모하는 이들의 아픔은 물론이고 해결해야 할 질문과 과제가 여전히 산적한 상태로 2023년을 맞이한다. 굳건한 연대와 온전한 추모가 이어져야 한다는 뜻을 담아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강바다씨(가명·사진)는 참사 발생 직후부터 이태원 추모공간을 돌보는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대부분을 추모공간에서 보낸다. 강바다 자원봉사팀장은 12월12일 〈시사IN〉과 인터뷰할 때도 이태원 참사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 바로 맞은편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골목을 지켜볼 수 있어서다.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강 팀장의 시선은 연신 골목을 향하고 있었다.

흐트러진 국화꽃을 정리하고, 비나 바람에 훼손될 수 있는 포스트잇은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긴다. 화분에 물을 주고 국화꽃이 빨리 시들지 않게끔 하는 것도 강 팀장과 자원봉사팀의 몫이다. 추모객이 적은 밤과 새벽에 골목을 치운다. 추모 물품을 발로 차고 헤집는 사람들을 목격한 후론 밤사이 취객들이 추모공간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불침번을 선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이태원에 남아 있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참사 당일 일찍 잠들어, 다음 날인 10월30일 아침 출장지 경북 영양에서 참사 소식을 접했다. 무작정 서울 이태원으로 올라왔다. 한참을 골목 주변에서 맴돌다 참사 현장을 쓸쓸하고 삭막하게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팀장의 개인 작업실이 근처에 있었다. 작업실에서 종이와 국화를 챙겨 폴리스라인 바깥쪽 까만 벽에 붙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등 뒤로 취재진이 몰렸다. 얼른 빠져나가야겠다는 마음에 서둘러 추모글을 남겼다. “謹弔 좋은 세상 가셔서 못다 한 꿈 이룩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다 담지 못했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취재진을 피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이때 강 팀장이 붙인 꽃이 ‘〈시사IN〉 제791호 표지’에 실렸다는 사실은 강 팀장도, 〈시사IN〉 취재진도 인터뷰 도중에 알게 됐다.

강 팀장은 꽃과 추모글을 붙인 뒤에도 참사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그 뒤로 이태원역 주변에 추모객들이 두고 간 국화꽃이 하나둘 쌓였다. 쓰러지고 사람들의 발에 차이는 꽃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하루, 이틀, 사흘 조용히 국화를 정리했다. 문구점에서 포스트잇과 볼펜을 사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두기도 했다.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또 다른 사람이 남긴 추모글을 읽으면, 이태원을 찾은 사람들이 조금은 위로를 받을 것 같았다.

참사가 발생하고 나흘째가 되는 11월2일, 그는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에 ‘추모공간 자원봉사’를 모집한다는 안내문을 써 붙였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 만큼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강 팀장의 직업은 오지 여행가다. 계획대로라면 11월3일 인도네시아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자원봉사팀이 생기고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나타나면, 다시 여행가로 살아가는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다. 자원봉사팀이 꾸려졌지만 정신없이 추모공간을 돌보는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어느덧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그사이 그의 마음에는 이곳에 남은 추모의 마음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이 남았다.

이태원 참사 49재가 다가오는 12월 중순 현재까지 시민 30여 명이 자원봉사팀에 합류해 함께 추모공간을 돌봤다. 구성원은 20~60대까지 다양하다. 서울 영등포·서초구, 멀리서는 경기 용인·구리·양주시에서도 추모공간을 돌보기 위해 온다. 자원봉사를 하러 온 사람 중엔 희생자의 친구인 20대 청년도 있었다. 이 청년은 한동안 힘들 때면 밤마다 골목길에 나와 추모공간을 지켰다. 추모객들이 두고 간 국화와 손 글씨가 사라질까 걱정돼서다.

자원봉사팀은 비나 눈 소식이 들리면 마음이 초조하다. 오전 9시 비 예보가 있었던 어느 날, 강 팀장은 추모 물품이 젖지 않도록 당일 새벽쯤 비닐을 씌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자원봉사자가 전날 오후 10시가 되자 지금부터 비닐을 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오후 10시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꼬박 4시간 동안 두 사람은 빈틈없이 비닐을 씌웠다. 비는 그날 새벽 4시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강 팀장은 ‘살렸다’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종이가 물 먹으면 이 기록을 다 잃어버리는 거다. 그 친구한테 정말 감사해서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참사 직후엔 매일 추모공간을 찾아오던 추모객들이 많았다. 지금은 짧게 틈을 내어 들르고 가는 시민들이 대부분이다. 추모객 중엔 골목에 선뜻 들어오지 못하고, 골목 끝·모서리·건너편에서 바라만 보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쪽지를 보고 유족이라고 짐작했다. 강 팀장은 그 쪽지가 밟히거나 묻히지 않도록 꼼꼼하게 다시 붙여뒀다.

참사 이후 열흘쯤 지나자 해밀톤호텔에서 로비 일부를 자원봉사팀의 휴식 공간으로 제공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이 공간에서 쉬거나 떨어진 포스트잇을 정리해 붙이는 등의 작업을 한다. 강 팀장은 이곳에서 잠깐잠깐 쉰다.

몸이 아프고 피곤한 것은 견딜 수 있다. 그보다 추모공간을 지키기 위해 실랑이를 해야 하는 게 더 힘들다. 강 팀장은 용산구청 직원, 해밀톤호텔 관계자들이 ‘(추모 물품을) 언제 치울 거냐’라고 물을 때마다 “내가 왜 (추모 물품을) 치우는 사람이 됐냐”라고 되묻는다고 했다. 강 팀장이 잠을 줄여가며 지키려 한 추모 물품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행위’ 자체다. 이들에겐 그저 치워야 할 ‘행정 대상’처럼 취급받는 게 싫었다. 2주 전엔 추모 물품을 건드리는 취객을 말리다 넘어져 휴대전화 액정이 깨지고 무릎을 다쳤다.

매일 만나던 한 추모객은 강 팀장이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당신이 하는 일 다 보고 있다. 잘하고 있다. 당신 일 다른 사람들이 다 몰라도 희생자들이 알고 있다”라며 위로했다. 그 말이 마음에 쏙 들어왔다. 지칠 때마다 이 문장을 곱씹었다.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의 마음이 흩어지고 사라지지 않도록, 추모공간을 지켰다.

12월21일 이태원역 인근에 마련된 참사 추모공간이 정리됐다.ⓒ김흥구

12월22일 자원봉사팀은 10월30일 이후 53일간의 봉사활동을 공식적으로 종료했다. 강 팀장은 공식 종료를 결정한 뒤 아쉬운 마음에 팀원들과 함께 울었다며 "유가족협의회가 결성됐고 49재도 지났다. 지역 상권 회복과 국민화합을 기대하면서 모든 자원봉사 활동을 마친다"라고 말했다.

추모품은 전날인 12월2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로 옮겨진 뒤, 유족 측 법률 대응을 맡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 임시 보관 중이다. 유족들은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을 대체할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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