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치인들의 ‘백선엽 영웅 만들기’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백선엽의 ‘가짜 영웅 만들기’를 폭로한 박경석 장군 인터뷰 기사(〈시사IN〉 제668호 기사 “일제 앞잡이가 영웅 되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로 한동안 즐거운 ‘홍역’을 치렀다. 백선엽이 ‘창조된 6·25전쟁 영웅’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놀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대전에 사는 박경석 장군도 보도 후 밀려드는 시민들의 격려 편지와 전화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주로 ‘진정한 군 원로’라는 찬사였다. 그중에는 선배 군인 박경석의 ‘군대 역사 바로잡기’를 응원하는 전·현직 군 장교들도 있었다. 군 장교들은 그 70년 만에 건립된 ‘한강 인도교 희생자 위령비’ 정희상 기자 지난 6월28일 낮, 서울 한강대교 노들섬 남쪽 둔치에서 수십 년 묵은 한을 기리는 비석의 제막식이 열렸다. 1950년 6·25전쟁 개전 사흘 만에 이승만 정부가 자행한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 희생자 800여 명의 고혼을 달래는 위령비였다.위령비 건립을 주관한 것은 서울시였다. 그러나 이 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단체는 평화재향군인회(가칭, 상임공동대표 김기준)다. 평화재향군인회는 2005년 결성되었다. 헌법 전문의 정신에 따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창설한 광복군의 항일 독립정신을 이어받아 조국의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이바지하고 기자들의 시선 - ‘영원한 속죄’ 조형물 정희상 기자 이 주의 논란이육사는 일제강점기 17번이나 투옥되며 독립을 위해 애써온 민족시인이다. 이육사문학관은 그를 기리는 이육사 시문학상을 운영한다. 올해로 17회를 맞이한 이 상이 난데없는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구모룡 평론가가 팔봉비평문학상을 받은 바 있고, 올해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인 이재무 시인이 미당문학상 후보를 두 차례 수락한 적이 있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팔봉 김기진과 미당 서정주는 〈친일반민족인명사전〉에 오른 문인이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는 문학상 운영을 비판하는 김원봉 혈육이 살아온 학살과 탄압의 70년 정희상 기자 서울에서 섬유업에 종사하는 김용건씨(69)는 항일 의열단을 이끈 약산 김원봉의 친조카다. 아버지 김구봉은 약산의 11남매(9남2녀) 중 막내다. 하지만 김용건씨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그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동하던 1950년 7월 초순, 당시 22세로 부산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아버지 김구봉은 경남 밀양의 자택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군경한테 끌려갔다. 그는 세 형 김용봉, 김봉기, 김덕봉과 나란히 붙들렸다. 이렇게 체포된 약산의 네 동생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그대로 산골짜기에 끌려가 집단 총살을 당했다. 6·25전쟁 발발 후 밀양 “일제 앞잡이가 영웅 되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정희상 기자 박경석 장군(88·예비역 육군 준장)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야전에서 두루 거친 노병이다. 한국전에서는 화랑무공훈장을, 베트남전에서는 최고 무공 수훈인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이른바 ‘육사 생도 2기’ 출신이다. 1950년 6월1일 첫 4년제 정규 육군사관학교 생도로 입교했다가 20여 일 만에 6·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임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전장에 투입됐다. 박경석과 함께 포천 전투에 참가한 동기생 330명 중 86명이 초기에 전사했다. 17세의 초급장교였던 박경석도 전투 중에 수류탄 파편에 맞아 몸의 왼편을 크 “적어도 전두환이 말한 것은 거짓이다” 정희상 기자 1980년 5월24일 새벽,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서울 서대문형무소 교수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직후, 셋째 여동생 김정숙의 서울 잠실 자택에 전화벨이 울렸다. 중정 최종대 비서가 비통한 목소리로 “부장님 방금 떠나셨습니다”라고 전했다. 충격을 받고 전화기를 떨어뜨린 김정숙은 자지러지듯 어머니를 불렀다. 김재규 부장의 모친인 권유금 여사는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아들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하늘 아래 있고 싶어 당시 고향 경북 선산에서 올라와 잠실 딸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딸의 외마디 비명과 통곡을 듣고 권 여 40년 만에 공개된 ‘김재규 재판’ 녹음 테이프 정희상 기자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었다.”1979년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10·26 사건 재판 당시 변론을 맡은 안동일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1979년 12월의 1심 4차 공판부터 김재규·박흥주·이기주·김태원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을 맡았다. 안 변호사는 국선이었다.원래 이 재판엔 사선변호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김재규 피고인 등에 대한 1심 재판 과정에서 ‘민주 회복’이라는 10·26 거사의 동기를 부각시키며 맹렬히 재판에 임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합수부장)이 이끌던 보안사령부(보안사)는 김재규 피고인의 가 기자들의 시선 - 극우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정희상 기자 이 주의 인물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로 불리며 국정농단을 일삼은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에게 6월11일 대법원이 징역 18년과 추징금 200억원을 최종 확정했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딸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비를 뇌물로 받고 50여 개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을 강요한 혐의 등으로 2016년 11월 기소됐다. 최서원씨는 최근 “사회주의 숙청보다 더한 보복을 당하고 있다”라고 반발하는 내용의 옥중 회고록을 펴냈지만 3년7개월 만에 나온 대법원 최종 단죄로 무색해졌다.이 주의 의미 여순사건 피해자 눈물은 어느 대통령이 닦아줄까 정희상 기자 “장환봉씨는 좌익도 우익도 아니며 오로지 국가가 혼란스럽던 시기에도 몸과 마음을 바쳐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자 했던 명예로운 철도공무원이었습니다.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고(故) 장환봉씨와 유족께 70여 년이 지나서야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잘못이었음을 선언하며 좀 더 일찍 명예롭게 해드리지 못한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지난 1월20일 오전,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제1형사부 법정. 김정아 부장판사가 한 사형수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내란죄 무죄’를 선고한 뒤 울먹이는 목소리로 논고문을 읽어 내려갔다. 옆자리의 배석판사 두 명이 일어 ‘삼베 장인’의 한 많은 사연 정희상 기자 전남 보성군 복내면 유정리에서 삼베 농사를 짓고 있는 이찬식씨(76)는 스스로를 ‘삼베에 미친 사람’(마광)이라고 부른다. 40년 전부터 삼베 밭 갈고, 씨앗 뿌려 가꾼 뒤 수확해서 실 만들고, 베를 짠다. 그가 이렇게 만든 삼베옷이 ‘보성포’다. 9년 전에는 삼베옷 외에도 삼으로 만든 독특한 종이(삼지)까지 개발했다. 이씨가 만든 삼지는 해외에서 더 인기다. “영국 왕실에서도 가져다 썼고, 일본과 타이완에서도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문화재청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더니 함축성·항염성·방염성이 기존 한지에 비해 우수하다고 알려왔다.”이 전두환의 거짓말, 우리는 알고 있다 정희상 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상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해 시민의 생명을 지킨 공직자가 있었다. 안병하 전남도경 국장이다. 그는 ‘시민들에게 발포하라’는 전두환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했다. 계엄군의 잔혹한 시위 진압에 맞서 시민들을 보호하기도 했다. 그는 결국 명령 불복종으로 해직됐다. 계엄사로 끌려가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1988년 생을 마감했다.5·18 민주화운동 40주기를 맞아 안병하의 이야기가 평전으로 나왔다.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하다 계엄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이재의 작가(5·18재단 비상임연구위원)가 5·18에 대한 나의 기억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나는 광주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다녔다. 5월17일 비상계엄 확대가 내려진 이튿날, 조금 늦게 수업에 들어온 화학 과목 선생님의 충혈된 눈시울을 보았다. 그녀는 출근길 금남로를 지날 때 공수부대가 곤봉과 총검으로 무장한 채 난입해 젊은이로 보이는 사람을 무차별로 찌르고 구타해 끌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며 몸서리쳤다. 제자들에게 하교할 때 절대 금남로를 거쳐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하지 못했다.5월18일부터 광주 시내 곳곳에서 백주 대낮에 자행된 공수부대의 살인 진압은 지켜보는 기자들의 시선 - 최승우씨 정희상 기자 이 주의 인물국회 정문 앞에서 900여 일째 천막 농성을 벌여온 형제복지원 사건 생존 피해자 최승우씨가 5월5일 과거사법 처리를 촉구하며 국회 의원회관 건물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벌인 지 사흘째에 여야 합의를 통한 법안 처리 약속을 받았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부 때인 1975년부터 1987년까지 형제복지원에서는 인권유린이 일어났다. 당시 정부는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과 고아 등 3000여 명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시키면서 551명이 사망했다.20대 국회가 끝나기 전 과거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5월7일 여야가 합 독자와의 수다 정희상 기자 독자 번호:118100130이름: 박예진(25)주소: 서울 구로구박예진씨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이다. 언론정보학과 러시아문학을 복수 전공했다. 재학 중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1년간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다. 교내 학보사 기자로도 활동하며 일찌감치 진로를 언론 분야로 정했다.박씨가 다닌 대학은 유명 정치인의 딸 특혜 입학을 둘러싸고 구설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걸핏하면 재단이사장과 총장이 사학비리를 저질러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재단 비리에 맞서 학생들이 학보사 기사나 대자보로 대응하면서 학교 측과 늘긴장관계로 지냈다. 박 기사 후~폭풍 정희상 기자 〈시사IN〉과 한국리서치가 공동 기획한 ‘보수의 전향’ 커버스토리가 반향을 일으켰다. 미래통합당에서 이탈한 보수가 민주당 지지로 전향했다는 천관율 기자의 분석 기사는 〈시사IN〉 페이스북 계정(facebook.com/ sisain) 등 온라인 공간에서 활발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보수의 가치를 아는 정당이라면 탈북자 공천은 안 했을 것” “민주당은 보수, 미통당은 보수의 탈을 쓴 기회주의” “50대는 보수라는 편견부터 깨지 않으면 진실은 못 밝힐 것” 등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수도권 주요 지역구 개표 결과를 투표소별로 분석한 김동인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를 떠올리는 이유 정희상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의료보험제도의 효시는 1968년 설립된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이다.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났을 때 도움받자.”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부산 고신대학병원 장기려 박사(1911~1995)가 1968년 내건 표어다. 평양 김일성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교수였던 장기려는 한국전쟁 중에 내려왔다. 이때부터 그는 피란지 부산에서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 진료 사업을 벌이는 데 몰두했다. 간장외과 분야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의사이면서도 급여를 환자 치료를 “막내는 빨갱이 새끼라고 총살놀이를 당했어” 정희상 기자 1975년 4월9일 아침, 이영교씨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남편 하재완의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한 지 19시간 만이었다. 그는 전날 오후 대법원 결정이 나오자마자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다른 가족들과 함께 서울 시내 한 여관방에 머물며 구명운동 대책을 숙의하던 중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들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판결 직후 사건 관련자 8명을 신속히 사형 집행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원, 이수병, 여정남. 인혁당 사건 사형수 8 최광준 교수가 아버지를 기억하는 방법 정희상 기자 1973년 10월25일 중앙정보부(중정) 김치열 차장이 ‘유럽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가 중정 남산 청사에서 조사받던 중 간첩 혐의를 시인한 뒤 투신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중정은 최 교수가 투신했다는 현장을 공개하지 않았다. 고문에 의한 타살 의혹이 일었다. 두 달 전인 그해 8월, 도쿄에서 김대중 납치 사건을 일으킨 중정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중정이 간첩단 사건을 조작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최 교수는 그 무렵 미국 하버드 대학 옌칭 연구소에서 1년, 독일 훔볼트 재단에서 6개월 동안 교환교수를 끝내 친구를 배신해야 목숨을 부지했다 정희상 기자 1980년 양창욱씨(60)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신입생으로 ‘서울의 봄’을 맞았다. 그 시절 대부분 학생이 그랬듯 양씨도 운동권이 되었다. 1983년 3월7일 4학년이 된 양씨는 경찰에 연행되었다. 그해 신입생 환영 행사를 계기로 전두환 정권 반대 시위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4학년 김두황, 한선모도 같이 연행되었다.서울 성북경찰서 형사들은 세 사람을 경찰서 옆 여인숙으로 끌고 가 고문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구속과 강제징집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구속을 각오한 이들은 강제징집을 거부했다. 경찰은 학교에 연락했고 기자들의 시선 정희상 기자 이 주의 의미 충만‘착한 임대인 운동.’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극심해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피해를 돕고자 건물주들과 중소기업중앙회가 벌이는 상생 캠페인. 전주 한옥마을 건물주 14명의 상생선언에서 시작했다. 이들이 3개월 이상 10% 임대료 인하를 자발적으로 결의하자 나비효과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3월10일 중소기업중앙회는 착한 임대인 운동을 범중소기업 차원의 캠페인으로 확대했다. 도미노 효과는 프랜차이즈 업계까지 확산했다. 가맹점 본사들이 ‘착한 프랜차이즈 운동’을 선언하며 코로나19가 잡힐 때까지 임대료 인하를 결의했다.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