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공간을 찾아서
안정희 지음, 이야기나무 펴냄

“간절히 기억하려 하거나 통렬히 잊고자 할 때.”

기록연구사 안정희가 기억의 공간을 찾았다. 전쟁·죽음·사고· 도시개발·재난 등의 이유로 소멸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그곳을 여행하며 적은 기행문을 책으로 냈다. 이야기는 독일 브레멘 항구의 이민박물관에서 시작한다. 대기실에서 관람객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글씨는 ‘Hoffnung(희망)’. 떠난 이유를 희망이라고 말하는 이민자들은 1800년대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망명한 이미륵 선생 묘소도 독일에 있다. 일본 오키나와의 슈리성, 한국의 윤동주박물관 등 가깝고 먼 곳의 기억과 기록을 더듬었다. 어떤 여행은 빚진 마음을 환기시킨다. 특히 ‘기록 여행은 기꺼이 연대하는 수천만 명의 동시대 사람들을 발견’하는 일이다.

 

 

 

 

 

 

순종 개, 품종 고양이가 좋아요?
엠마 밀네 지음, 최태규·양효진 옮김, 책공장더불어 펴냄

“우리는 대자연과 진화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이룬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거슬렀다.”

‘뼈대 있는’ 반려동물은 비싸게 팔린다. 품종묘, 품종견이 잡종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순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친교배가 필요하다. 유럽 왕가들이 그랬듯, 이 과정에서 다양한 유전적 역효과를 유발한다. 열성유전자 두 개가 자연 상태에서 만나 새끼에게 이어질 가능성은 몹시 낮다. 근친교배는 이 가능성을 현격히 높인다. 유전 질병이 고스란히 자손에게 이어진다. 수의사 출신인 저자는, 어떤 부작용은 인간의 선호에 따라 의도적으로 대를 잇는다고 썼다. 동물의 건강에는 해로운 특질을 예쁘다는 이유로 찍어낸다는 것이다. 견종표준서 가운데 ‘걸을 때 발을 질질 끌어야 한다’고 적은 것도 있다. 인간 탓에 기형이 된 순종 동물의 잔혹한 사진이 다수 실려 있다.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
금정연 외 8인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일상이 망가져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방치하는 게 아니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방치해서 일상이 망가지는 것이다.”

어느 날 개수대에 쌓여 있는 그릇과 널어야 할 빨랫감을 보며 시시포스를 떠올렸다. ‘아, 살림이란 끊임없이 굴려야 하는 형벌 같은 걸까.’ 독립하고 나서야, 제때 닦고 소독하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곰팡이와 벌레, 쿰쿰한 냄새의 습격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살림은 늘 뒷전이었다. 언젠가는 청소 전문업체를 부를 수 있는 삶을 살아야지 생각했다. 이 책은 우리의 일상을 유지시키는 ‘살림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기름을 둘러 노릇노릇하게 두부를 굽고, 가끔은 베이킹소다를 풀어 설거지하고, 세탁조를 청소하는 일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말이다.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은 돌봄에 있다고, 그러니 방치하거나 외주 주지 말자고.

 

 

 

 

 

 

 

노량진수산시장
최인기 지음, 눈빛 펴냄

“‘노량진 구수산시장은 철거할 수 있어도, 사람의 삶은 철거할 수 없는 거지….’”

2015년 노량진수산시장 신시장이 세워졌다. 정작 상인들은 임대료와 설계 문제 등을 이유로 신시장 입주를 거부했다. 일부 상인들은 신시장 안에 들어갔고 일부는 구시장에 남았다. 구시장 명도 집행이 시작되면서 남은 상인들은 각종 폭력을 겪었다. 상인들의 몸과 마음에 큰 상흔이 남았다. 10차례에 걸친 명도 집행 후 2019년 8월 구시장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여전히 상인 80여 명이 노량진 육교 위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기록하는 빈민운동가’인 저자는 이렇게 시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당하고 이상한 일”이라고 말한다. 책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잘 모르고 지나가던,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 상인들의 생업과 투쟁을 사진으로 충실히 담았다.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정상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내가 죽음에 이끌린 이유를. 나는 죽음이 아니라 삶의 목소리에 이끌린 것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의 의사.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저자의 인생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어느 순간 삶의 의미를 잃은 그에게 떠오르는 생각은 죽음뿐이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번민하던 그는 죽음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 ‘국경없는 의사회’ 활동가가 되어 삶보다 죽음이 쉬운 세 나라, 아르메니아·레바논·시에라리온을 찾아갔다. ‘한국인 최초의 에볼라 의사’라는 이름을 얻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긴 여정에서 마주한 죽음의 맨얼굴과 그 죽음들 앞에서 찾은 자신만의 답을 책으로 내놓았다. 죽음과 고통의 불평등함, 삶의 의미와 가능성, ‘나’가 아닌 ‘우리’로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을 만날 수 있다.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이진선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재능은 없지만 내 일을 사랑하는 나는, 어떻게 원하는 내가 될 수 있을까?”

10여 년간 디자이너로 일한 저자는 ‘멘토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동료를 많이 만났다. 디자이너만 품는 생각은 아니다. 초보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직장은 드물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성장하는 동료들을 보며 타고난 재능을 탓하기도 한다. 책은 성공의 표준모델이나 일반 경로를 당연시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사람에 따라 ‘성공의 길’은 여러 갈래이며 우열이 없다는 것. 경험이 많은 동료의 조언이라고 해서 늘 옳지는 않다. 책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연마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타인의 조언에 따르는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재설정하고,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자문하며, 스스로 성장 단계를 점검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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