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대한 나의 기억
  • 정희상 기자
  • 호수 661
  • 승인 2020.05.21 12: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나는 광주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다녔다. 5월17일 비상계엄 확대가 내려진 이튿날, 조금 늦게 수업에 들어온 화학 과목 선생님의 충혈된 눈시울을 보았다. 그녀는 출근길 금남로를 지날 때 공수부대가 곤봉과 총검으로 무장한 채 난입해 젊은이로 보이는 사람을 무차별로 찌르고 구타해 끌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며 몸서리쳤다. 제자들에게 하교할 때 절대 금남로를 거쳐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하지 못했다.

5월18일부터 광주 시내 곳곳에서 백주 대낮에 자행된 공수부대의 살인 진압은 지켜보는 시민 모두에게 말할 수 없는 공포와 울분을 유발했다. “대학생 형 누나들을 이대로 죽게 두고 볼 수만은 없다.” 휴교에 들어간 5월19일부터 고등학교 2학년인 나와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련복을 입고 공설운동장(무등경기장) 앞으로 모였다. 공분이 조금씩 두려움과 공포를 눌렀다.

ⓒ연합뉴스

5월19일부터 닷새 동안 동급생들과 시내를 누볐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 왜곡과 폄훼는 그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헬기가 머리 위를 돌며 ‘폭도’ ‘고정간첩’이라고 매도하는 선무방송을 하고 삐라를 뿌려댔다.

이따금 계엄군을 만나면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시위대 사이에는, 일부러 계엄군에게 술과 환각제를 먹여서 살인 진압에 투입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나는 5월23일까지 도청 앞 시위에 참여하다가 가족과 친지들의 요구로 고향 보성으로 걸어 나왔다.

훗날 언론에 몸담은 뒤 개인적인 5·18 체험은 한 번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진압작전에 투입됐던 3공수 여단 소속 한 병사를 만났다. 많은 의문이 실마리를 찾았다.

당시 공수부대는, 광주 시민을 빨갱이로 교육받고 내려왔다고 했다. 또 서울에서부터 잠을 자지 않고 기차로 이동해 모두 눈이 벌건 상태에서 시민들과 시위대를 맞닥뜨렸고, 무자비하고 난폭하게 다루도록 ‘기획 투입’됐다고 증언했다. 그때의 공수부대원들은 지금은 대부분 환갑이 넘은 나이다. 아직도 친목 모임을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40년 세월이 흘렀어도 5·18 폄훼 왜곡 세력의 뿌리는 깊다. 바로 전두환 신군부 잔재와 그 수혜자들이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