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뉴욕에서 활동 중인 디모트(DMORT)의 모습. ⓒ미국 HHS 산하 ASPR 제공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에도 국가는 없었다”라고 말한다. 구조와 응급처치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다. 희생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시신과 유류품을 인계받는 과정은 유가족에 더 큰 상실감을 안겼다. 유가족들은 시신을 찾느라 병원과 행정기관을 하염없이 돌아다녀야 했다. 시신이 경기도 등 각지로 흩어진 과정은 유가족들로 하여금 ‘유족을 모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 경찰이 배분한 유류품에는 타인의 물품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흔했다. 한 유족은 1월16일 기자를 만나 ‘자녀의 유류품 중 제대로 돌아온 것이 티셔츠 한 장밖에 없다’며 한탄했다.

지난 1월10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전문가 공청회에서 대안이 제시됐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 운영하는 DMORT(Disaster Mortuary Operational Response Team, 재난영안실 운영대응팀·디모트) 제도를 한국에도 도입하자는 의견이었다.

이미 시행 중인 비슷한 제도가 있다. 재난 발생 직후 현장에서 부상자에 대한 의료적 지원을 담당하는 DMAT(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 재해의료지원팀·디맷)이다. 디맷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시행됐다. 그러나 디맷은 생존해 있는 이들에 대한 조치에 국한된다. 이와 달리 디모트는 현장에서 사망한 이들을 수습하고 신원을 확인한 뒤 이를 유족에게 인계하는 업무를 총괄한다.

미국에서 디모트가 운영되는 방식을 보면 이태원 참사 직후 정부가 보였던 대처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디모트는 대규모 재난 현장 인근에 이동형 영안실을 마련한다. 그리고 가족이 시신을 인수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이곳에서 마무리된다. 재난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할 때부터 유족에게 전달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디모트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모트에는 법의관, 검시관, 병리학자, 장례 담당 직원 등이 포함돼 있다. 각 전문가들은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공간을 배당받으며 엑스레이 촬영, 검시 등이 이동형 영안실 안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희생자의 시신이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유가족이 희생자를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대형 재난이 발생할지라도 희생자의 시신 인도는 병원에 의존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동시에 많은 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면 인근 병원의 영안실에서 이들을 전부 수용할 수 없게 되고, 전국 각지로 희생자들이 흩어진다. 실제로 10월30일 새벽, 참사 현장에서 가까운 서울시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30일 구급대원들이 희생자들을 임시 영안소로 옮기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디모트 제도 가운데 ‘임시 영안소 설치’는 한국에서도 시행 중인 요소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당시 현행 임시 영안소는 한계를 드러냈다. 경찰청 매뉴얼에 따르면 재난 희생자 수가 인근 병원 영안실의 수용 인원을 초과할 경우 현장 인근에 임시 영안소를 설치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직후에도 희생자 40여 명이 임시 영안소로 지정된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에 이송됐다. 그러나 미국 디모트의 이동형 영안실과 달리 임시 영안소에는 일시적으로 시신을 안치할 수 있는 수준의 시설만 갖춰져 있다. 시신 부패를 막기 위한 냉장 컨테이너, 시신 보관 선반, 시신 테이블이 시설의 전부다. 임시 영안소에 희생자를 잠시 안치하더라도 결국에는 시신을 각 병원의 영안실로 옮겨야 한다.

현행 희생자 지원 절차에 따르면 임시 영안소에서도 검시가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국정조사 청문회 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원효로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영안소에서는 신원 확인을 위한 지문 또는 DNA 채취만 진행됐다. 검시는 희생자들이 각 병원에 분산된 뒤에야 이뤄졌다.

한국은 갖춰진 시스템도 활용하지 않아

디모트와 유사한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8년 12월 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공동으로 K-DVI(Korea Disaster Victim Identification, 한국형 재난 희생자 신원확인체계)를 출범시켰다. 경찰청은 “대형 재난 사례에서 준비 체계 미흡 또는 임기응변식 대응에 대한 반성적 고려로 DVI 체계 필요성을 검토했다”라고 그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의 경우 K-DVI가 가동되지 않았다. ‘사망자가 20명 이상인 대형 재난’이라는 자체 출동 기준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정조사 1차 기관보고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은 K-DVI에 대해 “정확히 잘 모르겠다”라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K-DVI가 활용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경찰청은 “서울경찰청에서 과학수사관을 비상소집하여 신원확인 절차를 진행하였으므로 DVI 프로토콜을 포함해 진행한 것이라 볼 수 있다”라고 해명했다. 이미 갖춰진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고도 ‘그것까지 다 고려해서 했다’는 해명을 한 것이다.

1월10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전문가 공청회에서 디모트 도입의 필요성을 언급한 김장한 대한법의학회 회장. ⓒ시사IN 신선영

대한법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장한 울산대학교 교수는 경찰의 해명에 대해 “DVI의 업무를 희생자의 신원확인에만 한정해서 이해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좁은 의미로 한정해보면 이태원 참사에서 경찰의 신원확인이 미흡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찰은 참사 발생 40시간 이후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희생자에 대해 신원확인을 마쳤다. 시신의 상태가 온전해 비교적 신원확인이 간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어진 검시 과정에서 구체적 사인 등이 규명되지 않은 점이 한계로 남는다. 참사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유가족 기자회견에서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는 “사망 시간도 추정이고 사인도 미상이다. 어떻게 부모가 내 자식이 죽었는데 사인도 시간도 장소도 알지 못한 채 떠나보내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김장한 교수는 “K-DVI가 가동되었다면 민간 의사가 아닌 법의학팀이 검시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됐다면 사인과 사망 시각 등을 기록한 시체검안서 작성이 이루어졌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K-DVI를 포함한 재난 대응체계 자체에서 보완해야 할 점도 있다. 이태원 참사 당시에도 지적됐던 유가족과의 소통 부분이다. 현재는 K-DVI를 비롯한 경찰이 신원확인을, 지자체가 신원확인 통보와 설명을 담당하도록 이원화되어 있다. 문제는 이 사이에서 기관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반면 디모트는 같은 전략준비대응청(ASPR) 아래에서 피해자 정보센터(VIC: Victim Information Center)와 협업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ASPR이 지난해 펴낸 자료에서 3구역(미 연방재난관리청은 미국 전역을 10개 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함) 디모트 지휘관 퍼트리샤 카우프먼은 “유가족 지원 업무는 극도로 중요하며, VIC는 디모트가 하는 모든 일에 참여한다. VIC에서 유족들은 요구사항을 해결할 수 있고, 정기적으로 브리핑을 받아 언론보다 더 빨리 정보를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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