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앨러스데어 코크런 지음, 박진영·오창룡 옮김, 창비 펴냄

“우리의 정치 공동체는 다종 공동체이다.”

‘동물과의 정치적 관계가 필연적이라면, 그것은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까? 인간 사회의 정치 구조, 제도, 정책이 비인간 동물에게서 영향을 받는 동시에 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 그렇다면 이것들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 결정적으로, 인간 정치 공동체가 특정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고 옹호해야 할까?’ 이 책은 동물의 법적 인격성, 성원권, 민주적 대표성 등을 챕터마다 하나씩 따져본다. 지은이 앨러스데어 코크런은 이렇게 확신한다. “정말로 충분히 의지만 있다면 법은 갖가지 상황에서 동물을 죽이는 인간의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 동물권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읽기 좋은, 부담 없이 친절한 길라잡이다.

 

 

 

 

 

 

 

 

당신을 이어 말한다
이길보라 지음, 동아시아 펴냄

“내 앞에 서서 먼저 말하고 선언하고 행동해왔던 당신의 용기로 이어 말한다.”

아티비스트는 예술가이자 활동가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연대, 활동, 작업하는 이들을 말한다. 아티비스트인 저자는 페미니즘과 장애인권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들여다본다. 페미니즘을 만나 여성으로서 살아왔던 경험에 언어가 생겼고, 코다(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일컫는다)라는 단어를 알게 된 후 ‘들리지 않음’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저자의 말하기는 이때부터 가장 정치적인 행위가 된다. “그런 순간과 시도를 마주할 때마다 희망이 생긴다. 장애라는 단어를 굳이 가져다 쓰지 않아도 될 때. 그런 분류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회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우리를 앞섰던 이들의 용기에 이어 말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첫 사회 비평집.

 

 

 

 

 

 

 

 

가만히, 걷는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외 지음, 신유진 옮김, 봄날의책 펴냄

“나는 이 편지를 쓴 여성의 딸이다.”

딸을 만나러 오라는 사위의 초대에 어머니는 짧은 편지를 회신한다. 자신의 분홍 선인장이 곧 꽃을 피우기 때문에 갈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꽃은 4년에 한 번 피는데 “이미 매우 늙은 여자”인 자신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딸은 두렵고 흔들리는 날마다 어머니의 그 편지를 꺼내 읽는다. 지치지 않고 스스로 꽃 피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런 여성의 딸임을 기억하면서. 근현대 프랑스 작가 스물한 명의 산문을 한데 모아 〈가만히, 걷는다〉는 제목으로 묶었다. 〈천천히, 스미는〉(영미 산문선), 〈슬픈 인간〉(일본 산문선)에 이어 세 번째로 나온 세계산문선 시리즈다. 이번에도 번역가가 ‘산문 큐레이터’로 나섰다. 신유진 번역가는 1년 가까이 도서관을 헤매며 책에 실을 산문을 고르고 엮었다.

 

 

 

 

 

 

 

 

관부재판
하나후사 도시오·하나후사 에미코 지음, 고향옥 옮김, 도토리숲 펴냄

“한·일 양국의 양심 세력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심과 상처를 함께 생각하고 나누길 소망하는 메시지.”

1992년 부산에 사는 일본군 ‘위안부’와 여자 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이 일본 시모노세키 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첫 소송을 제기한다. 1998년 1심에서 ‘위안부’ 피해자가 일부 승소해 국제적 주목을 받았던 이 재판은 2심과 최종심에서 일본 정부에 패하고 말았다. 일본에서 관부재판으로 불린 이 소송 뒤에는 평범한 일본 시민들과 변호사들이 자리했다. 이들은 ‘전후 책임을 묻는다.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어 한국인 할머니들을 만나며 재판 지원을 시작했다. 그 중심에 하나후사 도시오와 하나후사 에미코 부부가 있었다. 두 사람이 주축이 된 지원모임은 28년 동안 재판 지원 외에도 전후 책임과 보상을 위한 입법운동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코로나19, 걸리면 진짜 안 돼?
서주현 지음, 아침사과 펴냄

“선별진료소 경험은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을 떨어뜨렸다.”

심장마비가 임박한 급성 심근경색 환자가 중국에서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쳤다. 동네 의원뿐 아니라 큰 병원에서도 열이 나는 환자는 진료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심장질환, 뇌졸중처럼 빨리 치료해야 하는 환자 가운데서도 골든타임을 놓친 사람이 있다.
저자는 응급의학과 의사로 코로나19 이후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곳에서 직접 겪은 이야기들로 코로나19 이후 1년을 돌아봤다. 김인병 대한재난의학회장은 “응급의학 전문의이자 실질적 방역과 진료를 시행한 의사로서 코로나19 방역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개선 방향을 공론화하는 데 작은 길을 제시한다”라는 추천사를 썼다.

 

 

 

 

 

 

 

 

보통 맛
최유안 지음, 민음사 펴냄

“그냥 뭐. 라멘 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

작가는 퇴근길 버스에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입사한 지 석 달 된 신입사원이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을 떠올린 뒤였다. 아홉 살 때 꿈을 이루기 위해 창작의 세계에 뛰어든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표제작 ‘보통 맛’에는 ‘라멘 맛이 어떠냐’고 묻는 후배가 나온다. 다들 아는 보통 맛이라고 말하는 ‘나’. ‘원칙에 강하면서 가끔은 담대하고 용기 있는 선배’로 보이고 싶었지만 그저 보통의 선배였을 뿐이다. 주거 공동체에서 김치 봉지가 터진 뒤 모멸감을 느끼는 독일 유학생, 아내와 아기를 위해 집을 짓지만 정작 필요할 때 가족 곁에 갈 수 없게 된 남자, 불법 촬영 영상 속 인물과의 관계를 지워내는 ‘나’. 단편 속 인물들에 정신없이 빠져들다 보면 어느덧 책의 마지막 장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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