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과 연속
도야마 히라쿠 지음, 위정훈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펴냄

“태초에 군(群)이 있었다.”

집합론, 위상수학, 비유클리드 기하학….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수학 성적에서 상당히 높은 성과를 거둔 사람이라도 선명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개념들이다. 수학 지식 없이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이루는 여러 기술들에 접근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상황에서도 그렇다.
1951년 출간된 이 책은 일본 수학교육협의회 위원장을 지낸 저자가 수학을 일반 대중에게 복잡한 수식 없이 어떻게 쉽게 이해시킬까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다. 구체적인 사례와 다양한 그림을 통해 어려운 개념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70년 전에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데다 낡았다는 느낌 따위 전혀 주지 않는다. 수학책을 연필 없이 끝까지 읽을 수 있다는 진귀한 경험을 선사한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
은유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창비 펴냄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티켓 예매 사이트 회원가입을 할 수 없어서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가지 못한다.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고 똑같이 나누어 계좌이체를 할 때 혼자만 현금을 꺼낸다. 공부를 잘해도 각종 경진대회에 나갈 수 없고, 보험 가입이 안 돼서 수학여행도 못 간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삶은 이처럼 구체적이고 낱낱이 고통스럽다. 대부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자라지만 사각지대에 존재해 보이지 않는다. 정확한 통계도 없다. 2만명 정도 되리라 추산된다. 국가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이 ‘작은 이웃’들의 평등은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 이들이 무사히 어른이 되도록 법과 제도의 그물을 짜는 일이야말로 사회와 국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패권의 대이동
김대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패권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평범한 사실.”

신자유주의자들의 생각과 달리 패권국가의 역사는 모든 국가 개입이 나쁜 일이 아닐뿐더러 어떤 경우에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은 20세기 초까지도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했고, 철도 같은 기간시설 건설에 적극 나섰다. 영국이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에 패권을 넘겨준 이유는 의회와 정부가 개입해 기술혁신이 일어나도록 독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패권국가의 조건이 영토와 인구 같은 물리적 조건에서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기업인의 혁신 정신 같은 요소로 옮아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스페인·네덜란드·영국·미국의 흥망성쇠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역사적 분기점의 본질을 이해하게끔 한다.

 

 

 

어떻게 인간과 공존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
스튜어트 러셀 지음, 이한음 옮김, 김영사 펴냄

“우리 지능보다 훨씬 더 뛰어난 지능을 만난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 분야의 석학이 2019년 내놓은 신간. 책의 원제는 ‘Human Compatible’. 2016년 그가 설립한 연구기관과 같은 이름이다. 인공지능 연구에 엄청난 규모의 사람과 자금이 몰리게 되었다. 저자는 “AI는 세계를 재편할 힘을 지니므로 그 재편 과정은 어떤 식으로든 관리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맹목적으로 낙관하거나, 반대로 초지능 인공지능의 출현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 인공지능의 위험을 지적하는 이들을 러다이트로 몰아가는 주장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인간에게 이로운 기계’는 이런 것이다.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기계.” 결국 우리가 인공지능을 통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
이상미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파괴의 역사에서 굳건히 살아남은 건축물은 ‘생존자’로 마땅히 불려야 한다.”

한국에는 왜 오래된 건축물이 적을까. 문화재 전문가들은 건축자재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로 목재를 쓰므로 전란 와중에 불타는 경우가 많다. 서구권의 석조건축물은 수백 년에서 수천 년간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는 표현은 중요하다. 깨지고 그을린 자국은 여전히 돌로 된 건축물에 새겨져, 당시 사람들이 겪은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루브르 박물관, 하이델베르크성, 콜로세움 등을 보는 현대인은 그 아름다움을 찬탄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은 나폴레옹이 전 유럽과 전쟁을 감행하며 약탈로 조성한 곳이다. 애초 살육의 오락화를 위해 조성된 콜로세움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집회 장소로 쓰였다. 관광 명소로만 알려진 건축물을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책.

 

 

 

고어 자본주의
사야크 발렌시아 지음, 최이슬기 옮김, 워크룸프레스 펴냄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현재 존재하는 선택지를 변혁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야크 발렌시아는 멕시코 티후아나 출신의 트랜스 페미니스트 활동가다. 티후아나는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지대에 위치해 있다. 제1세계와 제3세계를 ‘연결’함으로써 국제적 경제패권을 ‘연루’시키는 독특한 위치는 이 책이 주목한 고어적 폭력의 실체를 대변한다. 가격 자율화와 시장규제 완화, 노동의 불안정화, 고도화된 금융경제라는 폭탄이 투하되자 가난한 도시는 ‘호러’가 되었다. 고어 자본주의란 취약한 이들의 육체를 파괴하고 신체를 약탈의 자원으로 사용하는 괴물이 된 자본주의를 말한다. ‘돈을 찍어내다가’ 혹은 ‘돈이 없어서’ 죽는다. 치사율이 갈수록 올라간다. 국경 없는 세계자본의 흐름은 고어 자본주의를 전 세계로 다시 확산시키고 있다. ‘모두가 잠든 사이 자본의 힘은 욕망을 키웠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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