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유한성의 발견
최은주 지음, 은행나무 펴냄

“우리는 늙기 싫어하며, 늙음의 경험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늙기 시작한다. 늙음은 처음이다. 일상적인 두통, 복통, 감기부터 어느 날 새삼스럽게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과 주름을 발견하면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다. 저자는 이런 나이 듦을 ‘유한성의 발견’이라고 말한다. 시, 소설, 영화, 그림 등 우리 삶을 묘사하는 예술 작품에 나타난 ‘나이 듦’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혐오를 분석해 기존 인식을 비판한다.
저자는 나이 듦이 경험에 따른 숙련과 성숙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나이 듦의 장점인 것처럼 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나이 듦의 풍경이 부정과 상실의 어휘로만 수식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관조하기 좋은 책이다.

 

 

 

 

 

 

소크라테스 헬스클럽
현상필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고대 영웅은 초인적 힘과 지혜를 갖춘 도덕 교사였다.”

학교에서는 ‘지덕체’를 강조했다. 일단 공부를 잘하는 게 우선이고, 그다음이 친구들과 싸우지 않는 거였다. 달리기를 잘하는 건 가끔, 1년에 한 번 열리는 체육대회에서나 반짝 빛을 발하는 능력이었다.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체육시간에 체육복을 입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때는 몰랐다. 닳지 않을 것 같은 체력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취재 현장에 나가고 마감을 할 때마다 이제는 ‘체덕지’ 순서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탄식했다. “그리스 남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시간을 김나시온(공공 체육관)과 팔라이스트라(레슬링 연습장)에서 보냈다.” 그리스 철학이 꽃피었던 건 지칠 줄 모르는 생각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체력 덕분이었다.

 

 

 

 

 

 

 

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음, 문학동네 펴냄

“진아씨는 내 아이 친구의 엄마이며,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

최은미 작가의 작품에는 가끔 촌수가 멀거나 복잡한 친인척이 등장한다. 삼촌과 사촌을 넘어 오촌에 이른다. 소설은 대체로 어떤 균열을 보여주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의 낭만은 당연히 없다. 가족들은 화자에게 상처를 입힌다. 혈연 간의 성폭력을 다루더라도 그걸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그걸 겪고 어른이 된 화자를 보여준다. 그것만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서늘해진다. 이번 소설집에는 여러 명의 기혼 여성이 등장한다. 표제작은 소아림프종 진단을 받은 사촌 강민서와 강윤희의 이야기다. 아들뻘의 사촌을 집에 들이며 뜻밖의 위안을 받지만 동시에 그의 아버지가 했던 행동이 떠올라 고통스럽다. 아홉 편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눈사람이 녹은 뒤 남은 자리처럼 강한 여운이 남는다.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김영옥 지음, 교양인 펴냄

“특히 늙은 환자, 늙은 몸은 내 삶의 모든 층위에서 첨예한 각성을 일깨운다.”

나이 듦은 일상 가까이 있는 경험인데도, 나와 타인의 노화를 지켜보는 일은 늘 낯설다. 질긴 음식을 못 먹게 되고, 먼 곳으로 이동하기 어려워지고 말수도 점점 줄어든다. 생로병사의 굴레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일까. 60대 중반에 들어선 페미니스트 연구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또 다른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빛의 시간이라고. 늙고 병들고 아프고 돌보며 돌봄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치밀하고 또 섬세하게 탐색한다. 노인의 이야기는 그간 ‘노인 복지’ 관점에서 조명되거나 변방에 머물렀다. 노년의 섹슈얼리티부터 치매, 노인 요양 시설과 코로나 재난, 성주 사드 배치 반대 투쟁에 나선 할매들의 이야기를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다룬다.

 

 

 

 

 

 

 

시대를 걷다-보수적 자유주의자의 여정
이상돈 지음, 에디터 펴냄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을 폭넓게 탐구해서 전달하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해보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선 아직 희귀한 명칭인 ‘보수적 자유주의자’로 불리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20대 국회에서 국민의당 소속 의원)가 학자이자 보수주의 운동가, 제도권 정치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역정을 회고록 형식으로 정리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이유, 4대강 사업 반대 활동에 앞장서게 된 이유,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 그 연장선에서 치른 2012년 총선과 대선 등 한국의 최근 정치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가 소속되었던 국민의당이 2016년 총선에서 성공한 이후 대통령 탄핵과 2017년 대선을 거치며 몰락하는 과정도 상세히 서술했다.

 

 

 

 

 

 

 

질문하는 역사
주경철 지음, 산처럼 펴냄

“권력은 늘 역사를 필요로 한다.”

이 책은 일종의 ‘역사 에세이’다. 세계사 속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새로운 관점으로 되짚어보는 방식이다. 20년 전 저자가 낸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를 일부 고쳐 썼다. 세월이 흘렀어도 낡은 내용은 아니다. ‘세계사’라는 말에서 으레 떠올리는 ‘서유럽 정치’ 대신 세계 곳곳의 사회·문화 분야를 다룬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치세, 정화의 항해, 소련 영화 〈전함 포템킨〉 등 알짜 정보가 많다. 제2부 ‘문학 속의 역사’ 파트는 특히 흥미롭다. 그리스 비극과 몰리에르, 솔제니친 등 많은 사람들이 이름만 아는 작품을 풍부하게 해설했다. TV·유튜브가 고전과 역사를 해설해주는 시대이지만, 활자만의 맛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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